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몸이 아프면 전화를 걸어서 연차를 썼는데, 지금은 회사에 갔다가 다시 나와요. 사후 연차 썼다고 욕먹기도 하도, 아픈 것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라고도 하고 그러니까.... 그냥 아픈 사람이 못 가면 그걸로 끝나야 되는데, 뭐 가지고 오라고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뭐하는 건지.....”
“현장에서 물을 마시지 말아라. (관리자에게) 어떻게 물을 마시지 않으면서 일하냐고 그러면 정수기가 있지 않느냐 물 마시고 싶으면 정수기 와서 먹어라. 그런데 정수기가 반장실 앞에 있거든요. 사실 먹지 말란 얘기랑 똑같은 거죠.”
이 이야기들은 80년대 노동자들의 증언이 아니다. 대통령을 직접 국민의 손으로 뽑고 민주노총이 합법화된 시대의 노동 현실이다. 최근 월담에서는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인권침해 심층면접 조사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함께 실시한 전국 8개 공단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 인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조사를 하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물론 이것은 안산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후퇴하고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노동현장은 과거의 모습과 닮아 가고 있다.
특히 불법파견의 천국 안산에서는 더욱 그렇다. 2014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안산과 시흥의 파견노동자가 2만6천 명으로 전국 파견노동자의 19.8%다.
“다시 일하려고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려고 공단 전체를 돌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90년대에는 다 정규직이었는데....결국에 파견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구했어요.”
“우리 회사에는 정규직, 계약직, 도급, 파견이 다 있어요.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파견업체도 여러 개에요.정규직으로 되려고 조장 반장 눈치를 보는 것 같더라구요. 뒤에서는 욕해도 반장한테 음료수 같은 먹는 걸 잘 챙겨주는 걸 알게 되니 미안하고 씁쓸하더라구요.”
조사에 응해준 노동자들의 이야기 속에 그/녀들의 고단함과 무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번 인권침해 심층면접 조사대상은 제조업으로 한정했다. 그러니 이들은 다 불법파견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파견법에서는 제조업은 파견노동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임시·간헐적 업무에 3개월간 파견노동을 허용하고 있다. 그걸 악용해서 3개월 마다, 또는 6개월마다 자르고 다시 쓰는 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부는 파견노동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법을 바꾸려고 한다. 불법을 합법화한다고 노동자의 삶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저 자본의 소리에만, 기업의 이익에만 전념하는 것이 나라의 의무라고 보는 그들의 정치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의 어려움은 비참한 노동의 세계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접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다.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30만 노동자들 중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사람들은 1%라니 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서 재확인한 것은 노동조합이 있는 곳과 아닌 곳에서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조직화, 노조 결성의 권리가 먼저 보장되고 행사되어야 한다. 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