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는 경찰의 유치인 인권침해를 방조하려는가!
경찰의 주장만을 반영한 ‘여성유치인 속옷 탈의’ 관련 국가인권위 결정을 우려하며
인권운동사랑방
<공 동 성 명>
인권위는 경찰의 유치인 인권침해를 방조하려는가!
- 경찰의 주장만을 반영한 ‘여성유치인 속옷 탈의’ 관련 국가인권위 결정을 우려하며
국가인권위는 11일 ‘여성유치인에 대한 속옷탈의’ 인권침해 진정 건에 대한 결정을 발표했다. 우리는 이번 결정이 경찰에 의한 유치인 인권침해를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국가인권위는 여성 유치인의 속옷을 탈의한 후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보완만을 권고함으로써 여성 유치인의 속옷 탈의 자체가 가지는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진정사건을 조사하면서 진정인보다는 경찰의 편에 섰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 결정문의 대부분이 경찰이 제시한 해명자료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후 경찰이 이번 결정을 악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는 책임을 통감하고 경찰에 더욱 구체적인 정책 권고를 내려야 할 것이다.
‘위험물 등의 취급’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경찰에게 손 들어준 꼴
촛불집회가 한창인 지난 8월 15일, 강남·마포·중부경찰서 등에서 집회 참가를 이유로 연행, 유치된 여성들의 속옷을 강제로 탈의시킨 인권침해가 있었다. 당사자들을 비롯해 인권·여성단체들의 항의가 있었으나 경찰은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경찰청 훈령 06.3.22.개정, 아래 유치규칙) 9조 “위험물 등의 취급”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스스로 자행한 인권침해를 부정했다.
유치인들이 수감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몸의 수색이나 물건의 압수보관은 유치인들의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많은 유치인들은 국가 권력을 경험하고 위축되게 된다. 특히 여성 유치인들의 경우 몸의 수색이나 속옷을 비롯한 물건의 압수보관 과정에서 가부장적 시선까지 감내해야 하며 성적 수치심을 포함한 인격의 모독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자살이나 자해를 방지해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는 변명만 늘어놓으며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방기해왔다.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준 마련 필요
생명권을 보호하려 했다는 변명이 다른 기본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이는 2002년 7월 ‘신체과잉수색행위에 대한 위헌 판결’에서도 확인된 바다. 유치인시설은 구조상 유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자살이나 자해의 실제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점, 자살이나 자해는 모든 유치인들이 일반적으로 시도하게 되는 행위가 아니라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행위라는 점에서 경찰의 변명은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유치인에 대한 몸의 수색과 물건의 압수보관이 유치인들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도록 ‘최소 침해의 원칙’에 따른 기준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속옷 탈의를 포함하여, 개인에게 수치심과 모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몸의 수색과 물건의 압수보관을 불가피한 경우로 제한하지 않는 이번 결정은, 속옷 탈의 자체가 가지는 인권침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오히려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여기서 더 나아가 지금까지 모든 피의자들에 대한 인격적 모독과 인권침해를 수시로 자행해온 경찰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어야 했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여성들을 통해 밝혀지기 전까지 여성 유치인들에 대한 속옷 탈의가 아무런 제한 없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은 경찰의 유치인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게다가 경찰은 피의자를 48시간까지 유치할 수 있다는 제한 규정을 오히려 악용해 유치의 필요성이 없는데도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인권침해 가해자들인 경찰이 생명권 보호를 근거로 제시하려면 합당한 태도를 보여줬어야 했다. 기본적 인권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지 못하는 국가권력이 얼마나 손쉽게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봐왔던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이런 지점에서 국가권력을 제한함으로써 인권기구로서의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
차별에 민감해야 할 국가인권위가 오히려 몰성적인 인식을 드러낸 것
또한 이번 결정이 국가인권위의 인권감수성 수준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우려를 표한다. 성에 민감하지 않은 정책은 언제든지 성에 따른 차별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경찰청 훈령인 유치규칙 9조에는 브래지어를 비롯한 남녀의 속옷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경찰청 훈령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부규범일 뿐인 경찰 업무편람을 기초로 경찰들은 여성유치인의 인권을 침해하였다. 업무 편람에는 여성의 브래지어만이 아니라 러닝셔츠나 양말 등 끈으로 사용될 수 있는 다른 의복들 역시 위험 물품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경찰은 다른 위험 물품인 러닝셔츠의 탈의는 요구하지 않았다. 이는 여성유치인에게 모욕감을 주려는 의도적인 집행으로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의도성을 문제삼지 않더라도 여성유치인에게만 인권침해가 가중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으므로 경찰의 몰성적인 공무집행일 뿐이다.
‘위험물’이라는 이유로 어떤 물건이 압수보관될 때 그것은 성에 따라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여성 유치인에 대한 속옷 탈의 강요 역시 몰성적인 경찰의 한계가 드러난 것인데도 국가인권위조차도 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또한 경찰이 혹시라도 이 결정을 근거로 여성 유치인들을 위축시키고 권력에 복종하도록 속옷 탈의를 악용한다면 국가인권위는 그로 인한 여성 유치인들의 인권침해를 조장한 셈이 될 것이다.
유치인에 대한 몸의 수색이나 물건의 압수보관은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물건을 압수보관한 후에 조치를 취하는 것은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이때 성, 장애, 나이 등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다면 언제든 차별적인 정책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여성 유치인에 대한 속옷 탈의를 근본적으로 제한하지 못한 이번 결정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각성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인권위는 여성 유치인을 비롯한 모든 유치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국가권력에 대한 따끔한 비판과 정책 권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08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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