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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세월호 참사 1년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20150408)

세월호 가족들이 영정을 들기까지 얼마나 어려웠을까 아직도 다 짐작은 못한다. 적어도 1년의 시간이 필요한 결정이었다는 것은 안다. 작년 5월 KBS 앞에서 경찰이 부모들을 막으며 부서지고 깨진 영정들이 많았다. 그 후로 '영정'은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이었다. 가끔은 몰래 가방에 담아와 껴안고 자는 부모도 있었고, 절대로 영정만은 들지 않겠다고 말했던 부모도 있었다. 삭발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깎겠다는데 왜 말리냐고 성을 내는 부모도 있었고, 하늘나라에서 아이들이 보고 있다며 극구 말리는 부모도 있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러, 부모들은 다함께 영정을 들고 행진하기로 했다. 70여 명의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삭발을 했다. 도대체 참사 이후 1년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던가. 

책임을 묻지 못하는 사회

지난 주말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 도보행진이 있었다. 한 아이의 부모가 같이 걷다가 부부싸움을 하게 됐다. 지나는 길가에서 누군가 이제 좀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고, 아빠는 화가 나서 대꾸를 했다. 엄마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자고 한마디 했고, 아빠는 하고 싶은 말도 못하냐며 엄마에게 화를 냈다. 말한들 알아듣겠냐며 엄마는 다시 화를 냈고, 그러면 아무 말도 안하고 당하기만 할 거냐며 아빠가 쏘아붙였다. 수백 명이 상복을 입고 영정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 여전히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다가도, 이렇게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함께 기억해줄 줄 모르는 사회는 잔인하다. 시간이 흐르며 누군가 먼저 잊을 수는 있다. 힘들어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못하는 게, 피할 수 없는 게 형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픔을 보듬어도 부족할 가족들이 서로를 향해 화를 풀게 되는 이유는, 그 아픔을 잘 알아주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년이 되도록 우리는 기억을 만들지 못했다. 

"아이랑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어서 탈출하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어쩔 줄 몰라 엉엉 우는 아빠가 있다. 퇴선 명령을 하지 않은 선장과 선원들, 탈출 안내를 하지 않은 해경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을 기소했고 사법부는 이들을 심판했다. 그러나 아이와의 마지막 통화를 떠올릴 때마다 울음을 참지 못하는 아빠는 고스란히 죽음의 책임을 떠안고 있다. 그저 형량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퇴선하라고 말하지 않은 사실 외에는 사회가 책임을 묻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는 왜 침몰했으며, 사람은 왜 구하지 못했으며, 도대체 왜 그렇게 거짓말들이 많으며, 왜 심지어 그렇게 숨기려 드는지, 아무도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한데 책임을 따져 물을 곳이 어디인지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1년이 되도록 우리는 진실과 정의를 만들지 못했다. 


진실을 가로막으려는 정부

"진실에 대한 권리는 인권침해의 이유와 침해가 발생한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을 포함하여 발생한 사건에 대한 완전하고 완벽한 진실, 사건의 구체적 상황, 그리고 누가 사건에 참여했는지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유엔인권최고대표실, 진실에 대한 권리 연구) 억울함과 죄책감이 엉켜있는 가족의 고통은 진실이 밝혀져야 풀 방법이라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철저히 밝히자고, 성역 없이 밝히자고 했다. 책임에 연루된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와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가져 책임을 밝히는 데까지 나가자고 제안했다. 수사와 기소의 권한은 특별검사를 요청하는 데서 멈췄지만, 조사의 권한을 갖춘 특별조사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것이 작년 11월에 제정된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내용이다. 

