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참 더워지고 있어요.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겠지요. 그리고 또 힘든 사람들도 생각합니다. 제 엄마 같은 분이요. 엄마는 몸도 뚱뚱하고 편찮아서 여름 같은 날은 더 힘들어해요. 나이가 들수록 엄마에 대한 연민이랄까, 이런 게 더 생겨요. 우리 엄마는 가난한 삶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아빠 없는 외로운 삶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고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제가 집안일을 잘하고 집안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은 아니에요. 전 이른바 밖으로 도는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엄마한테 잘해야지 가족한테 잘해야지 하는데 생각만큼 안 되네요.
전 가족을 사랑하지만 패밀리맨(family men)은 되지 않으렵니다. 패밀리맨은 전체주의를 연구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한 표현입니다. 자신의 가족만을 위하며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가족남성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전 이 말이 꼭 남성(가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봐서 번역 없이 그대로 씁니다. 아렌트는 나치에 충성하면서 유대인학살에 동조한 아이히만을 보면서 자기 일, 자기 가족과 친구들, 사적 관계에만 충실하고 사회는 보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를 분석했어요. 악의 평범성도 그러한 분석에서 나온 개념이지요. 자기와 가족의 “안전과 안락한 생활만 보장된다면 거의 어떤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기에 학살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최근 집회 현장이나 농성자들을 비난하며 가는 시민들을 보면 더더욱 패밀리맨은 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집회를 하니 당연히 시끄럽고 통행이 좀 느려지겠지요. 그런데 그 이유로 왜 집회를 하는지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고 비난부터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그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집회와 파업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하거나 보장하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생긴 일이지요.
예전에 봤던 영화 <파리에서 온 여자, 뉴욕에서 온 남자>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파리로 온 연인들이 간호사들이 파업으로 하고 행진을 하니까 집으로 가는 길이 불편해요. 남자는 파업으로 택시도 탈 수 없다며 투덜거립니다. 파리에서 자란 여자와 그녀의 엄마는 간호사들이 파업을 하는 건 당연하다며 투덜거려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겠지요. 원래 집회란 소란스럽고 불편하지만 다른 권리를 찾기 위해서 서로 그러한 권리를 이해하고 보장하는 태도를 배운다면 좋을 텐데……. 우리사회에서는 그걸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니까 욕하는 사람들을 조금 이해는 합니다만 안타깝지요.
그래도 그렇지 않은 분들을 만나면 정말 기쁘답니다. 양재동 현대차 본사 옆에는 하나로 마트가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물건을 사러 오갑니다. 그러다보니 유성노동자들 농성 때문에 통행이 불편하다고 욕하시고 가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이 동네에 사는데 고생한다며 노동자들에게 음료수를 사주시고 가는 분들이 있어요.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자신의 생활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들었던 제 답답함과 갈증을 해소해주니까요. 모두가 자기 일만, 자기 가족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니까. ‘세상은 나아질 기미가 있어’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 싸움도 조금 나아질 거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더더욱 고마웠답니다. 여러분들도 패밀리맨은 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