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기 훠얼씬 전부터 ‘정부2.0’이라는 이름으로 “공공기관이 정보의 공개를 넘어서 공공정보의 공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정보공개센터는 우리가 활동해온 내용들이 공약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함께, ‘그런데 왜 그 공약을 당신이??’하며 의아해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의미 있는” 행사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빠질 수는 없죠. 초대해주는 이는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정부3.0’ 체험마당>에 참석해봤습니다. (사실 이런 행사를 하는 줄도 몰랐다는 건 비밀.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것을 4월 중순 서울정부청사 앞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는 건 안 비밀.)
행사 첫날인 4월 30일 하루만 가봤기 때문에 (가보고 의미 있으면 매일 가려고 했습니다만.) 그것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서 보고 느낀 점들을 함께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정부3.0’ 추진 3년차를 맞아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의 ‘정부3.0’ 성과와 미래 모습을 종합적으로 소개해 국민 공감대를 확산”하고자 추진된 이 행사는 총 13억 93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진행되었습니다.
서비스정부, 유능한 정부, 투명한 정부 등 섹션을 나누어 ‘정부3.0’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직접 체험해본 결과 만족보다는 실망이 훠얼씬 더 큰 행사였습니다.
물론 아주 괜찮은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인천시에서 심장제세동기 위치 등 주요한 생활안전과 관련한 내용을 지도와 연계해 보여주던 정보는 스마트폰 앱으로 만들어지면 실제 일상에서 위급한 상황 발생 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부3.0’ 체험마당인 만큼 체험용으로 마련된 부스나 부대행사는 과연 이게 정부3.0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은 것들 일색이었습니다.
국방부는 <예비군 훈련, 내가 선택할게요. 예비군용 최신장비 전시, 관련 시스템 시연>을 준비했는데요. ‘정부3.0’이라는 취지와 전혀 상관없는 총쏘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부대 행사에서는 경찰청 경호대가 경호무술 시범을 보이고, (무려 대리석!)격파를 하기도 했습니다.
직접 참여하지 않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림청에서는 피톤치드 체험이나 토피어리 만들기와 같이 정부3.0과는 전혀 무관한 행사들을 준비했습니다. (‘정부3.0’ 체험마당 안내 블로그_ http://koreagov30.tistory.com/)
‘정부3.0’과 관련된 내용은 판넬 몇 개나 브로셔로만 갈음하고, 소방복 체험이나 퀴즈를 맞추면 지역특산물을 증정하는 이벤트성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부스들이 ‘정부3.0’ 취지에 맞춘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자기네 기관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을 소개하는데 집중되어있어 참여한 기관들이 과연 ‘정부3.0’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총술 체험이나 무술 시범을 보면서는 이게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소통인가 싶어 아연실색했고요.
행사 하나 이상하게 했다고 ‘정부3.0’ 전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그간 정부는 ‘정부3.0’의 일환으로 많은 사업들을 추진했습니다. 공공기관의 결재문서 원문을 open.go.kr 이라는 사이트에서 바로바로 볼 수 있게 하기도 했고, 유용한 공공데이터를 개방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개된 결재문서의 상당수가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이나 정책내용이 아닌, ‘공무원 직무교육 안내’나 ‘사무실 토너교체건’과 같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업무에 대한 게 대부분이라 결재문서 원문공개의 본래 취지인 행정의 투명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공공데이터들은 그 내용에 오류가 많아 활용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공공데이터포털인 data.go.kr에 1만3천여 건의 데이터가 등록되어있는데 반해 공공데이터 포털에 등록된 자료 활용 사례 수는 680여 건으로 매우 미미한 수준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3.0’이 내용적 심화보다는 양적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몇억 건 공개, 몇만 건 다운로드와 같이 숫자로만 정보 개방을 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행사를 하기는 하지만, 실질적 민관의 컨퍼런스나 토론의 자리보다는 이번 ‘정부3.0’ 체험마당처럼 연예인 사인회나 토피어리 만들기, 특산품 경품 등으로 ‘정부3.0’을 포장하기도 합니다.
‘정부3.0’이 말하는 소통하는 정부는 그냥 말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국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들을 하려고 하는지 시민들에게 잘 공개해서 ‘적어도 내 나라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 하는 정도의 신뢰가 있을 때 소통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는 ‘정부3.0’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소통하는 정부라기보다는 소통하는 ‘척하는’ 정부인 것 같습니다. 정작 잘해야 할 것은 잘하지 않고, 소통과는 무관한 화려한 것들로 현혹하며 양으로 승부하려는 모습들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소통은 총쏘기 체험이나 격파 시범 같은 것으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설마 그런 것으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장 그런 ‘정부3.0’은 그만두길 바랍니다.
덧붙임
정진임 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