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글이는 HIV/AIDS감염인(이하 HIV감염인)이다. 나와는 쉼터에서 같이 살았고, 자립해서도 같이 살았다. 다글이는 작년 8월경부터 허벅지 쪽이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봤지만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통증이 더 심해져 정형외과에 의뢰해 정밀 검사를 해보니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라는 진단이 나왔다. 대뢰골두 무혈성 괴사는 혈액순환장애로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여 허벅지 뼈, 즉 대퇴골의 머리 부분이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하게(죽게) 되는 병이라고 한다. 다글이는 양쪽 다 뼈 조직의 괴사 부위가 커서 벼가 함몰된 상태였다. 치료방법은 망가진 관절을 제거하고 인공 고관절을 삽입하는 ‘인공 고관절 전치환술’을 받아야 했다. 인공 고관절 수술을 받기위해 올해 4월초에 수술과 입원 날짜를 예약했다. 그런데 입원 며칠 전부터 왼쪽 다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지고, 몸에 열까지 나는 것이었다. 입원해서 조직검사를 해보니 뼈에 염증이 생겨 인공고관절 수술은 뒤로 미루고,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먼저 해야만 했다.
다글이는 척추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여 의사들이 나누는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담당 교수는 염증제거 수술을 끝내고는 전공의들에게 봉합수술을 맡기고 먼저 나갔다. 두 명의 전공의가 봉합을 하던 중 한 명이 ‘어!’하는 소리를 내더니 ‘찔렸어!’라고 했다. 순간 다글이는 너무 놀라면서 걱정이 앞섰는데 다른 한 명의 전공의는 ‘그래?’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고 한다. 두 명의 전공의는 이후에도 별다른 말도 별다른 동요도 없이 수술을 마쳤다. 다글이는 병실에 올라와서도 바늘에 찔린 의사를 걱정하며 괜히 자신이 미안해진다고 했다. 난 ‘의사들이 대처방법과 예방방법을 다 알고 있을 테니 걱정마라, 너가 HIV인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의사들도 놀라지도 않고, 동요도 없이 수술을 마치지 않았냐!’ 하면서 다글이를 달랬다.
염증제거 수술을 하고, 회복을 한 뒤 다시 인공고관절수술 날짜를 잡아 지난 7월에 양쪽 다리 수술을 마쳤다. 다행히 인공고관절수술 경과가 좋아 다글이는 현재 요양병원으로 옮겨 회복을 기다리는 중이다. 바늘 찔림 사고이후 양쪽 인공고관절 수술을 할 때에 별다른 문제는 전혀 없었다. 의사들이 뭔가 다른 반응을 보인다거나 바늘 찔림에 대한 언급을 하는 등 은 전혀 없었다. 다글이가 수술받았던 서울대병원은 HIV감염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병원 중에 하나다.
똑같은 수술, ‘특수장갑’ 없다고 거부한 병원
그런데 똑같이 HIV감염인이 많이 이용하는 병원인 S대병원은 다글이의 경우와 아주 상반된 결과를 보여줬다. 작년 2월 서울의 S대병원은 수술용 '특수 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HIV감염인의 ‘인공고관절 전치환술’을 거부하였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이라 판단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작년 7월 7일에 S대병원장에게 향후 동일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인권교육 실시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S대병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은 보건복지부는 해당지역인 서대문구 보건소에 의료법의 진료거부에 해당하는지 실태조사와 행정처분 지시를 내렸다. 실태조사를 벌인 서대문구 보건소는 작년 9월에 의료법15조(진료거부 금지 등) 위반으로 서대문경찰서에 S대병원의 의사를 고발했다. 그런데 작년 12월에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복지부는 올해 1월에 이 사건을 내부종결로 처리해버렸다.
그럼 다글이는 어떻게 수술 받았을까? S대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한 그 분도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데 어떻게 받았을까? ‘특수 장갑’을 사용해서? 다글이를 수술한 의사도 ‘특수장갑’을 꼈다면 바늘에 찔리는 걸 피할 수 있었을까? 그런 특수장갑이 있다면 의료인의 안전을 위해 병원이 미리 구비를 해놨어야 한다. 특수장갑을 구비하지 못한 책임을 HIV감염인에게 돌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에이즈만을 예방하는 ‘특수장갑’은 없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B형간염이나 에이즈처럼 혈액을 통해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질병으로 밝혀진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에이즈란 질병을 몰랐듯이 말이다. 의대교과서는 의료인들에게 알려진 질병만 예방하라고 가르치지도 않고 오히려 알려진 몇몇 질병에 대해서만 예방조치를 했을 때 의료인들이 더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체액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라고 한다. S대병원에서 말한 ‘특수장갑’은 도대체 어떤 장갑일까? 형사와 검사는 무슨 이유로 ‘특수 장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까?
