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인권위 협력 거부 선언을 거두며
국가인권위 바로 세우기는 새롭게 계속된다
2기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조영황 신임 위원장이 취임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인권위의 개혁을 주도했던 최영도 전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로 오리무중에 빠졌던 인권위의 향방은 조 신임 위원장의 취임으로 다시 가닥을 잡았다. 조 신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최 전 위원장이 누차 강조했던 3대 운영기조, 즉 △취약집단의 사회적 권리 △인권교육과 정책권고의 예방활동 △인권단체와의 긴밀한 협조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이것이 인권위의 거스를 수 없는 개혁 방향임을 확인한 것이다.
2기 인권위의 개혁 방향은 그 동안 인권단체들이 인권위를 향해 줄기차게 비판했던 내용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짧았던 최 전 위원장 시기 인권위가 보여줬던 개혁 조치들이 미진하지만 진정성이 있었다고 판단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조 신임 위원장이 추호의 머뭇거림도 없이 개혁의 돛을 더욱 힘차게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우리는 지난 2년 10개월 동안 유지해 왔던 '인권위에 대한 협력 거부 선언'을 거두며, 인권위의 진실어린 개혁 조치들엔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미진하거나 여전히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돌이켜 보면, 2002년 6월 공개적으로 천명했던 '인권위에 대한 협력 거부 선언'은 인권위의 탄생을 위해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마다하지 않던 우리로서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결단이었다. 국민의 인권 보호와 신장을 위해 한 배를 타고 권력기관의 풍랑을 헤쳐 나아가도 힘이 부칠 판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안하거나 요청하는 어떠한 사업에 대해서도 협력을 거부"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권력기관의 인권위 흔들기에 동참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인권위로부터 "기존 국가기구 관료들의 고답적인 태도를 거듭 확인"했고 인권위가 "관료주의적 독선에 빠져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인권위에 대해 협력 거부 선언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기 인권위가 "권력과 재력의 힘을 믿고 인권단체의 주장을 깔아뭉개고 인권단체를 길들이려는 태도"를 3년 내내 견지함으로써, 우리의 협력 거부 선언이 결코 섣부르거나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음을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협력 거부 선언이 1기 인권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엔 미약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창국 위원장 시대는 1기로 끝을 맺었고, 2기 인권위 최영도 전 위원장은 1기 인권위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비판에 전적으로 공감했으며, 조영황 신임 위원장도 인권단체들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감시와 비판 그리고 협력을 구했다. 또한 2기 인권위는 인권단체들이 열망하는 방향으로 인권위의 체질을 조금씩 개선해 왔다. 결과적으로 작금의 현실은 협력 거부 선언 당시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협력 거부 선언을 거두었다고 해서 우리가 인권위의 제안이나 요청에 무조건 응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인권위에 대한 협력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위를 바로 세우겠다는 데 있다. 사회권에 대한 강조, 정책권고 기능의 강화, 인권단체와의 긴밀한 협력 어느 것 하나 원칙적 천명 수준을 넘어 바람직한 전형을 만들지 못한 상태다. 1기 인권위의 핵심에 있었던 인사들이 2기 인권위원으로 옷만 갈아입은 채 구태에 연연해 할 수도 있고, 1기 인권위의 관료적 관행이 인권위 직원들 사이에 아직까지 팽배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는 인권위법 제정 당시 허울뿐인 인권위를 만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인권위법을 뒤튼 권력기관에 맞섰던, 그리고 인권위법 제정 이후에는 인권위를 앙상한 심판기구로 전락시키려는 법률가주의와 관료주의에 맞섰던 인권운동가의 긍지를 가지고, 지금까지 해 왔던 비판과 견제를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덧붙여 지금까지 거부했던 협력과 개입을 적극 해 나감으로써, 인권위를 "열린 자세로 가장 약하고 힘없는 국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국가기관으로 자리잡"게 할 것이다. 우리가 '협력 거부 선언'을 거둔 것이 인권위와 인권단체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2005년 4월 11일
인권운동사랑방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