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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변화와 행동의 디딤돌인 4.16 인권선언, 그 의미를 확인한 2차 전체회의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쏟아진 말들을 이 노래만큼 간결하고 정확하게 담아낸 것이 있을까. 명징하고 감동적인 노래였다. 수험생활 끝낸 지가 10여 년인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어둠, 거짓, 침몰, 포기에 세모 표시를 하고, 빛, 참, 진실, 우리에는 동그라미 모양을 그렸다. 학교에서 중요하게 배웠던 비유, 대립의 기법이 명확하게 드러난 노래라서 그랬나 보다.

4.16 인권선언도 다짐을 되새길 수 있는 노래가 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단어 몇 개를 모아놓은 이 노래는, 간결하면서도 모두의 말문을 트이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힘을 주었다. 그리고 짧은 노래의 말미를 부를 때 즈음이면 정말로 우리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게 했다. 노랫말이 단순한 단어와 말로 구성되어서가 아니라,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함께 겪었던 세월호 참사의 경험과 그 이후가 고스란히 녹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을 준비하는 과정 내내 우리의 선언문이 그 노래처럼, 누군가들의 마음을 ‘모아’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말이 사람들을 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짧은 노래가 아닌 ‘선언문’이라는 형식의 ‘글’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의구심이 앞섰다. 이런 의구심 반, 기대 반으로 2차 전체회의를 맞이했다.
11월 28일 2차 전체회의에서는 전국에서 이어진 풀뿌리토론의 결과를 모아 만든 ‘4.16 인권선언’ 초안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었다. 참여자들이 가까운 문장과 먼 문장을 꼽아봄으로써 선언문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모았다. 내가 썼어도 이렇게 썼을 것 같은 문장, 내가 참여한 풀뿌리토론에서 나왔던 이야기, 이건 정말 필요하다 싶은 권리 항목 등을 가까운 문장으로 꼽고, 먼 문장에는 읽다가 막히는 문장,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문장, 수정되었으면 하는 문장 등을 꼽았다. 다섯 명 내외의 20개 모둠으로 나누어 진행된 토론에 110여 명이 참여했다. 이날 모인 결과들을 정리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세월호 투쟁의 현재에 발 딛고 만드는 선언

우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피해자의 권리’, ‘치유와 회복’, ‘공감과 행동,’ ‘저항할 권리’ 등 세월호 운동의 현재와 엮일 수 있는 부분들에서 의견이 많이 나왔다. 참가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으나, 자유와 평등, 연대와 협력 등 대원칙에 해당하는 내용들보다는 세월호 참사의 현재와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볼 수 있는 뒷부분의 권리 항목들에서 더 많이 모아졌다.
자유와 평등, 연대와 협력 등은 반드시 필요하고 공감되는 내용들이지만,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는 의견들이었다. 반면 1조에 해당하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그 문장의 추상성에도 불구하고, 공감대가 높고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세월호 참사 자체가 사람보다 이윤을 중시한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는 인식과, 참사 이후에도 돈을 거론하며 진실을 가로막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모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8조 ‘피해자의 권리’와 9조 ‘치유와 회복’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과나 책임은커녕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과 색깔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과 연결될 수 있는 조항이다. 참사 직후부터 제기된 지원 부족의 문제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배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까운 문장으로 많이 꼽혔고, 피해자의 범위나 정의, 공동체 회복의 구체적인 의미, 책임 주체의 모호성 등에 있어서는 토론거리가 남았다.
9조 ‘공감과 행동’, 12조 ‘저항할 권리’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집회∙시위에 대한 탄압,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있는 현실과 연관되어 많은 의견들이 제출되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투쟁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차벽에 가로막혔고, 함께했던 이들도 국가 폭력의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저항권에 대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권리’, ‘풀뿌리토론 때도 강조했던 문장’ 등 적극적인 공감대가 확인되었고, 내용을 보완하여 더 강하게 서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언론의 왜곡 보도로 인한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언론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여러 번 나왔다. 이처럼 토론 참여자들은 세월호 투쟁 과정과 현재에 비쳐 더 강조되어야 할 권리 항목과 구체적인 내용들을 짚어주었다.

