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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밀양의 경관과 주민의 삶은 떼어놓을 수 없다

밀양을 마음에 담고 난 이후부터 어디를 가든 송전탑에 눈이 더 간다. 서울에선 찾아보기 힘들지만 일단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주렁주렁 수 겹의 송전선로를 매달고 있는 송전탑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송전탑들은 어김없이 전기사용이 집중된 서울과 수도권을 향해 줄달음쳐오고 있다. 하루의 시작부터 마감까지 그 전선을 타고 오는 전기에 의지하고 산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전기를 소비하고 있다. 쉽게 글을 시작하지 못했고 망설임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깜빡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먹먹해 하는 동안에도 나는 끊임없이 전기를 쓰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 송전선로를 타고 무형의 전기 외에 ‘밀양의 눈물’도 함께 흐르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직장을 좇아 2012년부터 1년 반을 혼자 부산생활을 한 적이 있다. 반년 정도 학교-집만 오고가던 생활에 염증을 느낄 즈음 제 발로 찾아간 곳이 부산귀농학교였다. 정식 교육생으로 등록해 강의와 연습 수준에서나마 종종 실습도 참여했다. 일하는 건물의 볕 좋은 옥상에 스티로폼 박스를 주워와 상추와 치커리를 기르는 재미도 제법 좋았다. 그리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동문들과 어울려 시골의 귀농선배들을 찾아다녔던 몇 번의 기억은 그 곳에서 정 붙이고 정 나눌 벗들을 만나던 귀한 시간이었다.

그 즈음 몇 번 드나든 적이 있는 밀양의 귀농 선배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내와 가까운 까닭에 농지가격도 비싸 그의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암만해도 땅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다른 한편, 그 분의 일터와 삶터는 송전탑 건설부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수년 째 끌어온 송전탑 갈등에 70대 노인이 자살까지 했는데도 무감한 동네의 인심이 무섭다며 덧붙이는 말이 그러했다. “귀농자들 마을 속으로 들어가 잘 사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한적한 산골짜기 찾아 들어가는데, 그러지 마라. 개발 안 될 거 같지만 송전탑 같은 건 그런 곳을 꼭 찾아 들어오더라.”
[사진설명] 송전탑이 96번 현장에 세워지고 있는 모습

▲ [사진설명] 송전탑이 96번 현장에 세워지고 있는 모습


산과 산 아래 자리한 마을은 송전탑의 지배를 받는 공간이 될지도

밀양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7-80대 노인들이 5분도 못 되 들려나올 것을 알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나무 지팡이에 몸을 기대 가파른 경사로를 한 시간씩이나 기어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대부분의 송전탑이 건설될 예정지들이 하나같이 모두가 산의 어깻죽지 가까이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송전탑이 건설되고 나면, 평생 마을을 감싸던 뒷산은 곧 100m도 넘는 철탑의 위용에 갇혀 버리게 된다. 그 산은 그저 배경이었을까? 밀양 주민들에게 그 산은 마을의 울타리이고 조상님들 묻힌 선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산과 산 아래 자리한 그들의 마을은 곧 거대한 송전탑의 지배를 받는 공간이 될 것이다.

송전탑 건설로 밀양의 경과지 주민들이 겪고 있는 피해와 고통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송전선로가 뿜어낼 전자파와 코로나 소음에 따른 건강상의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평생을 가꾸어 온 전답과 가옥의 재산상의 손실도 막대하다. 거기에 더해 수십 년에 걸쳐 자연과 더불어 만들어 온 농촌경관은 결코 쇳덩어리 탑 건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밀양의 송전탑은 같은 송전탑 문제를 겪고 있는 경북 청도뿐 아니라 골프장으로 몸살을 격고 있는 홍천이나 산업폐기물처리장 문제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충남의 부여나 예산의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돈 더 안줘도 된다. 제발 지금처럼 농사나 짓고 살게 가만히 두라!
[사진설명] 논에도 송전탑은 세워졌다.

▲ [사진설명] 논에도 송전탑은 세워졌다.


이중의 수탈을 경험하는 한국 농촌

이 지점에서 나는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농정에 그저 한숨만 나온다. 도시의 속도와 경쟁을 떠나 농촌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한 해에 1만 가구를 넘어선 시대라고 한다. 이러한 이동이 순수하게 개인적 선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농촌지역 지자체 공히 농업농촌의 6차산업화나 로컬푸드를 강조하며 귀농귀촌과 친환경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적 배려는 분명 이러한 인구이동의 의미 있는 유인책이 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저 이대로만 살겠다고 호소하는 농촌 주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자본과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 온갖 종류의 개발과 농촌을 파괴하고 농민을 그 땅에서 쫓아내는 일들도 무수히 반복되고 있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파고를 지나면서 한국의 농촌은 이중적으로 축소되어 왔다. 내부적으로는 농업에도 산업화의 논리가 스며들면서 농지규모가 늘어나고 자본과 기술집약적인 농업분야가 확대되어 갔다. 외부적으로는 도로 등의 기간시설의 확대 혹은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산업 및 도시적 목적에 대한 용도변경이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농촌경관(rural landscape)’은 점차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경관 혹은 농촌 경관이라는 용어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자. 유럽연합(EU)은 2004년부터 발효된 유럽경관협약(European Landscape Convention)이라는 국제규범이 존재한다. 이 협약에 의하면, 경관은 ‘자연경관의 파노라마’와 같은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적 요인 그리고/또는 인간적 요인의 작용과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그 특성이 결정되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지역”이라 정의된다. 풀어서 설명하면 경관이란 인간사와 무관하게 저 멀리 배경처럼 펼쳐진 경치의 이목구비를 넘어서, 그 산과 토지를 삶터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적, 문화적 행동이 누적적으로 쌓여 있는 하나의 장소(place)인 것이다. 희귀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소위 ‘명승’을 보호하려고 만든 협약이 아니다. 이 협약에 의해 유럽의 국가들이 대표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곳들은 다름 아닌 농촌과 농촌의 경관이다.

