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1월 20일, 어느덧 날짜도 희미해졌다. 그러나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을 남긴 용산참사를 우리의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다. 국가의 폭력으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죽었으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6년이 흘렀다. 억울하게 책임을 떠안아야 했던 구속 철거민들이 감옥에서 보낸 서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책임을 묻기 위한 싸움을 다시 시작한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그래서 밝혀야 할 진실의 과제가 무엇인지 5회에 걸쳐 짚어줄 것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의 과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들로 구성된다. 화재는 어떻게 발생했나? 6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은 화재인가, 진압작전인가?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들을 내버린 진압 작전의 지휘 라인은 현장에서 어디까지로 이어져있나? 서울경찰청장? 청와대? 그리고 놓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경찰의 진압 작전과 용산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물론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 사업의 많은 문제들이 확인됐고 재개발제도 개선,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은 별도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동시에 참사의 원인으로부터 재개발 사업을 배제할 아무런 근거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용산4구역 재개발을 참사의 배경에 그치는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남일당 건물 옥상 점거가 시작되자마자 특공대를 포함해 대규모 진압 작전을 결정한 속도는 유례없다. 1960년대부터 있어온 다른 재개발 현장과 비교하든, 이명박 정권 시기 다른 저항의 현장과 비교하든 마찬가지다. 용산4구역에는 도대체 어떤 힘이 개입되고 있었나.
재개발 사업의 절차를 역행하는 힘의 순서
재개발 관련 법률에 따라 일반적인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절차는 이렇다. 지자체는 기본계획 및 정비계획에 따라, 주거환경이나 기반시설이 낙후한 지역을 개발 구역으로 지정한다. 해당 구역의 토지 등 소유자는 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토지 등 소유자의 3/4 이상이 동의하는 조합을 설립한다. 전문성이 없는 주민들로 구성된 조합은 정비전문업체의 도움을 구하기도 하면서, 시공사를 선정하여 계약을 맺고 사업시행계획을 수립한다. 사업시행인가 후 관리처분계획까지 인가되면 본격적인 철거 및 착공에 들어간다.
그러나 실제 추진되는 재개발 사업은 법이 정한 절차가 아니라 힘이 정하는 순서를 따른다. 재개발 사업으로 수익을 얻으려는 업체들이 동네에 들어간다. 시공사의 영향 아래 ‘동의서 수령 운영 대행(OS)’이라는 업무가 이루어진다. 부동산 시장이나 개발 사업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주민들은 장미빛 환상에 혹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재개발 조합의 모태가 조직된다. 개발구역 지정 요건이 매우 허술하기 때문에 웬만한 곳은 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 추진위나 조합 설립 과정을 주도하는 주민들은 이미 시공사의 후광을 등에 업은 소유주들이다. 소유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총회 경비라는 명목으로 미리 용역업체가 투입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합 설립 과정만 무사히 넘기면 시공사의 주도 아래 관리처분 인가까지 수월하게 흘러간다.
남는 것은 세입자들의 퇴거 및 이주, 흔히 ‘용역폭력’이 발생하는 시기가 이때다. 이전까지의 단계에서 어떤 우여곡절의 갈등이 있더라도 다른 모든 주체들은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사업이 완료되고 나면 기대가 번번이 배반되는 현실이지만 이익을 기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세입자와는 다르다. 세입자는 재개발사업으로부터 어떤 이익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입자가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누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순간 개발 사업은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고쳐 말하면, 세입자가 권리를 깨닫는 순간 폭력에 직면하게 되고, 권리를 모르거나 알고도 포기하면 개발사업의 마지막 단계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2008년 5월 31일 이후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용산4구역의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어떻게 추진되었는지 살펴보자. 용산구청은 2006년 4월 20일 용산4구역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한다. 반 년 후인 10월 12일, 용산4구역 도시환경정비조합이 설립된다. 그리고 다시 반년쯤 지난 2007년 5월 31일 도시환경정비사업 시행계획이 인가된다. 다시 반년쯤 지난 10월 31일 철거업체와 계약이 체결되고, 2008년 5월 31일 관리처분계획까지 인가된다. 정비구역 지정에서부터 관리처분계획 인가까지 2년 정도 걸린 셈이다. 이해관계의 조정 등이 쉽지 않아 통상 3~4년, 때로는 5~6년이 걸리기도 하는 것과 비교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10년 11월 법원은 용산4구역의 관리처분인가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무효 판결을 내렸다. 폭행, 성희롱, 괴롭힘, 영업방해 등의 폭력으로 강제된 퇴거는 개발사업의 ‘합법성’을 내세우며 자행되었다. 용산4구역 주민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적어도 부적절한 관리처분인가가 나온 2008년 5월 31일 이후의 시간은, 겪지 않아도 될, 겪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용산4구역 주민들이, 그리고 그/녀들과 연대하기 위해 기꺼이 달려왔던 다른 지역 철거민들이 겪지 않아도 됐던 시간 중에 2009년 1월 20일이 놓여 있다. 폭력의 핑계는 사라졌지만 폭력의 상흔은 죽음으로,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로 여전히 남아있다.
