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 달간 일한 곳은 ‘룸카페’라는 곳이었는데, 그동안 해본 아르바이트 중에 가장 일이 편했다. 처음 면접 가서 거듭 들었던 얘기도 청소만 잘 하면 된다는 거였다. 주로 카운터를 지키면서 손님 응대만 하면 됐다. 그나마도 손님이 별로 없어서 내가 제일 많이 대한 사람은 사장이었다. 일 난이도로만 따지면 최상의 알바였다. 근데 난이도 외의 것들이 문제였다.
흔하디흔한 얘기다. 어느 철 지난 개그에서 그랬다지. “사장님 나빠요오~”
그녀는 ‘사모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도저히 입에 안 붙어서 무심코 ‘사장님’이라고 불렀다가 몇 번 깨졌다. 닭살을 참으면서 사모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두 달간 일하면서 가장 힘을 쏟은 건 그녀를 이해하는 것, 그녀를 참아내는 것, 차라리 그녀를 미워하는 것. 그녀는 남편 대신 이 일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안 하던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았다. 말투가 항상 신경질적인 건 그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장이 아니다”고 말하는 ‘사모’한테, 여기 매일 출근하고 일 하는 사람은 당신이지 않냐고 말해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름의 응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히스테리, 힐난하는 눈초리, 잔소리와 막말 사이를 넘나드는 언사를 겪는 동안 처음의 여유는 사라졌다. “너는 왜 그 따위니” 같은 말들의 홍수 속에 나는 ‘하찮지 않다’고 악착 같이 주문을 걸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냈다.
이런 저런 알바를 하면서 겪고 보니, 내가 사장들이랑 맺는 관계를 굉장히 못 견딘다는 걸 알았다. 매일 억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퇴근을 해도 내일 아침 때문에 숨이 막혔다. 그 압박감이 바로 내가 있는 자리(위치)의 의미였다. 저 사람은 고용주이고, 나는 그의 노동력일 뿐이라는 사실을 항상 새기고 있어야 했다. 좋은 사람이겠거니 믿다 보면 꼭 뒤통수를 맞았다. 사장이라는 위치가 무얼 의미하는지 잊은 대가였다.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무얼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 4,500원짜리 시급을 줘가며 쓰기에 최대한 그 값어치를 해야 하는 노동력이었다. 사장 개개인이 어떤 인간성을 가졌든, ‘사장’이라는 집단에게 ‘알바생’이 갖는 의미는 같았다. 다 아는 이야기고, 나 또한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몰랐던 이야기였다.
알지만 모르는 이야기, 그래도 알고 싶은 이야기
선택 사항이었던 아르바이트는 어느 시점부터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사항이 되었다. 정규직 직장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한테는 아르바이트가 내 먹고 살 길을 책임져 줄 유일한 밥줄. 더 이상 놀면 안 되는 나로서는 머지않아 또 다른 일을 구해야 한다. 다음번엔 또 어떤 사장을 만나려나. 이번에 지지고 볶고 실컷 한 만큼 다음번엔 좀 무던해지고 싶다. 그래, 다짐. 어떤 사람이 됐든 신경도 쓰지 말고, 상처도 받지 말고, 나한테 어떻게 굴든 영향 받지 말아야지. 씩씩 모드로 이렇게 다짐하는 한편에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일진대, 왜 아무 영향도 주고받지 않고 돈만 주고받는 관계를 맺어야하는 걸까. ‘사장님’과 ‘알바생’의 관계가 언제나 상하고정 권력불변의 법칙 속에 놓여있더라도 난 ‘그녀’와 잘 지내고 싶었다. 매일 가게에 매출 물어보는 전화만 하면서 ‘진짜 사장’이라 불리는 그 얄미운 남편 욕도 같이 좀 해보고 싶었다. 결국 그건 안타까운 바람으로만 남았지만.
덧붙임
엠건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