더 폭넓은 사람들이 선언의 주체가 되어 행동과 변화의 디딤돌로

두 번째로 두드러지는 점은 폭넓은 사람들이 선언의 주체로 포함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점이었다. 주로 선언문이 더욱 쉽고 명확하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과 전문에 대한 의견으로 나타났다. 선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나 내용,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은 줄이자는 의견이 있었고, 청소년이나 외국인 등 다양한 집단이 쉽게 선언문을 읽을 수 있도록 여러 버전을 작성해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선언문의 첫 문장이 읽는 이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렵게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또한 전문에서 선언의 주체인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제시되는데, ‘우리’의 범위가 닫혀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곡기도 끊은 적 없고 홀로 광장에 선 적 없지만, 잊지 않으려는 내 자리가 ‘우리’에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한편으로는 선언문 초안이 세월호 투쟁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것으로 읽히는데, 그 폭을 넓혀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잘못됐다고 공감하는 모든 분들’을 포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기도 했다.
세 번째로 확인된 점은 ‘4.16 인권선언’이 ‘행동’과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지와 열망이다. 13조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는 가깝고 먼 문장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현재를 보더라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이것이 인권선언의 핵심이라는 의견 등도 있었고, 필요하긴 하지만 변화의 방식과 어떤 사회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어 추상적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먼 문장으로 꼽은 사람들도 13조가 중요하다는 데는 공감했으나 문장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13조가 1조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과 중복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는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가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선언문 초안에는 안전이나 구조의 책임 등이 정부에 있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와 관련해 책임의 주체를 정부로 한정하지 말고 기업, 국가 전반을 포괄하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는 결국 지금의 문제들이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며, 더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 모둠토론에서 제시된 의견 전반에서도 실천의 선언을 포함해야 하며, 선언문이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는 점, 지금은 저항이 절실한 때라는 등의 이야기가 모아졌고, 전문과 후문에서 앞으로의 실천과 행동을 강조한 문장들을 가까운 것으로 꼽은 사람들도 많았다. 4.16 인권선언 운동 자체가 4.16 이후의 다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긴 과정이었기 때문에 전국의 풀뿌리토론과 2차 전체회의에서 변화와 행동에 대한 의지가 모인 듯하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겪은 세월호 참사

이 글을 쓰면서 모둠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의 말들을 몇 번이고 새롭게 읽어보았다. 누가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인 말들은 특정한 개인, 나와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경험을 기억하고 나누고, 여전히 우리의 행동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모두의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절망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의 말이었다.
‘4.16 인권선언’ 운동을 시작할 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건 왜 ‘지금 시점에’, ‘인권’, ‘선언’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이제라도’ 인권을 말해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 질문들에 자신감 있게 답할 수는 없었다. 권리에 관한 선언 말고도 할 일들이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기억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떤 말들이 엮이고 이어질 것 같아 풀뿌리토론에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눈을 보고 말을 들었다. 어떤 이들이 어떤 위치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풀뿌리토론의 결과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뻔한 단어들이 뻔하지 않게 엮이고, 당연한 권리들이 새롭게 구성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2차 전체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을 모으고 정리하며 드디어 알게 된 것 같다. 아, ‘우리’는 함께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겪고 있구나. 우리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 개인 SNS에 생각을 끄적이고, 혼자 방에서 TV 보며 울기도 했지만, 언제나 함께였구나. 투쟁의 맨 앞에서 모든 것을 받아냈던 사람들도,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도, 그 광장에도 나가지 못해 미안해했던 사람들도, ‘우리’였구나. 세월호가 잊힌다고, 주변 사람들은 벌써 잊어서 외로웠다고 말한 ‘우리’가 사실은 정말이지 많았구나. 알게 되었다. 그래서 4.16 인권선언문은 몇 장의 선언문이 아니라 우리의 말이고, 앞으로의 우리를 묶어줄 단단한 연결고리다.

얽히고 설킨 우리의 말들로 만들어진 인권선언,
2주기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선언하고 행동하자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모두가 잊었다고, 모두가 잊고 싶어한다고 탄식하지만, 바로 그 말을 하는 ‘당신’이 있어서 세월호 투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그 연결고리로 ‘4.16 인권선언’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말들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을 엮으며 ‘우리’를 만나게 할 거라고.


* 세게인권선언의 날인 오는 12월 10일(목) 오전 11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선언에서 행동으로>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4.16 인권선언 초안을 발표하며 그간의 경과와 향후 계획을 이야기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겪은 우리들이 함께 만든 선언이 함께 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나아가고자 합니다.
덧붙임

나위 님은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4.16 인권선언 추진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