용산4구역 재개발사업이 2008년 5월 31일 이후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용산참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대한 하자’가 있는 인가를 조합-시공사가 신청하고 구청이 승인하는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 참사의 진상 규명은 ‘살인자’를 찾아내는 일과 다르다. 누군가 죽음에 이르게 된 참사의 과정을 밝히는 일이다. 그래야 책임이 밝혀지고 재발 방지도 가능해진다. 관리처분인가 결정에 연루된 개인 및 기관을 조사하고 책임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재개발과 진압 사이의 고리
여기에서 질문을 멈추면 안 된다. 관리처분 인가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경찰의 진압을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재개발 현장에서의 폭력은 대부분 관리처분 인가 이후에 발생한다. 관리처분 인가 이후 조합은 강제퇴거를 위한 명도소송 등의 절차를 밟는 한편 용역업체를 동원해 법을 넘나드는 폭력을 가한다. 세입자들은 저항을 위해 다양한 방편을 검토하고 실행한다. 건물의 점거나 망루 농성도 그 중 하나인데 농성을 선택하는 순간 경찰이 바로 진압한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왜 유독 용산4구역 재개발사업에 대한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무리한 작전이 수행됐는지 밝혀야 한다. 재개발사업을 서둘러 마쳐야 하는 주체들과 진압 작전 지휘라인 사이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개발사업의 추진주체가 법적으로 조합인 것과 달리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힘은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시공사, 정비업체, 철거업체, 지자체 등이 진상 규명의 대상인 이유가 그것이다. 진압 작전 지휘라인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위 대상들 사이의 관계가 밝혀져야 한다. 2012년 2월 당시 용산구청장 박장규는 타 개발 구역의 비리로 구속되었다. 2006년 9월과 2008년 4월에는 용산구청의 도시관리국장이 공사 수주를 도와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 구속되기도 했다. 용산4구역의 개발사업 추진 각 단계마다 속전속결로 인가를 내주었던 용산구청장은 과연 용산4구역 재개발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용산구와 정비업체 (주)파크앤시티
통상 개발사업의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은 정비업체로부터 사업 추진에 대한 컨설팅을 받는다. 용산4구역 정비업체는 (주)파크앤시티였고 2006년 6월 조합에 의해 선정된다. 그런데 (주)파크앤시티는 등록도 하지 않은 무허가 상태에서 2004년부터 주민들에게 개발에 대한 동의를 받는 업무를 진행했다. 이 시기는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주민공람(2003.12.1.공고) 및 주민설명회가 이루어지던 때다. 절차에 따라 주민공람을 마치면 지방의회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구역 지정이 된다. 당연히 조합은 설립되기 전이었다. 개발 사업의 추진 주체가 조합이 아니라 (주)파크앤시티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통상 평당 3~5만 원으로 계약하는 정비용역비를, (주)파크앤시티는 평당 9만 원으로, 총 105억 원에 계약했다. 특히 평당 4만 원 추가지급 계약의 ‘업무조건’은 지구단위계획 변경, 용적률 약 720%, 5개 구역 통합 및 지하 통합 등 구청이 인허가권을 갖는 내용이었으며, 계약 당시 이미 달성된 상태였다. 조합이 울며 겨자먹기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조건이었거나, 계약 전에 이미 ‘업무조건’ 달성을 위한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주)파크앤시티의 회장은 1995년 용산구의원으로 선출됐다가 폭력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돼 의원직을 잃은 전력이 있다. 박장규 구청장은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단골로 드나들었고, 그는 박장규 구청장의 선거를 지원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둘은 용산구 충청향우회 회장과 부회장을 나눠맡고 있기도 했다. 조합이 설립되기 이전부터, 조합이 설립된 이후로도, (주)파크앤시티와 용산구청 사이에 긴밀한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용산구청의 전직 간부가 (주)파크앤시티의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개발 사업은 각종 비리가 만연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영역이다. 이런 경우 구체적인 비리 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비리가 있을 것으로 간주하여 엄정하게 수사할 필요가 있다.
