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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모금

세주

'모금'의 오랜 기억은 수재의연금. 요즘에야 모금의 방식이 워낙 다양해졌다지만 초등학교 때만 해도 방송국 모금 아니면 학교에서 단체로 모금하고 이랬던 것 같다. 수재의연금은 대부분 태풍이 불고 큰 피해가 나면 걷는데 여름방학 즈음이라. 집에서 TV뉴스 말미에 나오는 모금 명단을 보고 방송국에 가서 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맞겠지??) 암튼 요즘은 이런 이재민 모금 말고도 여러 목적과 방식의 펀딩이 다양한데 사실 관심을 갖고 챙기지 않으면 지나치게 된다. 특히 SNS를 즐기지 않는 사람은 알기 어려운 펀딩, 후원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요즘 트렌드를 못 쫓아가는 듯한 느낌이... 그래도 많은 관심과 응원이 서로서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다. 모두모두 잘되었으면 좋겠다. :)

미류

문득 밀양과 강정이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던 기억이 난다. 국가폭력은 경찰의 물리력으로도 등장했지만 후원금 모은 걸 불법이라며 시비 거는 방식으로도 작동했다. 진짜 치사하고 더러운 국가였다. 이제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법은 그대로라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 모금 사업 열심히 해보자고 정한 주제인데 딴 생각만 나네 ㅋ 그래도, 잘 될 거야~

디요

몇 년전에 뱃지를 팔아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네요. 정말 이제 와서 부끄럽지만 월담 활동을 하면서 재정사업으로 뱃지를 팔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기가 막혀 했었거든요. 누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월담의 뱃지를 산단 말인가. 저는 사람들이 뱃지를 그렇게 잘사는지도 몰랐고 저랑 같이 활동을 하던 동료 활동가들이 그렇게 판매를 잘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다시 한번 반성하며 그 덕에 지금 월담이 비가 새던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쓰

내가 준비한 첫 모금은 2010년, 청소년 인권활동의 기반을 다지고자 진행했던 'Hot Youth'라는 이름의 후원행사였다. 어디 번듯한 식당이나 술집 빌릴 돈도 아까워 용산에 있는 철도웨딩홀을 빌려서, 덩그러니 넓은 홀에 식탁을 깔고, 부직포로 만든 빨간색 모자(성냥불 컨셉!)를 쓰고 음식을 날랐던 기억이 ㅋㅋㅋ 그 때도 청소년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이번에도 사랑방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후원사업을 함께하게 됐다. 사무실 이사날 비가 왔으니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믿고 열심히 해보는 걸로!

여러 모금사업이 있겠지만, 어째 지금 이 순간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빨간 자선냄비 앞에 딸랑거리는 종소리, 바로 구세군 모금이다. 멀리서부터 딸랑딸랑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으면 한해가 저물고 있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한해 어떻게 살아왔나 돌아보게 되고, 그해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잘 보내서 마무리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유독 연말에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면서도 한해의 끝을 보내는 시기에 올라오는 감정들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온정’에 기댄 모금사업이 씁쓸하기도 하면서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려면 ‘온정’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곧 시작할 사랑방의 모금사업에 많은 이들이 ‘온정’을 갖고 품을 내어주길 바라는 건 모순이려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