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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직장 내 괴롭힘에서 벗어날 기막힌 방법

서울여대 청소용역 관리소장의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폭언이 보도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업 총무팀장의 폭언이 녹음된 파일이 방송되었다. 피해자로부터 해당 파일과 함께 신고를 받은 노동부는 진상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언론에 직장 상사의 폭언으로 힘들어하는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게 보도되고 있다. 이런 보도를 접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세상에 이런 일이’처럼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과 피해당사자가 참 운이 없다는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면서 나도 재수가 없다면 그런 일은 언제라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직장인들로 말이다. 그만큼 직장 상사에 의한 폭언과 무시, 인격적 모독과 괴롭힘은 내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지, 상사 자리에 어떤 인물이 오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위계적 권력 관계에 의한 괴롭힘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연결되는 세 가지가 있다. 학교, 군대, 직장. 학교는 미성숙한 존재에 대한 교육이라는 명분과 입시경쟁이라는 이해관계 속에서 교사들에게 학생들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한을 부여해왔다. 학부모, 사교육이 복잡하게 얽혀들어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처한 위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새 학년이 되어 이상한 담임을 만나는 순간, 학교생활은 불행해진다. 폭언이 담긴 직장 상사, 본사 직원들의 녹취록이 언론을 타듯이, 한 때 교실에서 학생들이 폰카로 찍은 교사의 체벌과 가혹행위들이 뉴스를 장식했던 때가 있었다. 그 결과 체벌은 교육현장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철저히 종속적인 위치에 놓인 학생들에 대한 통제는 여전하다. 형사법을 적용하듯이 학칙에 따라 징계를 하고, 벌금을 물리듯이 벌점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했던 물리적 폭력은 이제 학생이 온전히 감내해야 할 학교생활, 교우관계의 제약으로 탈바꿈한다. 누가 누구에게 체벌을 하고 벌점을 매기고 징계를 하느냐와 같은 권력의 불균형은 그대로이거나 합리적 외양을 띠고 더 강화된다.

‘학교가 군대냐?’, ‘회사가 군대냐?’와 같은 물음은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위계적 권력관계의 원형임을 보여준다. 수많은 가혹행위, 의문사, 총기사고, 오로지 권력의 과시와 확인을 위한 온갖 비합리적인 행위들은 그 적나라한 모습들이다. 그 중에서도 군대는 ‘고문관’이라고 불리는 집단 따돌림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학교에서는 입시성적, 직장에서는 업무성과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되기라도 하지만 군대에서는 오로지 상관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시키려는 목적을 내걸고 사병들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명령일지라도 몸과 마음이 익숙해질 때까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반복 훈련시킨다. 그것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이를 골라내 전우애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연대책임을 씌운다. 그 때부터 ‘고문관’이 생겨난다. 군대조직의 비합리성과 권력관계는 전도되어 ‘고문관’이 그것의 체현자가 된다. 동료들에게 ‘고문관’은 군대권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다. 이상한 선임이 문제가 아니라 저 ‘고문관’이 문제다.

직장은 이런 학교와 군대의 어디쯤에 있을까? 적어도 학교와 군대에서는 대학입시와 제대만을 바라보며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바라지만 직장은 그렇지 않다. 직급 위계의 사다리는 길고 길며, 이제는 연공급제에 따른 승진도 쉽지 않다. 먹고 살 다른 방도가 없다면 어떻게든 붙어있어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분명한 건 세 곳 모두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관계망의 특정한 양식들이라는 점이다. 매일 마주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만들어낸 사회적 협업의 결과물이다. 당장 어떤 직속상관, 담임, 선임을 만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사실이 괴롭힘은 피해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화된 권력관계와 자리의 문제라는 것을 역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다양한 배움터들(대안학교), 경제생산단위들(협동조합, 노동자자주관리)은 교육과 재화생산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위한 다른 방식의 사회적 관계망을 상상하고 시도해왔다. 군대까지도 관료적 상비군이 아닌 민병대, 병사 소비에트(*)-정치장교 체제 전통 같은 실험들 속에서 민주적 토론과 논의 속에서 운영하고자 했던 역사가 있었다.

너무 멀고 큰 이야기라면, 당장 옆에 있는 동료에게 손을 내밀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어느 제조업체 생산라인 반장의 행동을 제압하기 위해 같은 라인의 노동자들이 모의해 조회시간에 문제제기를 한꺼번에 한다든가, ‘고운말 쓰기’ 모임을 사내에 띄워 감시활동을 해본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작은 힘이라도 모으고 모아 가능한 실천부터 찾아본다면 직장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길은 훨씬 많지 않을까? 구체적인 방법은 직장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다만 혼자 고민할 때와 여럿이 모의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는 큰 차이가 있다.

지난 9월 30일 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예방 교육, 가해자 징계와 피해자 보호를 골자로 하는 법률 개정안이다. 서구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이 이미 제정 시행되고 있다. 한정애 의원은 ‘따돌림’, ‘부당한 비판’, ‘욕하기’, ‘차별적 대우’, ‘기한을 맞출 수 없는 업무 주기’ 등도 직장 내 괴롭힘에 포함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법제도의 속성상 ‘욕하기’와 같은 가시적 언어폭력과 달리 업무지시나 평가와 관련된 행위들은 법적 보호를 받는 게 쉽지 않다. 괴롭힘이라고 통칭되는 여러 행위들은 특정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계망이라는 일련의 연속선 속에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그것이 욕설이나 가혹행위와 같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괴롭힘이라는 폭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도드라지지 않게 지속된다.

고용 영역에서 여성주의적 가치나 여성노동자들이 조직되지 않은 채 도입된 직장 내 성희롱 방지를 위한 관계 법률들은 많은 남성 노동자들에게 지켜야할 매뉴얼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성동료를 대하는 관점은 달라지지 않은 채, 마치 금연구역이 지정된 것처럼 성희롱 성폭력 관계 법령을 이해한 것이다. 효과는 분명하다. 욕설과 성희롱에 시달리는 당사자는 그것이 금지된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괴롭힘은 계속된다. 기울어진 권력관계에서 오는 법이 인식할 수 없는 괴롭힘은 계속된다. 그걸 바로 잡기 위한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관리자들이 감히 얕볼 수 없는, 그래서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일하는 이들의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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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민중들의 민주적 자치 기구를 뜻하며 “평의회”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1905년 러시아 혁명 때 등장해 노동자 소비에트, 농민 소비에트, 병사 소비에트, 지방 소비에트와 같이 다양한 사회계층과 지역에서 조직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전야에는 연합체로서 전(全) 러시아 소비에트가 조직되어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했다. 병사 소비에트는 제국 군대의 지휘를 받는 장교의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이길 거부하며, 1차 세계대전과 민중들의 저항탄압과 같은 행위에 동원되기를 거부했던 일반 사병들의 자치조직이었다. 사회주의 군대의 특징 중 하나인 정치장교(정치지도원) 체계 역시 출발은 군대조직에 대한 사병들의 정치적 토론과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는 군사엘리트(장교)에 의한 쿠데타를 제어하기 위한 강력한 문민통제장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