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을 돌아보며
한국여성민우회가 식당노동자사업을 한 지 올해로 3년이 된다. 2010년 여성취업자 8명 중 1명이 일하고 있는 식당에 주목하여 <식당노동자의 노동인권길잡이>를 만들어 식당노동자와 식당노동자를 둔 가족, 고객 등을 대상으로 배포하였다. <인권길잡이>는 식당노동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식당노동자의 현실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2011년에는 전국 식당여성노동자 354명을 대상으로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하였다. 실태조사를 통해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휴게시간 없음, 월 3회 휴무 등 식당노동자들의 열악하고 고된 노동 현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실태조사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식당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식당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시민실천사항을 뽑아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호칭공모제를 통해 ‘아줌마’, ‘이모’, ‘여기요’로 불렸던 식당노동자에 존중이 담긴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고자 했다. 시민들의 직접공모를 통한 호칭선정은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250여 명의 시민들이 호칭공모에 함께 했고, 그 결과 남녀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고, 부르기 쉽고, 식당노동자가 하는 노동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차림사’라는 호칭이 최종 선정되었다.
그리고 지금 식당노동자의 새 이름 ‘차림사’를 알리는 홍보사업을 열심히 진행 중이다. 차림사 부르기 운동과 함께, 하반기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식당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이름만 무색한 모범음식점을 대체할 <상생하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참 좋은 식당 조례> 제정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차림사의 오늘
식당노동자(차림사) 대부분이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다 보니, 노조와 같이 자신의 문제를 대변해줄 수 있는 조직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장시간 노동, 적은 휴무로 인해 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할 시간 자체가 없는 현실. 그렇다 보니 식당노동자들의 조직률은 극히 낮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림사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11년 전국 차림사 실태조사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진행하였다. 그동안 차림사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차림사의 오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태조사를 통해 드러난 354명의 차림사의 목소리는 그래서 소중하다. 실제 모든 조사는 면대 면으로 이루어졌고, 차림사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설문내용 외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기도 했다.
조사에 따르면 차림사의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 이상, 64.6%가 일하는 중간에 휴게시간을 전혀 갖지 못하며, 22.4%가 가족과 일주일에 단 한 번도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실제 구직사이트와 벼룩시장의 구인광고를 보면,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휴무는 월 3회 정도를 제시하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대부분의 차림사들이 노동조건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를 호소했지만,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내야 할 때면 급여에서 하루 일당을 제하거나,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개인적으로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였다. 4대 보험 역시 응답자의 65%가 가입하지 않았다고 답했는데,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개인부담금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컸고, 그로 인해 차림사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실제 받는 월급에서 제하는 등 노동권을 침해받는 일이 다반사지만, 행여 잘리기라도 하면 생계가 막막해 문제제기 자체를 할 수 없는 악순환의 역속이다. 한편 식당노동을 ‘하인서비스’로 평가절하하는 문제도 있다. 차림사의 27.4%가 손님에게서 ‘무시하는 태도나 반말’을 듣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손님은 왕이다’ 식의 식당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용주뿐 아니라 고객의 인식변화와 실천 역시 중요하다.
현재 차림사들은 장시간 노동, 저임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차림사의 현실은 우리 사회가 ‘밥 짓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식당노동자를 부르는 호칭이 대부분 여성화되어 있다는 점은 많을 것들을 시사한다. 식당노동 중에서도 여성이 하는 일은 가사노동의 연장으로,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주변적인 업무-로 여겨진다. 이러한 식당노동자들의 노동은 결국 ‘보이지 않는 노동’이 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줌마, 이모, 고모 등의 호칭이 친근함의 표시일 수 있지만, 식당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는 ‘노동자’임을 가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차림사 노동환경 변화를 위한 지역 조례운동을 준비하며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각종 노동법 등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법규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영세사업장일수록 노동조건이 좋지 않은 경향을 보이기 마련인데 음식점업은 영세업종의 대표격이다.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다고 여겨지며 폐업 역시 잦다. 실제 일하는 과정에서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법 준수 캠페인이나 강력한 단속과 처벌같이 이른바 ‘채찍 휘두르기’만으로는 쉽게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대화와 소통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이 바로 <상생하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참 좋은 식당 조례(이하 참 좋은 식당 조례)>다. 서울 마포구의 경우에만 음식점 업체 수가 3,505개로 관내 사업체의 12.1%를 차지하고 종사자 수도 1만 2천 명에 달한다. 이 정도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음식점을 이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지역 주민이거나 그 지역에 직장을 가진 사람이고, 차림사들 역시 대부분 지역 주민이다. (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거주지와 가까운 식당에서 일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사업주 역시 그 지역 주민인 경우가 대부분. 지역 내에서 영업과 고용, 소비가 이루어지고 그 이익은 지역 내에서 순환되기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 보고자 한다.
즐겁게 일할 수 있어야 좋은 식당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한 ‘좋은 식당’의 기준은 맛이 좋은지, 서비스가 좋은지, 친절한지, 값이 적절한지, 위생적인지 등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지도 ‘좋은 식당’의 기준에 포함되어야 한다. 기존의 모범음식점을 비롯하여 지자체별로 다양한 지원제도들이 있지만, 노동자 처우까지 고려하는 조례안은 <참 좋은 식당 조례>가 유일하다.
만약 이 조례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 내의 음식점을 심사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지,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지, 종사자와 식당이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환경인지를 따져 ‘참 좋은 음식점’으로 선정되면 그 음식점은 지역차원의 홍보와 더불어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는 각종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이 흐름에 동참하는 음식점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차림사들의 노동환경이 바뀌어갈 것이다. 음식점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노동기준을 충족하기 어렵지 않냐는 볼멘소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식당 영업자 대상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잦은 인력 교체였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잦은 이직을 낳고 이는 영업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좋은 일터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음식점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조례제정운동에 관심을
하반기에는 <참 좋은 식당 조례>의 의미와 내용을 알리는 활동을 계획 중이다. 민우회가 소재하는 지역에서는 민우회가 주축이 되어 조례제정운동을 펼쳐 나가겠지만, 이 조례의 취지와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 누구라도 자신의 지역에서 이 운동을 함께 펼쳐가길 기대한다.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 학생인권조례 등은 지역을 기반으로 조례제정운동이 펼쳐졌고 그 과정에서 조례가 지향하는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참 좋은 식당 조례> 역시 제정운동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일터’이며, 좋은 일터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가치를 업종과 지역을 넘어 전 사회적으로 퍼뜨릴 수 있었으면 한다.
덧붙임
눈사람 님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