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다. 여느 해보다 낮은 기온에 이불 밖을 나가기 싫어진다. 하지만 자리 뉘일 곳, 편하게 치료받으며 요양할 공간조차 확보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요양병원 입원을 필요로 하는 에이즈환자들이다.
질병관리본부가 2013년 12월 수동연세요양병원과의 ‘중증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 계약을 해지한 이후, 에이즈환자를 받아주는 요양병원은 하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요양병원들이 에이즈환자를 받아주지 않은 탓이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수동연세요양병원에 입원해있던 에이즈환자들을 국립의료원과 국립경찰병원 등으로 전원시켜 간병을 지원했다. 그 외 장기요양환자들은 홀로 살길을 찾아 서울의료원 등 종합병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알다시피 이곳들은 요양병원이 아닌 급성기병원(급성 질환이나 응급질환을 볼 수 있는 입원 가능한 병원)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요양병원 문턱은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2016년, 질병관리본부는 ‘요양병원에 가라’는 방침을 내놨다. 병원 측의 눈총과 반복되는 퇴원통보에 환자들은 갈 곳이 없어졌고,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엄혹한 생애의 난간에서 최후의 외침을 부르짖기까지, 에이즈환자들은 의료난민이나 다름없는 삶을 버티고 있다.
급성기병원은 장기 입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환자가족들은 병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거기다 1년 단위로 편성되는 HIV/AIDS 관련 정부예산과 사업이 증액은커녕 감축되기 십상인지라 불안에 떨어야 함은 당연지사가 된지 오래다. 작년 3월 무렵, ‘예산이 부족해서 10월부터는 무료간병지원이 중단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해 가을 국회를 찾아가 예산증액을 요청했고, 다행히 국회 본회의에서 간병지원예산을 증액하도록 가결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질병관리본부는 2016년 간병지원예산을 축소하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경우에만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작년 12월부터 환자가족들은 국립의료원으로부터 ‘곧 국가지원이 중단된다. 퇴원해야한다. 요양병원을 알아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장 갈 곳을 찾기 위해 질병관리본부에 수차례 문의를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환자를 받아주는 세 곳을 알려주었다. 양주에 있는 ㅇㅇ요양병원, 샘물호스피스병원, 수동연세요양병원.
답이 나오지 않는 아니, 답이라 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먼저 수동연세요양병원은 질병관리본부가 2013년 12월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지정기관으로 부적합 결정을 한 곳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부적합 판정을 받은 요양병원을 안내한 것은 어불성설일 뿐 아니라, 환자들에게 부담과 고통만 가중하는 셈이다.
샘물호스피스병원은 현재 9명의 에이즈환자가 장기요양중인 병원이라 그나마 가능성을 점쳤다. 하지만 당장 샘물호스피스병원은 병상을 추가할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 병원은 ‘요양병원’이 아니라 ‘급성기병원’이다.
마지막으로 양주에 있는 ㅇㅇ요양병원은 국립의료원에서 소개해준 곳이다. 갈 곳은 이곳뿐이었다. 환자가족들은 2015년 12월 말부터 입원상담을 하였고, 2016년 1월 5일 첫 환자가 전원했다. 그런데 1월 6일 환자가족들이 입원상담을 한 직후, 해당 요양병원은 입장을 바꿔 국립의료원과 환자가족들에게 ‘오지 말라, 에이즈환자 안 받는다, 이미 온 환자도 퇴원시킬 것’이라고 통보했다. 환자가족들이 입원상담 시 필요한 정보를 묻고 간병인 추가 등을 요구해서 ‘골치 아프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환자가족들에게 콧대 높은 병원과 기관 앞에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리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그마저 질병관리본부에, 병원에,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문의를 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응답 없는 전화통을 붙잡고 ‘환자랑 같이 죽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부분 와상상태인 환자들은 바늘방석 같은 누울 자리를 겨우 버텨내고 있다.
