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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논평]경찰은 불법적인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조치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

[논평]


경찰은 불법적인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조치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


2008년 촛불집회에서 연행되어 유치장에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받았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5월 3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7단독 조중래 판사는 경찰의 탈의 조치가 법적 근거 없이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자살방지 등 유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벗어나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우리 단체들은 그동안 여성 유치인의 브래지어를 강제로 탈의시켜 온 경찰 관행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최초로 확인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

2008년 당시에도 브래지어 탈의 조치는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경찰이 재량권을 남용하여 자의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번 판결은 유치인이 “혁대, 넥타이, 금속물 기타 자살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한 경찰청 훈령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과 브래지어 탈의를 규정한 ‘유치장 업무편람’이 행정조직 내부의 행정명령에 불과하므로 기본권 제한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소송 과정에서 국가는 브래지어가 자살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면서 탈의 조치가 합법적이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2003년 이후 국내 교도소·구치소는 물론이고 유치장에서도 브래지어를 이용해 자살을 하거나 타인을 위해한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또한 교도소·구치소의 경우 여성 수용자에게 1인당 3개까지 브래지어 소지를 허용하고 있고 판매까지 하고 있음이 소송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경미한 범죄 혐의로 연행되어 자살이나 자해의 동기나 가능성이 애초에 없었으므로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자살 방지라는 규정의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행해진 매우 임의적이고 이례적인 조치로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였다.

2008년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경찰청은 2009년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브래지어의 위험성 유무에 대한 검증을 거쳐 착용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판정을 받아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6월에도 반값등록금 시위를 하다가 연행된 대학생이 서울 광진경찰서에서 유사한 피해를 입음으로써 경찰의 답변이 거짓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사실상 경찰이 구금된 여성에게 위축감과 수치심을 주려는 성별화된 폭력이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경찰의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근절되어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2008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의 어이없는 권고 또한 기억한다. 국가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브래지어 탈의요구 시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탈의한 후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보완조치를 강구하라고 권고함으로써 브래지어 탈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정당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향후 여성유치인용 조끼를 비치하여 인권위 권고를 이행하겠다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이번 판결은 브래지어 탈의 자체가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가 인권감수성, 성 인지도가 얼마나 부족한지 일깨워준다. 법원의 엄격한 법적 잣대를 통과하기 어려운 다양한 피해를 인권침해로 호명하고 구제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인권위가 이번 판결로부터 배울 점을 찾기 바란다. 국가인권위는 인권 증진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경찰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불법적인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관행을 중단하라. 또한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과 ‘유치장 업무편람’을 즉시 개정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



2012년 5월 30일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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