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에서 강용석 의원 제명안이 부결됐지요. 그 자리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강용석 의원을 옹호했다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문제된 것은 벌써 1년도 더 지났지요. 작년 7월 대학생 토론회의 뒤풀이에서 벌어진 일이지요. 그때 강 의원의 입에서 나온 얘기를 여기서 굳이 전하고 싶지는 않네요. 사실 국회의원이나 유명 정치인들의 여성 비하 발언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어떤 때에는 이들이 세상의 모든 성폭력을 없앨 것처럼 자처하며 나선다는 것이지요. 아동성폭력 사건만 터졌다 하면 마치 자신이 세상의 모든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자가 된 것처럼 얼굴을 내세우고, 성폭력을 막기 위한 실효성이나 영향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고 아무 대책이나 쏟아냅니다. 그럴 때는 ‘죄 없는 자’ 운운하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지는 않지요. 성추행을 당하고 오히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여학생이 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고대 의대에 다니는 학생들이라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지요. 사건이 드러난 후 학교 측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고, 최근 한 교수는 가해자들을 두고 “돌아올 친구니까 잘해줘라”라는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가해자 중 한 명은 피해자의 평소 생활이나 인격을 묻는 설문조사를 직접 하기도 했고, 재판정에서 가해자 측의 변호인 역시 피해자를 공격하는 발언들을 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는 큰 용기를 내어 오늘 라디오에 출연했더군요. 그녀가 어떤 심정일지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짐작은 해볼 수 있을 겁니다. 6년 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상상도 못해봤을 일을 겪었지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요?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시작하자 가해자들과 그 부모들이 나섰습니다. 피해자의 집으로 와서 합의를 종용하고 학과 동료들에게는 피해자를 음해하는 이야기들을 퍼뜨렸지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알게 되었지만 그만큼 고립의 깊이도 커졌습니다. 죄 없는 자가 아니라 저 국회의원들이 나서지 않는 것일까요? 죄가 있어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걸까요? 그래도 여론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는 분위기인 듯합니다. 다행이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 속에 “네 자식들이 당해봐야지”와 같은 말들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정말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얘기들이지요.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그들은 모두 피해자와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무슨 말이든, 말을 하는 자와 말하지 못하는 자가 나뉩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또 다른 성희롱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청계광장 옆 여성가족부 건물 앞에서 텐트 하나를 놓고 80일이 넘는 농성을 하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입니다. 그녀는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14년 동안 일한 여성노동자입니다. 물론 그녀를 고용한 하청업체는 일곱 번이나 바뀌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관리자들의 성희롱이 시작됩니다.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꾹꾹 참으며 지냈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이 드러났지요. 그런데 회사는 오히려 그녀를 징계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자 회사는 그녀를 해고해버렸습니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건을 성희롱으로 인한 고용상의 불이익으로 인정했어요. 그러니 해고를 철회하는 것이 당연한데 회사는 꿈쩍도 않고 여성가족부는 손을 놓고 있고, 오늘은 결국 경찰과 용역들이 텐트를 철거했습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성희롱 사건은 언론에서도 열심히 다루지는 않더군요. 가해자나 피해자가 정치인도, 대학생도 아니어서 그런 걸까요? 사실 이렇게나마 알려지지도 못하고 숨죽여 흐느끼다 사라지는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 문득 가슴이 답답해지는 하루였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성폭력’과 관련해 사람들에게 알려질 때는, ‘가해자 인권’을 주장하는 단체로 알려지지요. 우리는 피의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반인권적인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고,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데, 우리의 말도 참 자리가 없는 말인 것 같네요. 어디에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누가 이 갇힌 말들을 귀를 열고 들어줄까요? 오늘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피해자를 넘어 생존자로 자신을 지켜가는 모든 여성들을 응원하며 이만 마쳐야겠네요. 서로의 말들을 들어주는 것, 그게 연대의 시작이 아닐까요?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