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당진 교로2리는 765kV와 154kV 초고압 송전선이 관통하는 마을이다. 초고압 송전선이 마을회관에서 불과 300m밖에 떨어져있지 않다. WHO(세계보건기구)는 고압송전선로 전자파를 잠재적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송전탑이 완공된 1999년 이후 이 지역 주민 중 암환자가 급증했다. 80여 가구 150여 명의 주민 중 현재 9명이 암 투병 중이다. 지난 10년 동안 암으로 사망한 주민은 30여 명에 달한다.
위의 사례로 나온 두 지역의 공통점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위험에 대한 정보가 지역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알 권리, 얼마만큼 어디까지 어떻게
산업단지와 대규모 공장, 송전탑과 핵발전소 등 기간산업은 모두 지역을 기반으로 건설․조성된다. 그리나 이와 관련한 정보들은 보통 사업이 추진되기 전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얼마만큼의 이익’, ‘얼마만큼의 일자리’ 등의 경제적 효과로만 설명될 뿐이다. 심지어 그 효과가 지역주민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정부가 고압송전선을 연결하고, 기업들이 지역에 공장을 지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와 그런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 지침 등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거나 위험환경에 노출되는 경우,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이 아닌 해당 지역 주민들과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이 생명이 걸린 피해를 정면으로 맞게 된다.
잦은 유해화학물질 사고, 삼성반도체 같은 대기업 공장의 사용약품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희귀질환 발병 등으로 지역사회의 유해화학물질과 위험 정보에 대한 알 권리 문제가 대두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지역사회의 알 권리가 더욱 더 요구되고 있다.
안전 관련 정보에 대한 알 권리가 본격적으로 요구되고 법제화된 것은 1984년 인도 보팔시에서 발생한 유독가스 유출사고 때문이었다. 1984년 12월 3일 인도 보팔시의 살충제 공장에서 ‘메틸 이소시아네이트’를 포함한 유독가스 45톤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인근에 거주하던 6900명이 사망했고, 중경상자와 후유증을 얻게 된 사람이 50만명에 달한다.
끔찍한 재앙을 불러일으킨 이 사고는 피해 지역인 인도뿐만 아니라 서구사회에도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주요쟁점이 바로 시민들의 알 권리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은 이 사고 이후 알 권리 정책의 일환으로 1986년 ‘긴급계획 및 지역사회의 알 권리에 관한 법’ (EPCRA:Emergency Planning and Community Right-to-Know Act)을 제정했고, 1987년에는 유독물배출량조사제도(Toxics Release Inventory)를 도입했다. 지역주민들과 응급대원들이 위험물질의 존재 여부와 그 특성을 알고 대응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법은 위험시설에 보관되는 화학물질의 사용 및 방출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고, 그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정보제공만으로는 시민의 알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긴급계획 및 지역사회의 알 권리에 관한 법’이 20년 가까이 시행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2013년에 텍사스주 웨스트시에서 비료공장이 폭발해 1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행했다. 문제는 지역주민들이 해당 비료공장에 위험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텍사스주는 ‘긴급계획 및 지역사회의 알 권리에 관한 법’에 따라 위험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이 정보의 소재를 찾고 정보에 담긴 내용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정보공개에도 불구하고 해당 정보공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거나 일상적인 점검체계를 가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 역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사고대비물질을 취급하는 경우 사고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근 주민에게 자체 방재계획을 사전에 알리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주민 고지의무는 그 대상이 사고대비물질 69종의 취급시설로 한정되고, 고지 내용에 대한 구체성과 강제성이 없는 등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 등으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개정 필요성이 지적되었다 2012년 발생한 구미불산 누출사고가 결정적인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2013년 5월 개정안에서 알 권리 분야를 확대하였지만, 알 권리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지역사회 참여권 등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국가안보, 재산보호, 기업의 영업비밀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알 권리 요구의 일환으로 일차적으로 취하게 되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는 국가안보, 재산보호, 기업의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들어 비공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공개하는 내용들은 정부가 비공개 근거로 삼은 정보공개법의 취지에 따른다면 얼마든지 공개해야 하는 정보들이다. 정부가 대는 대표적 비공개 사유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비공개사유는 국가안보다. 핵발전소 같은 시설물과 유해화학물질 보유현황 등의 공개에 있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비공개 요인은 바로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보호이다. 해당 정보들이 공개되었을 때 전쟁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테러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 놓인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해당 정보의 공개를 꺼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긴급계획 및 지역사회 알 권리법’을 통해 유해화학물질 보고서를 누구라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언론사인 로이터 통신이 이 보고서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을 때 상당수의 주정부는 해당 정보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많은 국가가 생명보호의 명분으로 오히려 생명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정보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더 많은 정보의 공개로 보완할 수 있다. 위험물질의 소재에 대한 공개뿐만 아니라 위험물질의 안전관리 실태를 함께 공개하고, 공개될 경우 발생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대응책 등을 공개함으로써 불안 요소를 낮출 수 있다.