그러니 서둘러 특별조사위원회를 설립하고 충분하고 효과적인 조사들이 시작되어야 했다. 그런데 법의 내용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필요한 시행령(정부안)이 오히려 법을 가로막고 있다. 조사 대상이어야 할 정부 주요 기관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이 조사업무뿐만 아니라 특별조사위원회 업무 전반을 기획조정하게 해놓았다. 조사는 지금까지 나온 자료를 검토하는 것으로 한정하려 들고 있다. 안전사회를 위한 종합적 대책을 마련하라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해양선박사고'만 점검하라고 한다.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정부 시행령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독립성이 명백하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다시 집중농성을 시작했다. 정부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낸 시행령안을 통과시키라고.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 면담을 요청하러 가겠다는 가족들은 경찰에 막히자 그 자리에서 비닐 한 장을 덮고 잠을 청했다. 


인간의 시간을 모욕하는 국가

그러자 갑자기 '배보상' 얘기를 정부가 꺼냈다.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은 지난 1월 제정된 또다른 특별법이다. 이 법은 배보상과 지원추모 두 영역을 다룬다.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은 그리도 미루더니 지원 특별법은 순식간에 제정됐다. 진상규명 특별법은 아직 시행령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인데 지원특별법은 이미 시행령이 공포돼 시행에 들어갔다. 지원과 추모에 대해 가족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피해'에 대한 조사도 충분하지 않고, 지원의 원칙도 없이 의료서비스는 5년까지라는 식의 규정만 앙상하게 있다. 그런데 유독 배보상 절차를 서둘러 진행시키더니 한 사람 당 얼마라는 식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마치 보상이 부족해 가족들이 거리로 나온 것처럼,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들을 음해하고 있다. 

가족들이 행진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몰래 울어야 했던 엄마가 있다. "나는 언제 상복 입혀줄 거야! 우리 딸은 언제 돌려줄 거야! 이런 나라가 세상에 어딨어!" 행진이 있고난 다음날, 그토록 '세월호'를 입에 담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이 인양을 언급했다. 그러나 가족들이 요구하는 시행령안 폐기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 시행령은 대통령이 서명해야 공포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1주기를 앞두고 '인양'을 한 번 더 말한들 그 말이 수천 톤의 세월호 무게를 견딜 거라 믿기는 어렵다.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해 입을 다무는 만큼 진실의 문도 굳게 잠겨있으리라는 사실만 분명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의 눈물을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광화문 1인 시위를 하느라 함께 행진하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이 숙박 장소로 찾아와 유가족들의 고단한 다리를 위로하고, 유가족들은 실종자 가족들의 무거운 어깨를 위로하는, 인간의 시간을 짐작할 리 만무하다.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1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배상은 단지 재화의 이전을 위한 메커니즘이 아니라 정의를 성취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보장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보고서) 그런데 정부는 배상을 진실과 거래하려 들었다. 생명을 내버리더니, 진실을 가두더니, 이제 모욕을 퍼붓는다. 그러면서 안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려 고심 중이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난 후 많은 국민들이 던졌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정부는 갈수록 선명한 대답을 내놓고 있다. 생명보다 돈, 진실보다 권력, 회복보다 배제가 자신의 답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대답이다. 우리는 인간의 표정을 읽을 줄 아는, 그래서 타인에게 응답할 줄 아는 사람의 세계로 가야 한다. 

기억도, 진실도, 정의도 만들지 못한 1년의 시간이 허투루 흘러가지는 않았다. 영정이 바람 맞을까 비 맞을까 꼭 싸안으면서 1박 2일의 행진을 한 가족들의 발걸음은 더욱 가볍고 단단해졌다. 표정의 채도와 명도는 더욱 폭넓어졌다. 끝까지 함께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욱 간절하고 빠르게 모인다. 기억이 희미해진 1년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1년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서 가족들은 인간의 존엄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존엄을 훼손하는 현실이 선명해지는 만큼 존엄을 세워가는 우리의 연대도 선명해졌다. 끊어낼 것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넘어설 일만 남았다. 4.16인권선언을 길잡이 삼아, 정부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인양을 결정하도록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거침없이 나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