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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요의 인권이야기] 군대는 정말 바뀔 수 있을까?

요즘 군대와 관련한 인권 이슈가 뜨겁게 달궈져 있다. 총을 들고 탈영을 했던 병사와 괴롭힘과 구타 속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병사의 사건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군대 내부의 폭력적인 상황과 현실을 모른 척 넘어가기에는 개인적인 군대의 경험이 발목을 잡는다. 왜냐하면 나 역시 ‘관심병사’였고, ‘현역 복무 부적합’이라는 ‘보통’의 사람은 듣지 못한 판정을 받은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군대 내에서 관심병사가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 모르지만 2년 가까운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는 동안 관심병사 리스트에 오르지 않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 할 정도로 그 문턱은 낮을 것이다.(실제로 군대에 있을 때 몰래 관심사병 리스트를 볼 기회가 생겼는데 나에 대해서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보기도전에 너무 사람이 많아서 내 이름은 찾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현역 복무 부적합’이라는 타이틀이다. 이 타이틀을 얻었다는 것은 조기에 군대를 나와서 그대로 제대를 했거나 공익근무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해 약 30만 명이 입대를 하고 4천여 명이 이렇게 군대에서 나오게 된다.(이 수치도 최근 쏟아지는 기사들을 통해 알았다) 대략 70~80명에 1명은 이런 방식으로 나온다는 것이고 여기에 섣부른 일반화를 하면 복무 부적응을 하는 사람보다 다치거나 아파서 제대하거나 사망하는 사람들이 비슷하거나 더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나와 같이 복무 부적응 심사를 받은 1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한 차례이상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관심병사정도의 관리 대상에서 복무 부적응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 경위에도 소속된 부대 내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사고가 2건이나 연달아 일어났던 것이 관심 병사들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상당히 크게 작용했었다. 게다가 짧은 군생활을 하는 사이에도 나와 같은 울타리 안에서 다치거나 아파서 조기 전역을 한 사람도 두 명이나 되었다. 같은 기간 복무 부적함 심사를 받은 사람이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많은 편이다. 이는 4천명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상하게 한다. 그렇다면 한 해 4천명이 복무 부적응으로 조기 전역한다는 사실은 운이 좋아서, 죽지 않고 내 발로 걸어 나가는 숫자가 4천명뿐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적고나니 확실히 나는 운 좋게 군대를 나온 사람으로서 최근의 군대와 관련된 괴롭힘과 폭력 문제 등등에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모른 척 하기에는 양심상 조금 찔리지만 이 문제들을 나의 문제로 마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진 않았다.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입대하기 전엔 군대에서 하루가 멀게 힘들다며 연락오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조기 전역을 하면서 비슷하게 제대한 이 녀석들과 상당히 소원하게 되었다. 중간에 나올 만큼 적응을 못한 나는 이제 막 만기로 전역했다는 사실이 훈장인 그 친구들에게는 내가 부끄러운 친구였던 것이다. 또 나와 입대를 비슷하게 한 대학 친구들은 그렇게 연락이 안 되더니 내가 나온 소식은 거의 실시간으로 듣고 연락해 부러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대학 친구들의 군생활이 슬슬 끝나갈 쯤엔 나보다 자신들을 우위에 두며 나를 걱정했다. 당시에는 친구라는 녀석이 내가 힘들었던 혹은 힘든 이야기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는 나쁜 녀석들이라고 속상해 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도 든다. 군대라는 장소가 나는 물론 군대를 거쳐 간 친구들에게도 폐쇄적인 권력관계에 따른 폭력을 구조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 구조 안에서는 나와 같이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배제당하고 피할 곳 없는 폭력에 노출되는 지를 충분히 알았기에 전역을 한 후에도 자신들이 우위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지키려 한다.. 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런 배제와 폭력의 군대에서 최근의 사례들은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가 아니라 ‘있을 법한 일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사진 설명] 8월 25일

▲ [사진 설명] 8월 25일 "민·관·군 병영문화 혁신위원회 제 1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출처:국방부


이 사실은 나뿐만이 아닌 친구들도 알고 있고 사실 우리 사회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한참 회자 되었던 말인 ‘참으면 윤일병 안 참으면 임병장이 되는 군대에 내 자식을 보낼 수 없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사건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나와는 상관없는 분위기로 만들던 차가운 냉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어찌 보면 현실에 대한 올바른 직시이자 성토이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와 별다를 바 없는 포기이자 회의로 읽히기도 한다. 사람들의 군대 폭력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실제 일상에서 군대를 가야하는 사람 혹은 보낼 걱정을 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 그 걱정에 공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같은 사고가 터질 때 입대하기 적절한 시기라고 말하는 현실 인식과 서로 이어져있다. 결국 군대를 통해서는 인권에 대한 전망, 평화에 대한 전망을 내다 볼 수 없기에 지금 당장 어떤 현실적으로 이득이 되는 판단만을 고민하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제2의 윤일병 사건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여기에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구제와 복지 향상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대책들, 그나마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문건을 내부적으로 돌리고 있는 국방부를 바라보며 그 인식은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정말 정말 솔직하게 경험에 따라 판단하면 난 결국 군대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이라는 암울한 판단을 갖고 있다. 나와 같이 나온 4천명 중에 2천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도망갈 곳이 없는 곳에서의 폭력 경험은 나에게 전망이라는 것을 앗아간 것이다. 마지막 조기 전역 심사를 받을 때 어떤 간부가 나에게 물어봤다 지금이라도 군생활 마저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다고 정말 나갈 것이냐고 말이다. 그때 군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일이 생각났다. 어떤 증상인지를 말하라면서도 뭐 때문에 힘든지 어떻게 힘든지는 말할 필요 없다던 군의관의 말이 상기되었고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군대가 아닌 울타리 밖에서 내 삶의 전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군대 내부의 폭력의 사건들이 폭로되는 과정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싸움의 현장이나 그러듯 ‘외부세력’의 개입이 필요하다. 지금도 점점 전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하소연 할 곳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건 외부의 손길이다. 이 글을 통해서는 병역의 의무라는 것의 중요성이 남북 대치상황이기 때문이란 변명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병역의 의무는 황금 같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만 해방시켜주는 빚더미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의 전망을 가질 수 있어야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한 ‘외부’가 군대에 필요한 것이다. 이는 윤일병의 존재가 드러난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세월호사건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하듯 말이다.
덧붙임

디요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