두 번째 비공개사유는 재산보호다. 한국사회에서 위험 정보의 공개에 있어 가장 충돌하는 것이 아마 재산권 보호 문제일 것이다. 범죄, 위험물질, 혐오시설 등의 정보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공개되어야 하지만, 해당 정보가 공개될 경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공개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는 위험 정보의 공개와 부동산 가격 하락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등 객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해당 정보의 공개로 인해 부동산 소유자의 재산권이 실제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정보를 공개하면서 보장되어야 할 공익성이 우선적으로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비공개사유가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이다. 특히 유해화학물질의 정보공개와 관련해 충돌하는 것이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이다. 과거 기업의 비밀은 영업적 자유 측면에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으로 강력히 보호받았지만, 최근에는 상품의 인체 유해 여부와 관련된 정보, 공해유발 등 건강 관련 정보에 대한 알 권리를 보다 폭넓게 공유하고 보장하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소비자의 권리가 강조되면서 기업의 영업비밀보다 소비자의 알 권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비자임과 동시에 생산자이고 노동자인 기업의 생산직 노동자에 대한 정보공개 문제이다. <화학물질 감시 네트워크>,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들을 통해 사고 발생시 일차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노동자의 생명권 보호를 우선으로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삶과 직결되는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세월호 참사 이후 위험 정보의 알 권리 보장에 대한 요구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알 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 네트워크>는 2014년 각종 화학물질 사고로부터 지역주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지역사회 알 권리법’을 발의하고 지역사회 알 권리 보장을 제도화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지역사회 알 권리법’은 크게 화학물질의 관리기본계획에 대한 지역사회의 참여와 기업이 다루고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공개, 사고 대응계획과 사고 발생시 지역사회에 신속하게 관련 정보의 고지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기본 계획의 수립 및 시행에 있어 지역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도 별도의 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기본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이를 자문할 화학물질관리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그리고 화학물질 취급에 의하여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와 위법/부당한 화학물질 취급으로부터 국민의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의 경우 환경부장관으로 하여금 화학물질 조사결과를 공개하도록 했다. 또한 위해관리계획서 작성이 필요한 대상물질에 유독물질을 포함하고, 환경부장관이 유독물질과 사고대비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 인근 지역 주민에게 위해관리계획서의 내용 중에서 고지하여야 하는 정보에 유독물질과 사고대비물질의 목록, 취급량, 배출량, 이동량에 대한 정보 등을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지자체장이 화학사고 발생 신고를 받은 때에 즉시 화학사고가 발생한 지역의 관리위원회에 통보하도록 하고, 통보를 받은 지역 관리위원회는 지체 없이 지역 주민에게 관련 정보를 알기 쉽게 가공하여 고지하도록 했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지역에서는 지역사회 알 권리법 관련 조례 제정이 이어지고 있다. 7개 지역단체(건강한일터․안전한성동만들기 사업단/발암물질없는 군산만들기시민행동/여수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오창유해화학물질감시단/울산시민연대/웅상지역노동자의 더나은 복지를 위한 사업본부/인천연대)는 지역사회 알 권리법의 주요내용이 포함된 ‘화학물질 관리 및 지역사회 알 권리 조례(안)’을 지역 상황에 맞게 의회에 상정하여 제정을 추진했다. 조례안은 인근 공장에서 지역사회로 배출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을 주민들이 알고, 주민이 참여하고 동의하는 화학물질 관리 및 비상 대응계획을 수립하고, 이와 관련된 제반 정보가 주민들에게 단순히 통보되는 것이 아닌 소통되도록 하는 일련의 체계를 담았다. 현재 경기도, 전라북도 군산시, 인천광역시, 전라북도, 충청북도에서 지역사회 알 권리조례가 통과되어 시행 중에 있다.
위험 정보와 안전 정보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라고 가정한다면, 이 정보는 반드시 국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사고발생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될 지역주민과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상시적으로 해당 정보를 제공받고, 기업 및 행정기관과 함께 대비책을 만들 수 있도록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한 일차적인 알 권리 보장을 넘어선 정부의 적극적인 알 권리 보장의 노력이 필요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는 재난과 안전에 대해 제대로 된 국가시스템이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한 이제까지 이런 정보에 대한 알 권리 자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과 직결되는 중요한 인권의 문제가 되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주요 정보에 대한 알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논의의 장이 넓어져야 할 것이다.
* 글에 참고한 자료
- 국회의원 은수미/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지역사회 알 권리보장을 위한 화학물질관리법 개정 국회 토론회」, 2014
- 장지범 외, 「안전사회 실현을 위한 국가 통계관리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한국행정연구원 정책보고서, 2014
- 유해화학물질기본법 일부개정 법률안, 은수미 의원 대표 발의, 2014
덧붙임
정진임 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