차별현실은 굳건하다
요양병원이 에이즈환자를 대우하는 태도는 분명 문제이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양주에 있는 ㅇㅇ요양병원은 입원상담시 다른 질환자의 경우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월 40만원의 본인부담금을 받지만, 에이즈환자는 월 60만원을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 에이즈환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왜 요양병원들은 에이즈환자에 유독 까다롭게 구는 걸까. HIV/AIDS의 전염위험으로 환자들의 요양병원 입원을 금지해야 하기 때문인 걸까. 요양병원들은 ‘전염성질환자는 요양병원 입원대상이 아니다’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빌미로 에이즈환자를 거부해왔다. ‘HIV는 일상생활, 공동생활을 통해서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요양병원 입원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복지부가 이미 내린 상태지만, 요양병원 문턱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31일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공포하여 요양병원 입원제외 대상에 HIV감염인이 포함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 법적으로 에이즈환자들이 요양병원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고, 에이즈환자가 다른 환자들에게 전염시킨다는 것 또한 근거 없다는 이야기다. 요양병원이 콧대를 높이며 환자를 가려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법’은 멀고 ‘현실’은 코앞이다. 요양병원의 에이즈환자에 대한 거부는 변함이 없다. 질병관리본부가 2014년 10월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와 간담회를 하고, 복지부가 2014년 12월 에이즈환자에 대한 요양병원 진료수가를 인상하도록 결정했지만,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는 2015년 3월 25일 자 일간지 광고를 통해 ‘에이즈환자 요양병원 입원 반대’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재차 천명했다.
높은 진입장벽에 허울뿐인 종잇장 정책
의료시스템이 민영화되면서 요양병원도 시장이 되었고,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작아졌다고 봐야 할까. 사정을 좀 더 살펴보면 개입의 여지뿐 아니라 개입의 의지조차 증발했음을 이내 확인하게 된다. 일차적으로 세 병원을 대안으로 제안한 질병관리본부의 태도에 최소한의 고려라는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외려 국가기관으로서 보호해야 하고 엄밀히 말해 사업대상이기도 한 에이즈환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이들의 절박함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문제 삼게 만든다.
질병관리본부는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저소득 중증환자의 경우에만 매월 40만원의 간병비를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2016년 1월 22일 자로 국립의료원 입원환자의 간병지원을 중단할 것이니(국립경찰병원 입원환자에게는 1월 15일까지) 서둘러 요양병원을 알아보라고 환자가족에게 통보하였다. 통보 이후 발만 구르는 환자가족들에게는 당신들의 노력 부족으로 받아준다는 요양병원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요양병원의 변덕에 환자가족들이 떠안아야 했던 불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과 진료수가 인상 등을 통해 법·제도적 보완을 했지만, 여전히 요양병원에서 에이즈환자를 배제하는 ‘현실’에 정부가 개입할 의지는 전혀 없는 듯하다. 모니터단이나 옴부즈만을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 보건복지위원장 김춘진 의원실에 보낸 질병관리본부의 답변은 ‘별도의 민간 모니터단 운영 시 요양병원에서 감염인의 입원거부 예상’되므로 ‘질병관리본부, 관할 보건소에서 수시로 불시에 점검 계획’이라는 것이다. 수시로 불시에 하겠다는 추상적인 표현은 구체적 계획이 없음을, 점검기준 또한 없음을 의미한다.
갈 곳 없는 에이즈환자, 질병관리본부는 책임을 다해 문제에 응하라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에이즈환자는 현재 국립의료원에 11명, 국립경찰병원에 4명, 서울의료원에 7명, 샘물호스피스병원에 9명, 또 어딘지 모를 종합병원에 산산이 흩어져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앞에 언급된 요양병원들로 전원되었다.
환자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권자이며, 가족들 또한 환자의 오랜 투병으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어 형편이 좋지 않다. 급성기병원에서의 간병비를 부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환자들의 상태는 간병인의 돌봄 없이는 생명유지가 불가하다. 간병지원 중단기한이 다가옴에 따라 병원 측의 퇴원압박은 날로 커진다. 살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살아내는 시간들은 가혹한 처우가 따른다.
법과 제도가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을 때, 행정부는 이를 집행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여러 구제수단과 제도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과 제도는 종잇장에 불과하다. 에이즈환자가 요양병원에 자유로이 입·퇴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질병관리본부의 방안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질병관리본부의 방안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방관과 태만일 뿐이다. 환자가족들에게 노력부족을 탓하며 요양병원 문을 뚫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질병관리본부가 환자가족과 협의하고 협조하여 직접 요양병원의 문턱을 낮출 수 있기를 바란다. 요양병원도 병상마련과 직원교육 등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함을 모르지 않기에 당장 들어가겠다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요양병원이 마련될 때까지 간병지원을 유지하여 환자와 가족들이 잠시나마 몸을 뉘고 있는 병원들에서 내쫓기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언제까지 강제 퇴거하듯 코앞 날짜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서 해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