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야기를 띄우는 이곳은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농성장입니다.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서 밤을 보내고, 각양각색 새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맞이하는 이곳은 참 조용하고 평온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한전이, 경찰이, 밀양시청 공무원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작년 10월 다시 공사를 강행하면서 경찰의 비호 속에 한전은 속도전에만 몰두해왔습니다. 무간지옥과 같은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절박함으로 2012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셨고, 2013년 12월 돌아가신 유한숙 어르신은 다섯 달이 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황입니다.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해 인부가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한전은 헬기에 자재를 나르며 송전탑을 세우기에만 급급합니다. 산에 꽂힌 100여 미터 높이의 거대한 송전탑이 곳곳에 보이지만 아직 절망할 때가 아니며, 스스로 나섰던 정당한 이 싸움을 끝까지 하겠다고 주민들은 이야기합니다.
4개면에 들어설 52기 송전탑 중 많은 곳이 완공되었거나 공사 중인 상황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해온 한전은 지난 4월에는 송전탑 부지를 점거하고 있는 주민들의 농성장 4곳을 강제 철거하겠다고 협박해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짜고 치는 고스톱 마냥 밀양시청도 농성장에 대한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보내왔습니다. 101번(단장면 용회마을), 115번(상동면 고답마을), 127번(부북면 위양마을), 129번(부북면 평밭마을) 부지에 세워놓은 움막 안 자리를 주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밀양으로 발걸음을 이어가는 지킴이들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매 끼니부터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것이 힘드실 텐데도, 짧게 며칠 머물다 가는 이 사람들이 참 고맙고 든든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마지막 이 부지를 지키기 위해 하루를 거는 주민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자체가 주는 긴장감과 초조함이 무척이나 클 텐데 그런 내색을 별로 안하시는 게 더 마음 아프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함께 부대끼면서 생기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껄껄껄 저마다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 받는 위안이 참 큽니다. 그 힘이 지난 시간을 버티는 힘이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10년을 싸우면서 밀양 주민들이 품었던 질문 ‘이 나라는 대체 누구의 나라인가?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을 많은 사람이 함께 품고 있는 지금, 국가가 버린 사람들인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이 시간을 견뎌내길. 그 마음으로 얼마 전 4개 농성장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촛불이 켜졌습니다. 돈과 무력을 앞세워 저들이 훼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에 맞서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 시간을, 주민들이 삶을 걸고 지키는 이 자리를 함께 지켜가면서 우리의 기억을 만들어갈 당신을 지금 밀양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높다란 산속에 자리한 농성장의 밤은 차지만 함께 하는 서로의 온기로 오늘 하루도 잘 보냅니다. 그 온기를 더욱 깊고 넓게 퍼뜨릴 당신을 밀양에서 지금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