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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박김형준의 못 찍어도 괜찮아

[박김형준의 못찍어도 괜찮아] 빛


오늘은 제가 9년 전에 사진교육을 했던 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학교엔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있었지요. 학교시스템 자체가 맞지 않았던 친구, 친구들에 의해 따돌림 당했던 친구도 있었고, 학습 자체를 잘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는 친구들도 있었죠. 뭐 당연히 성격도 각양각색이였구요. 초반에는 이 친구들과 무언가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죠. 대화에 집중도 해주지 않고, 질문 하는 말에 무조건 '모른다'고만 얘기하니 말이죠. 처음엔 '모른다'는 말에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좀 더 다양하게, 다른 방식으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른다'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 '호응했다'는 것이니까요.)

몇 주정도 프로그램이 진행될 무렵이었어요. 그 중 두 친구가 있었는데, A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해서 사진을 다양하게 잘 찍는 친구였고, B는 자신감이 없다보니 사진을 시간 내에 찍기를 힘들어했던 친구였습니다. 가끔씩 이 둘은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썩 친한 친구들은 아니었답니다.

근데 사건은 둘이 장난을 치다가 A의 카메라를 B가 떨어뜨리면서 생겨났습니다. A의 카메라가 바닥에 툭 떨어졌고, 아래 부분이 부서지게 되었죠. 그러자 갑자기 A는 B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한대 '퍽' 치는 것입니다. 놀란 저는 '지금 무슨 짓이냐'며 말렸고, A는 저에게 '죄송하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이제 생각해보니 왜 제가 사과를 받았는지 모르겠네요. 사과는 B에게 하게 했어야하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A는 저에게 "B는 가난해서 카메라 못 고쳐요. B는 돈 없어요. B 아버지 택시기사란 말이에요." 라고 하더라구요.

갑자기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너무 화가 나서, A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좀 침착하게 대응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 것이 후회가 되네요.

"이거 얼마 안 나올 꺼야. 걱정마. 많이 나오면 내가 내줄테니. 걱정마!" 라며 A를 자리에 앉히고, B에게 "걱정 말아. 수리점에 맡기고 얘기해줄게" 라고 했답니다.

한 주가 지나고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카메라 수리비는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죠.
A는 또 다시. "선생님. 수리비 많이 나왔죠? 제 비싼 카메라 수리비 많이 나왔죠? B가 수리비 못 낼 텐데." 라고 하더군요.

저는 "걱정마. 많이 안 나와. 너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마라."라고 말을 끊고, B에게도 '걱정 말라'라고 얘기했습니다.

다행히 카메라 수리비는 5만원 내외로 해결되었답니다. 큰 비용이 들지 않았죠.

이제 보니 A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그 생각을 고치도록 하거나, B에게 사과를 하도록 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참 그때는 왜 그렇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상황을 넘기기에 급급했는지 후회가 되네요. B에게도 상처받았을지 살펴보고 충분히 보듬어 주었어야 하는데요.

몇 달이 지나 학기말이 되면서,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발표회 준비를 하게 되었답니다. 역시나 A는 사진들을 이것저것 다양하게 찍었고, 감각적인 사진들을 찍었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은근히 기대하고 응원하던 친구 B에게 다가갔습니다. "어떤 사진으로 전시할 꺼야? 사진한번 볼까?" B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아~' 제 시각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지요. 그래도 "고생했어. 사진 전시 잘해보자."라고 마무리했죠. 이제 발표한 작품을 다 마무리하고, 붙이는 시간이 왔습니다.

'앗!' B가 붙인 보드를 보았습니다. 약간의 소름이 돋았어요.
"너 이거 무엇을 찍으려 한 거니?"라고 물어보자, B는 "빛이요. 빛을 담아보려구요."라고 대답했습니다. B는 자신이 스스로 주제를 잡아서 계속 하나씩 하나씩 찍은 것이더라구요. 바로 주제는 '빛'이였습니다. A나 다른 친구들의 사진도 물론 훌륭하고 멋졌지만, 전 B의 사진을 보고 그날 무척이나 감동받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담으려 했던 B에게 참 고마움이 남아있죠. 또한 제 시각으로만 사진을 봤던 것에 대해 '반성'도 크게 했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정말 고맙다. 고마워'라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대신 등을 툭툭 두드리며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였답니다.

덧붙임

박김형준 님은 사진가이자 예술교육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