시공사 삼성물산과 철거업체들
한편, 시공사인 삼성물산, 대림산업, 포스코가 이미 개발 사업에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조합과 공식적인 계약을 맺기 전인 2003년에 이미 추진위원회로부터 5,992억 원(평당 512만 원)짜리 공사를 따냈다. 당시 추진위원장의 계좌로 ‘입찰 보증금’ 10억 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주민들 사이의 분쟁으로 이 계약은 무효가 됐지만 결국 추진위 결정을 인정하기로 조합 정관을 정하고 경쟁 입찰 없이 시공사로 재선정된다. 계약 내용도 2003년 그대로였다. 개발사업의 법제도적 절차와 실제 진행이 오히려 거꾸로라고 앞서 말한 것처럼, 삼성물산 역시 구마다 5명 정도의 본사 직원이 재개발 사업 영업을 벌였다고 한다.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 관련 업무를 맡았던 삼성물산의 촉탁사원은 참사 전 호람건설의 이사로 옮겼다. 삼성물산의 재개발 사업에서 철거용역을 쏙쏙 따내는 협력사인 호람건설은 용산4구역 철거를 위해 계약을 맺었던 철거업체다. 2007년 10월 31일, 조합과 시공사, 철거업체(호람건설, 현암건설산업)는 ‘건축물 해체 및 잔재처리공사 도급 계약’을 체결한다. 철거공사금액은 51억 원, 약정 기간 내에 철거를 끝내지 못하면 하루에 510만 원씩 조합에 지체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계약이다. 철거업체에게 시간은 금이다. 그러나 계약의 ‘갑’과 ‘병’인 조합과 시공사에게도 시간은 금이다. 재개발사업은 준공 후 분양에 이를 때까지 부채 돌려막기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철거업체가 전면에 나선다는 점만 다를 뿐, 폭력의 동기는 모두에게 동일하다.
한편, 용산참사 당시 POLICIA 사제 방패를 들고 경찰로 오인되었던 이들이 있다. 조합과 계약을 맺은 호람, 현암인 아닌 이들은 남일당 옥상에 오른 철거민들의 퇴로를 차단한 채, 아래층에서 집기를 불태우며 연기를 위로 올려 보냈고, 물대포를 쏘기도 했다. 이들 중 2명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5명은 150~200만 원의 벌금형을 받고 끝났다. 이들은 ‘모노에스엔이(S&E)’로 추정된다.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의 제13차 대의원회의에서 용역계약이 추인된 이 업체의 업무 내용은 ‘부동산 점유이전 금지 가처분 집행, 명도 집행, 세입자 집회 방어 용역’ 등이다. 용역 비용은 하루 344만 7천 원, 모두 6억 2천만 원이었다. 세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철거용역 직원들 중에는 용산 일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으나 호람과 현암은 “4구역 주민 출신 직원이 없다”고 밝혀왔다. 세입자들이 목격한 철거용역 직원들이 모노에스엔이일 수 있다. 개발현장에서 주민들 중 일부를 용역업체 직원으로 채용하는 일은 종종 있다. 모노에스엔이가 용산에 지역적 기반을 가진 (주)파크앤시티와 연관된 의혹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 실질적인 철거폭력의 지휘가 모노에스엔이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용산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힘의 관계
이상의 관계를 종합해볼 때, ‘용산구청-정비업체 (주)파크앤시티-용역업체 모노에스엔이-용역업체 호람, 현암-시공사 삼성물산 등-용산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사이에는 형식적 독립성과 다른 실체적 연관성이 분명히 있다. 그 연관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용산참사 진상규명의 주요한 과제다. 여기에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극’이라는 이름을 얻은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추진자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컨소시엄 대표가 삼성물산이었다는 점도 상기할 만하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재개발 규제완화를 약속했고 집권 기간 내내 재개발 활성화를 부르짖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진상규명의 무대에서 퇴장시켜서는 안 된다.
용산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힘의 관계 어딘가에 경찰 진압작전과의 고리가 있다. 어떤 수준에서 ‘핫라인’이 작동했던 것인지, 구린내 나는 비리와 유착이 작용한 것인지, 개발 물신주의가 모든 행위주체의 신념이 되어 마치 짜고친 듯 협력을 이루어낸 것인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진압작전의 지휘 라인 자체가 진상규명의 과제로 남아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진상 규명은 불충분한 단서를 기각하지 않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단서가 분명한 사건의 과제는 진상 규명이 아니라 사건 해결일 테니 말이다. 용산참사 6주기를 보내며 다시 확인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는 위 단서들이 기각되어야 할 어떤 이유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책임을 밝히는 일이다. 책임을 밝히는 일은 미래를 밝히는 일이다. 참사의 현장이었던 용산4구역은 특별한 사건이 발생한 현장이자 재개발의 일반적 문제점을 드러낸 현장이다. 일반적 문제점이 유례없는 참사로 이어지게 된 정황을 밝혀야 일반적 문제점도 바꿀 수 있다. 문제는 제도나 정책이 아니라 힘이기 때문이다. 경제구조나 부동산시장의 추이를 볼 때, 재개발사업에 달려들었던 여러 주체들이 이윤을 노리고 무리하게 재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권력을 가진, 현명한 투자자나 자본이 재개발사업에 힘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가진 자들에게 허용되었던 권력, 생명보다 인권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현명함은 오히려 더 힘을 얻고 있다. 그 힘이 언제나 국가폭력을 통해서 보증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의 과제에 용산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실제 추진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덧붙임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