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입학했을 때도 운동에 ‘운’자만 말하면 선배들의 꾸준한 연락을 받고 영문도 모른 체 학생회 홍보 율동을 해야 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고 1년은 4·19, 노동절 할 것 없이 꽤나 불려나갔다. 하지만 자주 만나고 대화를 할수록 항상 ‘그러니까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둔 선배들이 점점 무서웠고, 결국 학교는 내가 운동을 하고 싶은 공간에서 ‘제외’되었다. 그 이후 학교는 친구들과의 채널이자 취미 생활의 공간, 공부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함께 모여 싸우고 변화를 만드는 공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결과로 사랑방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맺어올 수 있었고 학생 운동에 대한 아쉬움도 별로 없다. 사람이 누울자리 봐가며 다리를 뻗으란 말도 있듯이 활동가가 성직자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말처럼 쉽겠는가.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한 발짝 떨어진 동안 학교도 운동과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공식적인 학생회는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있던 학교 내부의 운동조직이나 동아리들도 자리를 빼앗기거나 해체되었다. 자치 공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학교행정이 들어왔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학교를 학원으로 여기며 학생운동은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한 사이 정말 대학은 정말 학원이 된 것이다.
누울 자리를 찾아다니다 앉은 자리도 뺏기면 이런 심정일까. 거들떠도 안 보던 공간이었는데 괜히 내 영역이 좁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학교 측에서 학생회에 부정선거를 제안해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공간이다. 솔직히 이런 결과가 나를 포함해서 무관심한 학생들만의 탓이라고 단정하고 싶진 않다. 모두가 앉은 자리에서 권리를 말 할 수 있을까? 학교는 그래도 그나마 쉬운 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나 하다못해 아르바이트 해도 목소리를 내는 것은 너무 어렵다. 결국 침묵을 깨트린 사람만 배제당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 공간에서 아무상관 없다는 듯 생활하며 나는 인권 운동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머뭇거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괜히 이제 와서 뭐라도 해야 하나? 5년 넘게 다니고 대학거부? 아니면 정말 존재감 없이 조용히 수업만 들을까? 도대체 뭐하려고 학교를 다닌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해답이 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나마 질문만 던지는 것을 멈추고 다시금 움직이고자 마음먹게 된 사소한 계기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죄수의 딜레마를 인터넷에 검색한 것이다. 그랬더니 극복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딜레마의 무한반복이라고 한다. 침묵 할수록 나에게 돌아올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딜레마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앉은자리에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딜레마의 극복 징조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것도 안했는데 마음이 한결 놓였다.
연애에서 더 사랑하는 사람이 조급한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 조급하다던가. 한 숨 돌리고 나니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떡하지 보다 뭐든 해봐야 다시 고민의 여지가 생기겠다는 결론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니고 있는 학교를 비판하는 전단지도 만들어보고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거부하는 학교를 찾아가 같이 항의행동을 하기도 했다. 결국 무엇보다도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꾸준히 찾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이 딜레마의 무한반복 속에서는 침묵은 깨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침묵을 깨트리는 목소리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함께 모여서 함성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덧붙임
디요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