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해 한국의 60개 사회단체들이 함께 발표한 성명입니다. 인권운동사랑방도 이에 동의해 연명했습니다.
<기자회견문>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한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제안
2월 25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2차 6자회담이 열린다. 어렵게 재개된 6자회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는 지금 우리는 이번 회담이 한반도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번 2차 회담을 비롯한 6자회담이 단순히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청산하고 동북아의 불안정성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002년 10월 북핵파문 이후 한반도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들은 북미간의 깊은 불신으로 인해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오랜 교착상태는 한반도에 조성된 긴장을 가중시켰고 그것은 한국민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지난 해 연말 미국의 불성실한 협상자세로 인해 연내회담개최가 무산되었고 그 결과 한반도 위기 해소에 대한 기대와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위기의 당사자인 동시에 북한과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한국정부는 한미공조 틀에 갇혀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1년여 동안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에 주목한다.
북한은 북미간 불가침조약 우선체결을 주장하던 입장에서 북한의 핵동결과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하는 이른바 동시행동원칙을 제안하는 등 진전된 협상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핵억지력을 강조하면서도 협상을 통한 최종적인 핵폐기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반면 북한의 선핵폐기 요구를 되풀이해온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핵프로그램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는 등 협상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바가 없다. 오히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확대와 북한자유법안의 제정 추진 등 대북압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또한 미국은 6자회담을 앞두고 실체가 불분명한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HEUP)을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회담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보지 못할 경우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갈등은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것이며 한반도 위기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6자회담을 통해 북한과 미국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발판을 마련하여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회담 참가국들도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6자회담에 대한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히는 바이다.
첫째, 북한은 이번 6자회담을 통해 공식적으로 핵무기 개발 및 보유 포기를 선언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선언하고 관계정상화의 의지를 표명해야 할 것이다. 또한 회담 참가국들은 이러한 선언을 지지하고 보장한다는 뜻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한 중대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둘째, 미국 정부는 북한이 제안한 "동결 대 보상"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 이미 북한은 추가적인 핵무기 생산 중단, 핵실험 및 핵물질 이전 자제, 원자로 가동 중단을 '동결 대상'으로 제시하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테러지원국 해제, 정치ㆍ경제ㆍ군사적 제재와 봉쇄철회, 중유, 전력 등 에너지 지원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핵동결 조치를 검증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추방했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핵파문으로 중단해온 중유제공을 재개하고 각종 제재조치를 철회하는 것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악행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북한의 핵동결이 제네바 합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면 동결에 대한 보상도 이 합의에 따라 이뤄져야 할 상응조치이다.
셋째,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HEUP)의혹이 이번 6자회담을 통한 협상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북한의 핵폐기 의사 발표 이후 미국이 다시 제기하고 있는 HEUP 의혹은 실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것이다. 프로그램을 부인하고 있는 북한의 '자백'을 강요하기 앞서 북한에 HEUP의 증거를 제시했다는 미국이 납득할 만한 증거를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이번 6자회담에서 미국은 입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북한의 HEUP 폐기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삼아 어렵게 재개된 6자회담을 좌초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도 HEUP 의혹을 해소할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지난 1월 북한이 제안했던 전문가 회담 등을 별도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한국정부는 북한 핵동결에 대해 남한주도의 에너지지원을 제안하는 등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해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북한의 단계적 협상안을 유연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구체적인 행동조치에 대해 상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적극적인 남북교류협력 정책을 통해 북한과 미국에 대한 입지를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회담에서 HEUP를 포함한 북한의 선핵폐기를 주장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여 6자회담 자체를 어렵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다섯째, 북핵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논의할 수 있도록 6자회담을 정례화해야 할 것이다. 북미간의 불신과 대결자세가 좀처럼 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의 모멘텀을 간신히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한반도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따라서 극단적인 북미갈등 상황을 예방하고 북핵현안을 지속적으로 조율할 수 있도록 6자회담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례화된 6자회담을 통해 북핵을 포함한 북미갈등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동북아의 불안정성을 해소할 수 있는 논의구조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200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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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