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및 기타 추행 죄’의 유래
군형법 제92조 ‘계간 및 기타 추행 죄’는 군형법이 1957년 최초 제안, 본회의 의결을 거쳐 1962년 1월 20일 공포되었을 때부터 존재한 조항이다. 군형법은 미군정 때 제정된 국방경비법, 해안경비법을 대체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으로서, 일본의 구 육군형법(메이지 41년 제정, 쇼와 22년 폐지)을 토대로 하여 기존 국방경비법 조항을 가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구 육군형법에는 계간(鷄姦) 조항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계간(鷄姦)에 관하여 ‘남성 간 성행위’ 일반을 지칭하는 단어로 정의하고 메이지 시대 1872년 계간율조례<鶏姦律条例>가 발포되었다가 1890년 폐지된 바는 있으나 메이지 41년 제정된 일본의 육군형법에는 관련 조항이 없다. 그러므로 현재 군형법 조항 중 계간 조항은 1920년 제정된 미 전시법(Article of War)의 기타 조항 항목 중에서 번역된 것이 존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 전시법(Article of War)을 거의 번역, 개정한 것으로 알려진 국방경비법은 간첩 등의 조항으로 인해 현재 국가보안법의 효시로도 이해되고 있다. 이 국방경비법 제50조(기타 각종의 범죄)에 “자해, 방화, 야도, 가택침입, 강도, 절도, 횡령, 위증, 분서위조, 계간, 중죄를 범할 목적으로 행한 폭행, 위험 흉기, 기구 기타 물건으로 신체 상해의 목적으로 행한 폭행 또는 사기 혹은 공갈을 범하는 자”는 군법회의 판결에 의하여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미 전시법(Article of War) 중 ‘성적 유혹 및 학대, 살인, 강간, 위협적 행동, 정부 대상 사기’등의 내용을 ‘기타 범죄 및 공격’로 다루는 항목 중 93조 ‘Various Crime(기타 범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이 조항에 기술된 ‘sodomy(소도미)’를 번역한 것이 ‘계간(鷄姦)’이었던 것이다. 즉 1920년대 미국의 청교도 윤리를 군대(당시 국방경비대)에 그대로 적용했던 조항이 군형법 제정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도 계간이란 용어는 한국 사회에서 생소했으며, 국방경비법 번역을 담당했던 김완룡 참위가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계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반대의사를 밝히기까지 했으나 그대로 번역된 채 남아 있게 되었다.(하우스만/정일화. 한국대통령을 움직인 미군 대위. 하우스만 증언. 한국문원. 1995)
1962년 군형법 제정 과정에서 국가재건회의(5.16 군사혁명위원회가 개칭한 것)가 군형법을 마련하면서 국방경비법 제50조 항목 중 상당수가 비군사범죄화 되어 군형법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일부 자해 같은 경우 군무 기피 목적 상해로 군사범죄화된 것과 마찬가지로 계간(鷄姦) 역시 추행 범주 속에 군사범죄로 존속되게 된다. 당시 계간(鷄姦) 조항의 존속 사유는 알 수 없으나 1973년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해당 조항은 ‘군 내부의 건전한 공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이른바 군대가정의 성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민간인과의 사적 생활 관계에서의 ‘변태성 성적만족 행위’에는 적용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된 바 있다. 즉 과거 민간인 대상 성적 행위 등도 포함하는 수간 규제 등 청교도적 규율과는 다르게 ‘군대 가정의 성적 건강 유지’라는 목적이 이 당시부터 포함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 해석은 군법회의에 의한 원심판결내용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즉, 애초의 청교도적 규율보다 더 강화된 ‘군대 가정의 성적 건강 유지’라는 해석은 한국식 가족주의의 은유에 부합하는 해석을 통해 ‘군대 가정’을 군 규율의 주요 근간이자 원리로 정합시키고자 했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군대 가정의 성적 건강 유지’
1973년 대법원 판결 후 35년이 지난 2008년 이루어진 해당 조항 관련 대법원 판결은 ‘군대 가정의 성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가장인 지휘관, 형제지간인 병사들로 구성된 가정 공동체라는 ‘군대 가정’의 해석은, 그 가장인 중대장이 형제들(병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양 젖꼭지를 비틀거나 잡아당기고 손등으로 성기를 때린’ 등의 행위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거나 혐오감을 일으키거나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이 해당 조항의 입법 취지를 위배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한 형법 제92조의 추행죄 규정이, 행위유형이 세분화되지 않고 처벌법규로서의 명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위헌론을 무마하기 위해 (축소)해석을 통해 해당 조항을 ‘동성 간 성행위’만 문제시한다고 초점을 맞췄다. 즉 가부장의 규율 속에 이루어진 성적 폭력이나 수치심은 소위 ‘군대가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요하거나 문제되지 않는 부분이며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킴으로써 ‘군대 가정의 성적 건강’을 무너뜨리는 동성 간 성행위와는 구분되기 때문에 정당화됐던 것이다.
즉, 군형법 상 ‘추행’이 일반적 ‘추행’의 입법 취지인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는 다른 입법 취지를 가진다는 설명은 군대 내 ‘추행’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를 보여 준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정의내린 군형법 상 ‘계간 및 기타 추행’은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만족 행위’를 지칭한다. 즉 동성애로 표상되는 추행 외의 추행을 구분함으로써 도리어 소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종류 외의 추행은 일반 형법 상 추행과 달리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관이 하급 병사에게 가하는 추행은 ‘동성애’와 같은 것이 아닌 남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로서 ‘군대 가정의 성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군대 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예외가 되며, 군대 내에서는 주장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간주된다. 2008년 대법원 판결, 2011년 헌법재판소는 굳이 ‘동성애 혐오’를 재차 명시함으로써 도리어 군대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허용되지 않는, 추행의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를 부정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군대
대한민국 국방부, 입법 기관과 사법 기관은 기존에 단순한 조항 번역을 통해 도입된 미국식 청교도 규율을 군대가정이라는 상징 유지를 위한 규율로 적극적으로 전환시켰다. 처음에는 ‘동방예의지국에 계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부정은 ‘동성애는 있으나, 군대가정 내에서는 있을 수 없다’로 바뀌었다. 더욱이 군형법은 2009년 개정을 통해 강제 추행 관련 조항과 계간 조항이 분리되면서 계간 조항은 더욱이 동성 간 성관계만 지칭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강제 추행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 계간 등은 2년 이하의 징역으로 명시함으로써 동성애를 강제 추행보다 더욱 중한 범죄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법 체계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군대 가정은 가족주의라는 미명 아래 신성한 규율로 유지되는 곳이며, 사실상의 추행을 추행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곳이며, 동성애 배제 및 범죄화는 이 규율을 지탱하는 중요한 근간이라는 점이다. 이는 군대 내 추행은 있을 수 있으되 동성애는 있을 수 없는, 혹은 그렇게 믿어야만 군대라는 남성적 유대 공동체가 ‘성적으로 건강’하다는 원시적 상상에 기초한 것이다. 여기서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군대 내 동성애 차별 정책의 상징이었던 ‘Don’t Ask Don’t Tell(묻지도 않고 말하지도 말 것)’ 정책에서 고려했던 ‘동성애자 병사의 커밍아웃에 따른 괴롭힘 문제’조차도 고려의 대상에 넣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군대에서는 군대 내 동성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부정해야만, ‘군대 가정’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군대의 법 체계가 동성애를 부정해야만 존속할 수 있음을 ‘헌법 정신’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퇴행적인 판결이다.
덧붙임
토리 님은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