농촌경관을 보호하는 영국

보다 구체적으로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사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생국이자 근대화의 기수였지만, 식량자급율이 70%를 상회할 정도로 농촌과 농업,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영국의 농업정책은 1) 혁신적이고 경쟁력 있는 농업 및 식품산업 육성, 2) 환경보전과 동물복지 기여, 3) 농촌지역사회의 지속성을 3대 목표로 삼고 있다.

이중 두 번째 목적인 환경보전의 세부내용은 ‘농촌경관 자원의 복원 및 관리를 통해 농촌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규정을 포함한다. 영국 정부가 농촌경관 유지를 위해 지출하는 예산은 전체 농촌개발 예산의 4분의 3이 투자되고 있다. 농촌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다리 놓고 도로 포장하고 농산업 시설을 확충하는 대신 지역의 농민이 자신의 농촌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영국은 수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농산물 자급의 중요성을 몸소 느꼈기에 농업보조금을 농산물 생산량 제고를 통한 식량안보의 달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최근엔 농산물 생산기지라는 전문 기능을 넘어서, 농업환경을 유지함으로써 국토를 아름답게 관리하고 도시인들에게 안식처이자 쉼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훨씬 더 강조되면서, 농촌경관의 보전과 보호에 대한 지원이 증가하고 있다.

형식만 놓고 보자면 한국에도 농업의 6차 산업화 혹은 농촌관광 활성화와 같은 유사한 정책을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런데 영국의 한 농촌마을 농민은 담 1m당 10파운드 가량의 보조금을 받으며 태풍에 쓰러진 자기 집 돌담벼락을 보수하는 반면, 한국의 밀양의 한 농촌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앞산과 뒷산, 심지어는 이치우·이상우 할아버지 형제들처럼 평생을 가꾸어온 논밭 한가운데 아파트 40층 높이의 송전탑을 꽂지 말라고 맨몸으로 싸우고 있는 노인들이 있다.

이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한 국가가 농업, 농촌, 농민을 어떻게 볼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분기점일 것이다. 유럽의 도시인들은 도시를 벗어나 한 시간만 가면 만날 수 있는 농촌경관의 존재 자체를 편안하고 안락한 쉼터로 인식한다고 한다. 인식을 넘어서 물질적인 보상에 대한 합의도 중요하다. 도시인들은 영국에서 대부분의 농민들의 농가소득의 절반 정도가 유기농 장려나 경관보호 등의 명목으로 지급되는 보조금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으며, 이를 기꺼이 용인하고 있다.

사실 수준 차이가 너무나 확연하니 유럽의 사례를 소개할 뿐 이렇게 가자는 제안은 상당히 민망할 수밖에 없다. 당장 농민 1인당 경작규모가 한국의 10배 이상이 되는 유럽의 농민들과 한국의 농민들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타당성이나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라 비판도 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굳이 ‘농촌경관’이라는 개념어를 사용해가며 밀양의 싸움을 옹호하려는 것은, 경관을 보자는 것은 총체론적(holistic)으로 그 장소를 보자고, 나아가 그러한 경관 만들기, 장소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자국을 함께 살피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소유권 개념으로 제한하면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지와 송전선로변 33m 이내에 속하는 토지에 대해서만 보상을 해주면 끝이라 생각하기 쉽다. 대안이 있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별 필지를 넘어서, 마을을 넘어서, 마을과 잇닿아 뒷산과 앞산을 모두 포함하도록 계획과 관리의 수준을 경관으로 상향 조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 뒷산은 누구네 선산이 있는 곳, 저 앞산은 아들의 탯줄이 묻힌 곳, 저 오른쪽 구릉은 누구네 과수원이 있는 곳, 그 앞으로 펼쳐진 논밭은 자식들 공부시키고 구순의 노모 부양에 필요한 곳간. 그러니 어찌 밀양의 경관과 밀양의 주민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앞서도 설명하였듯,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경관은 명승지가 아니라 논밭과 같은 농경지, 방목용 초지나 목장, 주택과 마을의 돌담이나 생울타리처럼 일상경관들이다. 그 일상의 주체들의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곧 농촌경관을 지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지금 밀양의 노인들은 송전탑과는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다고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다. 몸에 박힌 가시를 방치하면 가시는 살을 파고들며 깊은 상처로 곪게 만든다. 밀양 노인들에게 송전탑은 가시보다 심한 이물감으로 마을을 압도하는 고압적인 거대 구조물이다. 밀양의 산골마을마다 지금의 노인들을 끝으로 마을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을 당장 쫓아내려는 것이 아니라면, 송전탑 건설은 이제, 멈/춰/야/한/다.


1월 25~26일 밀양희망버스를 함께 타실 분은 아래 주소를 참고해주세요. http://my765kvout.tistory.com/360
덧붙임

엄은희 님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