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일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인권, 생태, 학생, 청소년, 노동, 성소수자, 여성 등 다양한 연대단위의 활동가들과 공연, 의료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농성장을 함께 지켜주었습니다. 장애인권운동은 농성과 함께 저상버스를 제대로 도입할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전국 곳곳의 버스정류장에서 이어갔고, 그 사이 치매에 걸린 부인의 수급권을 유지하기 위해 삶의 벼랑으로 내몰려 죽게 된 할아버지, 활동보조인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화재로 사망한 김주영 동지와 파주의 두 남매... 이 말고도 숱한 생때같은 사람들을 하늘로 보냈습니다. 이웃 동네 쌍차농성장 옆에 함께살자 농성촌이 꾸려졌고, 그리고 계절이 몇 번 바뀌었고, 대통령도 바뀌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많이 웃고,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농성장은 광화문에 있습니다.
광화문 농성장에는 김주영 동지와 파주의 두 남매 박지우, 박지훈 님의 분향소가 차려져 있습니다. 분향소 앞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두고 간 화분과 편지들이 놓여있고요.
혹시 이분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르는 분도 있을까 싶어 설명을 붙입니다.
故김주영 동지는 활동보조인이 밤 11시경 퇴근한 후 새벽 2시경 집안에서 불이 났고, 119에 구조 요청도 했으나 다섯 발자국... 다섯 걸음만 나가면 살 수 있는 거리를 나가지 못해 10분 만에 꺼질 불 속에서 질식으로 숨졌습니다. 故박지훈, 박지우 님은 둘 다 장애가 있었고 아버지는 일을 하러, 어머니는 이사 갈 집을 알아보러 나간 저녁 시간, 역시 집안에서 불이 났고 두 분 모두 숨졌습니다.
광화문 농성장이 말하고 싶은 건, 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것입니다. 장애등급제는 개개인의 사람들의 환경과 필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의료적인 기준으로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기고, 그나마 몇 되지도 않는 복지서비스를 등급만으로 줄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제도입니다. 장애당사자들의 요구로 활동보조 시간이 늘어나자 정부는 더 높은 기준을 만들고 ‘가짜장애인’ 여론몰이를 해대며 장애등급을 하락시키더니 그나마 몇 되지도 않는 복지서비스를 앗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이 없어 사람이 불 속에서 죽어갔는데, 정부는 등급하락이라는 공포의 칼을 휘두르며 장애인들을 떨게 만들고 있는거죠.
부양의무제는 꼭 연좌제 같습니다. 빈곤이 죄인 양 나의 빈곤을 나의 가족에게 책임 지우려는 걸 보면 말입니다. 나의 빈곤이 오롯이 나의 무능 때문이고, 나의 업인 것처럼, 그래서 내가 가족과 인연도 끊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불능의 상태임을 확인시켜야만 40만원 겨우 넘는 돈을 적선하듯 던져 주는 사회, 이 역시 점점 까다로워지는 기준 탓에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사람들이 줄고 줄어드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습니다.
광화문 농성장은 이런 무거운 죽음들과 함께 있지만 즐겁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죽어간 이들에게 축 쳐진 어깨를 보이는 것이 더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죠.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200일 정도면 널리 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200일이 훌쩍 넘어도 이 자리에 있을지 모르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길이 무섭지만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농성에 함께 해주길 바랍니다. 함께 무엇을 하면 좋을지도 함께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물론 광화문의 농성장이 이웃 농성장과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더 많이 고민되고 이야기가 오고 갔으면 합니다. 놀러오세요! 광화문 농성장으로!
* 이런 기회를 틈타 공지 하나 남깁니다. 2013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단체들에게는 420공동투쟁단(4월까지만 활동하니 부담없이!)에 참여해주실 것을 요청드려요.
개인이신 분들은 420장애인차별철폐를 함께 선언할 수 있는 기회!‘1000인 선언단’에 참여해주실 것을 요청드려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sadd.or.kr)에 있어요. 전화(02-739-1420)주셔도 됩니다.
덧붙임
윤경 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