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주] 2008년 8월 육군22사단 보통군사법원은 군형법 92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2009년 11월 2일 쥐도 새도 모르게, 60여 년 만에 군형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2010년 2월 3일부터 시행 중인 새로운 군형법에서도 이 조항은 삭제되지 않았다. ‘강간과 추행의 죄’로 새롭게 탈바꿈했고 오히려 법정형이 2년으로 늘어나면서 더욱 개악되었다. 이 글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계류 중인 (구)군형법 92조에 대해 이야기한다.
1차원 : 법조항만 보더라도 다분히 위헌
“계간(鷄姦)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군형법 92조 조항이다. 육군 22사단 군사법원은 동성애자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이 조항의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였고 2010년 6월 11일 첫 공개 변론일이 있었다. 현재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 조항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 위헌성을 충분히 알 수 있으며 동성애자를 처벌하고 차별하는 조항임이 명백하다. 먼저 ‘계간 鷄姦’이라는 단어를 보자. 이는 남성 동성애자의 성 행위를 ‘닭’에 비유하는 단어로 동성애를 비하하는 단어이다. 이런 단어는 그 사용만으로도 충분히 동성애/동성애자를 혐오스럽게 만들뿐만 아니라 혐오를 조장한다.
또한 강제/비강제 여부와 장소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없다. 그래서 휴가 중인 동성애자 사병들의 합의에 의한 성관계마저도 처벌하고 있다. 이성애자 사병들은 휴가 중 애인과 성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다. 그런데 이 조항으로 인하여 동성애 사병은 휴가 중에도 절대적으로 애인과 성행위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동성애자들은 이 법 조항으로 인하여 언제든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군형법 92조가 동성애/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차원 : 92조가 삭제된다고 군대 안에서 동성애자들의 성행위가 이루어질까?
92조와 관련한 여러 글들에서 보이는 댓글들은, 마치 이 조항이 사라지면 군대 안에서 동성애자들이 자유스럽게 성행위를 할 거라고 단정 짓는다. 또한 상급자가 하급자를 강제로 성폭행/성추행 해놓고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말하면 어떻게 할 거냐며 되묻기도 한다. 이 태도는 국방부가 보이는 태도와 똑같다. 이 조항이 삭제될 경우, 군대내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행위가 만연해져 군기가 문란해질 거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더욱이 이런 댓글을 다는 이들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와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며 마무리 짓는다. 오히려 이들이 정말로 군대를 다녀왔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동성애자가 살아가기에 군대가 편해 보이느냐고. 군대에서 당신들은 동성애자를 그렇게 많이 보았냐고.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도 힘들다. 그것은 사회적 편견/혐오 등이 너무 크게 작동하기 때문인데 군대 안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혐오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군대는 상명하복, 계급주의 등으로 사회보다 더욱 폐쇄적이며, 동성애자가 자신을 드러내기 더더욱 어려운 공간이다. 그렇기에 많은 남성 동성애자들은 군대라는 문제로 괴로움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랑 법 조항 하나 사라진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전혀 거리낌 없이 드러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오산이다. 또한 개정된 군형법에서는 강제적인 성폭력/성추행을 처벌하는 조항이 따로 존재하며, 그 조항들로 성폭행/성추행은 얼마든지 처벌 받을 수 있다.
3차원 : 인생이 정말 아름다워?
월드컵 때문에 잠시 주춤했지만, 한동안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이슈가 됐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동성애 드라마 허용/반대라는 주제로 토론과 투표를 하기도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초반 이슈는 단연코 동성애/동성애자다. 언제나 주변인으로 존재하던 동성애자가 가족의 한 명으로 등장하자 많은 이들이 더욱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드라마 작가라고 알려진 김수현 씨가 쓴 작품이기에 더욱 주목 받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해당 드라마 게시판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집단으로부터 폭격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동성애 혐오가 드러난 적은 별로 없다. 다들 무시하거나 언급을 회피하거나 했지, 이렇게 대놓고 혐오를 드러내놓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글들이 오해나 편견에서 비롯된 주장들을 펼치거나 종교적인 이유를 대며 자신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그 중에는 작가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드러내는 글도 있다. 김수현 작가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괜스레 미안해진다. 동성애/동성애자에게 호의를 보였다고 성격과 정신상태 운운하는 글들을 보면서 일반시민들이 동성애/동성애자에게 호의를 표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로 인생이 아름다워지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과 상대하기도 싫다고 무반응으로 있다면 동성애/동성애자 혐오자들은 자신들이 주장이 옳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또 더욱더 적극적으로 동성애/동성애자를 옹호하면 당연하다는 듯 ‘너도 그거냐?’라며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때가 제일 중요하다. ‘아니, 난 그 쪽이 아니지만……’이라고 대답하기 보다는 동성애/동성애자가 포용되는 사회가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라는 점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4차원 : 동성애를 찬성하십니까?
이 질문은 공개 변론일 당시 헌법재판관 중 한 명이 참고인들에게 던진 첫 질문이다. 어떤 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데 왜, 동성애/동성애자들에 대한 찬/반, 혹은 인정/불인정과 이해/불이해 등을 표현해야 하는 걸까? 헌법 재판관만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들-언론사 기자나 프로듀서들, 과제를 하는 학생들 등-도 첫 대화를 동성애/동성애자들에 대한 찬/반, 혹은 인정/불인정과 이해/불이해 등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그렇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고……”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인정하고 있으며……” 이렇게 첫 질문이 오면 일장 연설부터 해야 하니, 그 인터뷰는 재미없어진다.
내가 소수자니 그냥 이해하고 참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왜 내가 사랑하는 것에 누군가의 찬성을, 이해를,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다 같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이성애자들은 자신의 사랑에 찬성을, 이해를, 인정을 받지 않고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것일까?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 재판정에서 외쳤지만, 내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도 않고 유일하지도 않다. 그저 난 동성을 사랑 할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일 뿐이다. 동성애/동성애자들의 모습 그대로 그냥 보아달라고 말하는 방식이, 내 사랑이 위대하기 때문이거나 찬성이나 이해, 인정의 대상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군형법 92조만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관련해서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위헌적인 법 조항을 삭제시킬 때에도, 한국 사회의 다양한 차별의 피해자들을 위한 법 제정에도 많은 이들은 이 질문을 위협적으로 해댈 것이고, 많은 이들은 거기에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 속에 현재의 동성애/동성애자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여전하게도 동성애/동성애자는 정상/비정상의 경계에 서있고, 사람들의 ‘인정/이해’라는 단계를 지나야 한다. 당신은 이 질문은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어쩌면 그 대답엔 오해와 편견이 있을 수도, 성소수자들을 위한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다.
덧붙이는 말 : 군형법 92조가 삭제된다고 해서 성소수자들의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동성애/동성애자에게 혐오/편견을 심어주는 큰 장애물 하나는 없애는 것이고 그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봐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이 조항 삭제에 함께 하는 이유이다.
덧붙임
이쁜이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