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에너지체제 전환’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내부 월례토론 시간을 가졌다. <기후정의동맹>에 함께 하고 있는 가원의 고민에서 비롯된 자리였다. 동맹에서 활동하며 만나는 발전소 폐쇄를 앞둔 발전노동자,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농어촌 주민의 투쟁을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중적인 기후정의투쟁으로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문제의식을 벼려보고자 했다.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전환 과제
온실가스 감축이 기후위기 대응의 일차적 목표가 되면서 석탄화력발전소 퇴출과 함께 에너지전환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됐다. 너도나도 에너지 전환을 말할 때, 전환의 핵심은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이다. 에너지 발전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석연료를 줄이고 그만큼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 전환의 상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흐름 속에 지역 곳곳 산지와 농지에 마구잡이식으로 태양광 설비가 들어서며 초록빛이어야 할 자리들이 한없이 깎여나가는 형국이다. 한편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만이 에너지 전환의 목표로 여겨지면서 원자력이 ‘청정한’ 에너지로 부각되고,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기점으로 이어져 온 ‘탈원전’ 요구는 윤석열 정부의 원전 드라이브로 가로막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모두의 삶을 위협한다고 말하지만, 지역민들의 삶터가 파괴되고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의 일터가 닫히는 문제는 기후위기 시대에 불가피하고 부수적인 피해처럼 여겨진다. 최일선에서 기후위기를 맞닥뜨리며 겪어내고 있는 이들과 함께 정의로운 전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어떻게 요구하며 싸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특히 기후운동 안에서 공공성에 기반하지 않고, 발전사업을 민간에 더 열어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지역의 갈등과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주요한 문제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공존한다. 여기에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밀고 있는 정부도, 에너지 산업을 더 많은 돈을 벌 기회로 삼고 있는 기업도 기후위기 대응을 내세우는 상황이다.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각축의 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전환이어야 하는가를 더 질문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다른’ 전환의 상을 그리며 ‘에너지 전환’을 넘어 ‘에너지체제 전환’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벼려야 할 관점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너지원을 넘어 에너지체제 전환을
우선 ‘지금의 에너지체제는 어떠한가’ 먼저 질문하게 된다. 계획부터 생산, 유통, 공급, 이용에 이르는 에너지를 둘러싼 일련의 체계/구조는 그대로인 채 에너지원만을 바꾸면 되는 것인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알려준 밀양 송전탑 투쟁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지금 밀양은 산등성이마다 765kV 초고압 송전탑이 빼곡하게 박혀있다. 송전탑 반대로 시작한 밀양 주민들의 투쟁은 송전선로가 필요한 이유인 신고리 원전 반대로 확장되었고, 언제까지 어떤 발전소를 몇 기를 지을지, 그곳에서 만든 전기를 어디를 거쳐 서울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국가의 일방적인 에너지/전력계획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갔다. 그리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으로 드러났듯이 민간발전사로 쪼개져 경쟁하는 구조에서 위험한 업무는 더 싼 비용으로 외주화되고 안전과 생명이 위태로운 노동환경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 떠넘기며 전력 생산이 이루어져 왔다.
더 많은 생산만을 목표로 일방적으로 수급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며, 생산과정에서는 노동자를 위험에 내몰고, 수송을 위한 송전선로가 삶터를 파헤치며 만들어지고, 삶을 어떻게 꾸려갈 수 있을지 고려 없이 ‘적자’를 문제 삼으며 요금을 인상하고...이렇듯 지금의 에너지체제는 구조적으로 인권침해를 쌓아왔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서 에너지원만을 주목하는데 그친다면, 발전노동자를 고용불안에 내몰고 재생에너지 설비로 지역주민의 고통과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지금의 에너지체제가 양산해온 인권침해를 거울상처럼 반복하며 그 구조를 굳건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후운동에서 에너지 전환의 문제를 에너지원을 넘어 에너지체제의 문제로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나누며 다음의 세 가지 방향으로 구체적인 요구와 운동을 만들어가보자는 제안이다. 1)에너지체제를 전환해야 에너지원도 전환된다. 2)에너지체제 전환의 목표는 덜 쓰는 게 아니라 잘 쓰는 것이다. 3)에너지체제 전환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이다. 이 세 가지 방향을 인권침해 구조로 유지되어온 지금의 에너지체제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더 벼려가는 실마리로 삼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발전노동자, 지역주민들과 함께 에너지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기후정의투쟁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에너지에 대한 권리를 다시 쓰고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