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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톺아보기

방방곡곡 모두 다 “잘됐으면 좋겠다~!” - 지역별 조례 제정운동이 가지는 의미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톺아보기 ⑩

보수의 도시. 파란 파란 곳. 고담대구. 그렇다. 나는 대구에서 ‘꿈’만 같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하고 있다. 사실일 리 없지만 경기나 광주, 서울같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에 가면 뭔가 공기부터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번은 토론회에 가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대구에서 한다고 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에고, 전국에서 제일 오래 (학생인권조례) 운동할 사람이네.” 하신 일도 있었다. 서운한 말이기도 했지만 공감이 가기도 해서 웃었다.

“억울하면 경기도 가라”

대구에서는 종종 두발단속이나 체벌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청소년이 “억울하면 경기도 가라.”라든지 “로마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여기는 대구야.”라는 말을 듣는다. 청소년 스스로도 교사에게 맞고 난 후에 “에잇, 경기도로 전학 갈까?”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즉, 인권에서 지역별 격차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가지는 치명적인 단점이랄까?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보편성’인데 학생인권조례는 지방자치단체별로 제정된다는 형식 상 보편성을 담보해낼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어린이/청소년/학생 인권에 대한 논의 수준, 관심 영역이 지역별로 완전히 달라지고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의 활동가가 경기/광주/서울 등의 지역에 가서 토론을 하면 가슴이 갑갑해지고 소통되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경기의 활동가가 비(非)제정지역에 가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들이 적어지고 있기도 한다. 심지어 그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이쯤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이쯤 되니 대구에서는 조례 말고 전국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학생인권 법률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난 조례가 더 좋다! 전국적인 학생인권법보다는 대구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꼭!

‘다른 지역도 하는데’가 아니라

대구의 학생인권조례운동은 이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옳은 일이라는 당위성이나 전국적인 움직임이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될 내용도 경기도처럼, 서울의 조례안에서 쟁점이 된 부분 중에 이 정도를 포함될 수 있도록 하자는 식으로 고민된 적도 많았다. 아마 다른 지역들 중에도 이런 지역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학생 간 폭력이 여러 사건들로 부각되고 학교 내 폭력에 대한 고민이 각각의 대구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기기 시작하면서 학생인권에 대한 대구지역의 구체적인 그림이 나타나고 있다. ‘다른 지역 다 하는데 우리도’가 아니라, 모든 폭력이 금지되는 학교 그리고 학교에서 꿈꿀 수 있는 평화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고민이 지역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고민으로 만들어질 대구학생인권조례에는 폭력에 대해 저항하고 평화와 인권, 교육이 어떻게 맞닿게 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들이 담기게 될 것이다.

또한, 대구는 장애인권운동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고담대구라고 하지만 장애인권운동에 있어서는 활동하고 있는 단체 수도,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활동가의 수도 많고 그 성과나 진정성도 지역의 자부심을 갖게 할 만큼 든든하게 있다. 그래서 이후에 생길 대구학생인권조례에는 장애인권에 대한 내용이 다른 지역 조례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근본적으로 담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꿈꾸고 있다. 지역의 역량을 바탕으로 하여 대구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막 설렐 지경이다.

그렇게 평화권과 장애인권에 대한 고민이 담긴 대구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면, 다른 지역들은 그 내용들을 더하기 위한 개정운동을 해나가게 될 것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과정을 보며 경기학생인권조례 개정운동이 논의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이 동일한 이슈, 동일한 요구로 전국 각 지역에서 학생인권이 두루두루 보장되도록 하는 운동임에 동시에 각 지역의 고민과 그간의 노력들이 반영되어 인권의 개념을 점점 확장시켜나가게 될 것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례 제정 과정 자체가 사회적 학습이자 역사적 경험

특히 학생인권조례는 교육감 발의로 이루어진다하더라도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개개인의 관심과 실천이 집중된다. 즉 학생인권조례 제정과정 자체가 일종의 사회적 학습이 되고 있고 역사적 경험으로써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한 번에 전국적으로 학생인권법이 제정된다면 이러한 사회적 학습과 역사적 경험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비록 교육이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공적 영역이고 한국사회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라 할지라도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각 지역에서 개개인들이 논쟁하고 찬/반을 표하고 움직이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찾기 쉽지 않다. 교육관련 법 제정 과정에서는 최초이다. 즉, 한국의 민주주의 특히 지방자치의 새로운 모델을 학생인권조례운동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구가 꼴찌가 아니기를 바라며 하루라도 빨리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받침돌을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 난리법석을 떨어댈 테지만, 대구가 전국 학생인권조례를 꼴찌로 제정하게 될 지라도, 그래서 가장 오랫동안 대구의 학생들이 인권침해를 받더라도, 교사인 내가 가장 오랫동안 폭력의 대리인 역할을 강요받더라도 나는 ‘조례’를 지지한다. 그리고 꿈꾼다. 대구의 학생인권조례를 보고 전국이 깜짝 놀라 학생인권조례 제․개정 운동을 시작하게 될 그날을. 후훗.
덧붙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청소년들의 은혜를 받아 활동하고 있는 선생 진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