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구 군형법 제92조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선고(3.31)했다. "계간 기타 추행한 자"를 징역에 처하는 조항이 평등권을 침해하는 등 헌법에 위배된다는 위헌심판 제청의 답은, 차별이 합헌이라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요지는, 군형법은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을 위한 것이므로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는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은 합의에 의한 동성 간의 성행위까지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승인했다는 점에서 평등권이라는 헌법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했다. 이 판결을 보도하는 기사들이 한결같이 "군내 동성애 처벌 합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만들어낸 차별이다.
헌법재판소는 군형법이 '사회적 법익'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성적 자유'를 보장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동성 간의 성적 행위와 이성 간의 성적 행위에 대한 차별은 헌법상 차별을 금지한 영역인 성을 이유로 한 남녀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동성 간의 성적 행위'만 '사회적 법익'을 해치는 것으로 다루는 군형법이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이라는 점을 외면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별적 인식이 동성 간의 성행위를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행위"라고 표현한 헌법재판소 자신의 것임을 실토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군대 내 동성 간 성행위는 성폭력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를 들며 동성 간 성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성간이든 동성간이든, 군대 안에서든 군대 밖에서든, 성폭력은 사라져야 할 폭력이다. 그래서 군형법은 이미 군대 내 성폭력을 처벌하는 조항을 가지고 있다. 성폭력이 범죄니 동성애를 처벌해야 한다는 비약 사이에 들어찬 뿌리 깊은 몰이해와 편견이야말로 무서운 폭력이다.
남성 간 성행위가 "계간"이라는, 혐오를 부추기는 표현으로 은유되고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를 '강제력에 의하여 개인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으로 정의되는 것 자체가 차별임을 헌법재판소는 짚지 않았다. 오히려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라면서 헌법적 판단을 방기하고 ‘일반인의 혐오’ 뒤로 숨어버렸다.
헌법재판소는 낡은 인식과 부당한 현상을 레코드 틀어 놓듯 반복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현상을 헌법의 정신으로 해석하고 시대의 지향을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헌법의 기본 정신은 인권의 보장과 실현이며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은 인권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헌법재판소는 자신의 몰이해와 편견을 성찰할 기회를 버리고 차별이 합헌임을 증명했고, 결국 스스로 헌법의 정신을 저버렸다. 그 결과로 더욱 기승을 부리는 동성애 혐오와 차별을 헌법재판소는 어떻게 책임지려는가. 헌법재판소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한국의 헌법이 반인권적임을 고백함으로써 자기의 결정을 지키거나,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에 따라 자기의 결정이 잘못됐음을 고백하거나. 우리는 아직까지 한국의 헌법이 평등권을 보장한다고 믿고 싶다.
2011년 4월 1일
인권단체연석회의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