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는 내 인생의 북한을 아그대다그대 이야기합니다
정록
고등학교 1학년때 어쩌다가 김일성 사망소식을 우리 반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되었다. 교실로 들어가서 김일성 죽었다고 하니까 정말 아무도 안 믿었다. 82세에 죽은 게 안 믿을 나이는 아닐텐데. 우리 모두에게 김일성이 죽은 건 북한이 사라졌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여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상황을 보면 다시 진지하게 묻고 싶다. 대체 우리에게 북은 어떤 의미이길래 이 난리인건지.
미류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을 하다가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았는데 보통의 잠자리와 다르게 긴 더듬이가 있었다. 곤충도감을 아무리 뒤져도 긴 더듬이를 가진 잠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북한이 보낸 정찰 로봇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북한이 쳐들어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전쟁이 나는 꿈은 아니고, 이미 인민군이 들어와서 마을을 장악하고 그냥 사람들도 눈치보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 즈음 낯선 존재들이 찾아오는 꿈을 많이 꿨던 것 같다. 우리집 창고에 마녀가 들어와 살게 되는 꿈도 기억난다.무서운 것과는 조금 다른 낯선 존재. 그런데 그게 외국인도 아니고 북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마녀처럼 다른 세상의 사람들, 한참동안 그렇게 느껴왔던 것 같다. 지금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가장 멀리 있는 존재. 테러방지법이 처리되자마자 북한인권법이 상정돼고 통과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런 거리감 때문은 아닐까.
바람소리
내가 북한을 처음 접한 건 동네 뒷 공터의 삐라와 초등학교 때 독후감용 책이던 똘이장군이다. 삐라는 뭔지 모르지만 호기심을 갖게 했고 똘이장군은 북한은 참 잘못된 곳이라는 생각을 던져줬다. 양극단이 공존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때가 70년대이기 때문이겠지. 그때만 해도 남북이 경제력은 비슷했으니까. 지금은 삐라는 반북단체가 북으로 보내며 긴장만을 부추기는 의미만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디요
할머니가 황해도 출신이어서라 그런지 내가 어릴 때부터 아빠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지금도 아빠의 소원이 통일일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 북한은 할머니가 살던 동네였지 적이라거나 무서운 존재로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들로 느껴졌달까..? 그리곤 정주영이 소 떼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통일이 가까워졌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북한은 더이상 이웃이 아니라 북풍으로 다가왔고 입대를 앞두었을 땐 나에게 위협이 될 바에는 그냥 각자를 인정하고 통일 같은 거 안 하고 서로 신경끄고 살면 안 되나 하고 생각했다. 요즘은 그 무관심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 이렇게나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다니 정말 시절이 하 수상하구나 싶다.
승은
유년시절 북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라도 달린 도깨비와 같은 존재로 여겼던 것 같다.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인해 북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배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학생운동을 하면서 북에 대해 친밀감을 갖는 (이를테면 민족적 감성으로) 친구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북을 향한 미운 마음을 배워왔는데 어떻게 몇 번의 세미나로 민족적 동질감이 생길 수 있는지... 2000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북대표들을 보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북이라는 나라의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난생 처음 보았는데.... 너무 장 생기고 매너도 있을 것 같아서,,,, 아, 정말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구나... 그런 느낌. ㅎㅎ 요즘 언론을 통해서 반공교육 못지 않게 북을 흉악스럽게 그리고 있다. 그 허상이 깨질 날들이 언젠가는 오겠지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초코파이
고등학교 때 내 기억으로 학교에서 조회 전에 갑자기 학교에서 TV를 틀어주었다. TV에서는 북한의 김일성 국가주석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 당시 멋모르고 느꼈던 감정은 우선은 위화감? 왠지 절대 죽을 것 같지 않던 인물의 죽음이었기에 느끼는 이질감이 컸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은 참 단순하게 북한에서 독재(?)가 끝나고 곧 평화가 올거라는 안도감..... 멋모르던 시절의 이야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