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이 벌써 내일이네요. 민가협 어머니들이 20년 넘게 개최한 목요집회가 1000회 째라고 들었어요. 어머니들의 마음도 뭉클하시겠지만 제 마음도 뭉클해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사실 민가협,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라는 이름은 운동사회에선 낯설지 않은 이름이지요. 많은 사람들의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는 그 많은 세월을 몸으로 부딪쳐온 때문일 것입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9월 23일 처음 목요집회가 열렸지요. 겉모습은 군부정권애서 김영삼 민간정부로 바뀌던 때, 사람들이 이제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갖춰진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로 혼란스러워 할 때였지요. ‘양심수 전원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목요집회라는 행동으로 그 혼란스러움을 정리한 분들이 어머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들은 민주주의를 체제나 형식적 절차로 보지 않았던 것이지요. 민주주의(民主主義)란 민(民)이 주체가 된 평등을 향한 실천이며, 그래서 어떤 체제나 제도적 결과에 머무르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목요집회로 보여주셨습니다. 아직 ‘이 땅에 양심수가 이렇게 많은데, 아직 국가보안법이 이렇게 있는데’라며 매주 목요일 집회를 열었습니다. 피부로 깨달은 민주주의이기에 본질에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부이든 양심수를 석방하기보다는 비리부패 정치인과 재벌들을 사면했습니다. 양심수가 있는 한 목요집회는 계속 될 거라 어머니들은 말씀하셨지요. 이는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가 말했던 민주주의와 닮아 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헌정체계도, 사회형태도, 정부형태도 아닌, “민주주의는 자신만이 보유하는 고유하며 항구적인 행위에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있으며 “어느 누구와도 공평하게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에게 용기와 기쁨을 선사해” 주는 것이라 했지요. 우리 모두 머무르지 않는 어머니들의 그 실천에 감사드립니다.
게다가 점점 나이 들어가는 여성으로서 동지의 마음으로 어머니들의 실천에 존경을 표합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사회에서 어머니들은 군부독재시절부터 현재까지 싸워오면서 얼마나 많이 모진 멸시를 당하셨겠습니까. 운동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민주화운동의 주체로 인정받기까지 겪었을 그 어려움들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운동사회의 폼나는 수장이나 명망가가 아니어도 언제나 어머니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당시에는 50, 60세였을 분들이 70, 80세가 되었습니다. 몇 분은 목요집회에 서있기도 힘들어 의자를 놓아야 할 정도의 몸 상태에서도 참가하셨지요. 임기란, 조순덕, 이영, 서경순. 그 무수한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따뜻하게 제 손을 잡아주며 격려해주시던 그 온기가 아직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민가협에는 어머니들만이 아니라 양심수들의 다른 가족, 아내나 동생 등이 같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는 이유는 뭘까요? 물론 민가협에 양심수의 어머니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의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힘을 인정해주는 것은 그나마 아이를 낳은, 재생산 능력을 발휘한 사람, 즉 어머니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동지이자 선배인 당신들에게 어머니라는 명칭을 쓰는 이유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나이 든 여성이 ‘어머니’로서 사회운동을, 인권운동을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시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민가협 어머니’는 그 정신을 담은 고유명사가 된 건 아닐까요.
선배 운동가인 어머니들께서는 여러 인권 현안에 대해 다루면서 우리와 함께 배우고 함께 앞으로 나갔습니다. 2007년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하며, 혹시 호주제가 폐지되면 뿌리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하고 어머니께선 걱정을 잠시 하다가도 뿌리는 인간임을 확인하며 호주제 폐지운동에 함께 해주셨던 것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998년부터 시작된 국가인권위 설립 투쟁을 비롯한 각종 인권현안을 목요집회에서 다루었습니다. 목요집회에 가면 한국의 인권현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목요집회만이 아니라 국보법 폐지 국회 앞 농성, FTA 반대 집회와 2008년 촛불집회까지, 어머니들은 노구를 이끌고 거리에 함께 서셨습니다.
그런데 최근 찾아간 목요집회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우경화되고 있는지, 뒤로 가고 있는지 또렷이 느껴집니다. 옛날에는 감히 목요집회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관리사무소에서 탑골 공원 처마 입구에서 하지 마라는 등의 자잘한 공격들을 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니,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그랬는지 모릅니다. 2009년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조순덕 상임의장을 구속했던 그때부터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가 더 아리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그러나 29년의 모진 풍파를 다 맞으며 굳건히 지켰던 것처럼 어머니들이 흔들리시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어머니들은 목요일이 기독교에서 고난일이라 집회날짜를 목요일로 정할 정도로 이 길의 고난을 각오했었으니까요.
끝으로 어머니들께서 자리를 지켜줬기에 저 같은 후배가 든든함을 느꼈던 것처럼 저도 1000회 목요 집회에 함께 하며 어머니들의 작은 배경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마음 담아 작은 시 한 편 드립니다.
그녀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민가협 목요집회 1000회에 부쳐
그녀들은 강물이었다.
졸졸졸 흐르다가도 바위를 만나면
탁! 하고 부딪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생채기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들은 강물이었다.
추잡한 권력 놀음 따위는 뒤로 제치고
유유히 민(民)의 바다로 나아가는
그녀들은 강물이었다.
동쪽에서 온 강물이 해질녘의 강물과 어우러지듯이
절뚝대는 강물들이 눈물 흘리는 강물 안아주듯이
그녀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자들의 세상을 꿈꾸는 아무개들
그녀들은 인간이었다.
인간의 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오래된 고송 같은
삐뚤빼뚤해도 청아한 소리 잃지 않는 겨울 풍경 같은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