작년 S대 병원 수술거부 사건을 의협신문에서 취재한 기사를 보면 다국적 기업 의료기기 회사가 특수 장갑을 수입하지만 수요가 없어 단 한건도 수입 한 적이 없다고 한다. S대 병원의 HIV감염인 수술거부 사건은 ‘특수 장갑’의 부재가 아니라 의료인의 인권의식 부재, 윤리의식 부재가 원인이다.
HIV감염인 차별하는 동북아 허브병원?
사실 이런 수술거부, 진료거부는 우리 HIV감염인에게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1,2차 병원에서 진료거부, 수술저부를 당하는 일이 너무 흔한 일이었기에 진료거부를 피하기 위해 당장 몸이 아파도 대기 시간도 길고, 거리도 먼 종합병원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에서 그것도 HIV감염인을 제일 많이 진료하는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한 일은 놀라움을 넘어 분노할 일이었다.
S대 병원 홈페이지에 가보면 최고의 의료기술과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춰 외국인을 많이 유치하는 동북아시아 허브병원이 되겠다며 광고한다. 그리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병원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도 HIV감염인은 제외인가보다. S대 병원은 치과 앞에 ‘우리 병원은 AIDS청정지역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건 적이 있었다. 치과에 진료를 보러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에이즈 검사를 해 HIV를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HIV감염인을 진료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게 느껴진다. 그렇지 않아도 진료거부가 가장 심한 곳이 치과여서 감염인들이 제일 많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진료과목이다. 그래서 치과도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을 갈 수 밖에 없는데 ‘에이즈 청정지역’이라니, 그 문구는 HIV감염인은 우리 병원에 오지 말라는 경고와 같다.
이제 어디 가서 차별금지를 호소할까요?
이런 차별의 발생보다 더 큰 인권적 문제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거부를 당한 경우에도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①항은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환자들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거부당했을 때 이 상황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또한 의료기관을 상대로 개인이 ‘진료거부’임을 증명하고 싸울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구제조치가 미흡하다. 이것은 단지 HIV감염인 뿐 아니라 힘없는 모든 환자들이 당면하는 문제이다. 더군다나 에이즈로 인한 치별과 냉대로 사회적으로 위축되어있는 HIV감염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HIV감염인을 진료해본 적이 없어서’ ‘HIV감염인을 치료할 장비가 없어서’, ‘병실이 없어서’와 같은 불명확한 이유를 들어 치료를 거부하기 일수였고, 항의하거나 이유를 물어도 병원이 HIV감염인의 의견을 무시하면 그만이다.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제기하면 ‘진료거부는 위법’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더 적극적으로 용기를 내어 이번 경우처럼 국가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하여 권고가 나와도 결론은 검찰의 무혐의 처리다. S대병원의 경우는 국내에서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특수 장갑’의 미비와 같은 구체적인 사유가 있는데도 진료거부로 처벌 할 수 없으니 감염인에게는 암담한 현실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HIV감염인이 직접 고소하여 법정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이즈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심한 우리 사회에 자신의 신원을 노출해야 하는 또 다른 사회적 위험을 감수해야하고, 그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런 식의 법의 잣대라면 기대할 게 없다.
‘특수장갑’이 아니라 인권의식이 필요해
1980년대 초 미국에서도 의사들이 HIV감염인의 치료를 거부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에는 에이즈에 대한 연구가 다 이뤄지지 않았기에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사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에이즈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예방방법과 대처방법들이 밝혀졌고, HIV감염인에 대한 치료거부도 줄어들었다.
1988년 미국의 의사협회는 ‘우리는 HIV감염인의 치료를 거부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광고까지 신문에 싣기도 했다. 한국의 의사협회는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큰 목소리와 적극적인 집단행동을 잘 보여준다. 2000년 의약분업 때에도 그랬고. 작년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문제에도 그랬다. 최근 의료보험 포괄수가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집단 파업을 하려다 여론에 밀려 중단한 일도 그렇다. 한국의 의사협회는 자신들의 이익에 큰 목소리를 내기 전에 의사로서 의무는 다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덧붙임
윤가브리엘 님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