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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강화로 폭력이 줄어들까

<강력범죄, 대책은 무엇인가> 토론회 열려

최근 발생한 강력범죄에 대해 경찰은 ‘성폭력 강력범죄 총력대응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경찰은 적극적인 불심검문 실시를 통해 범죄 발생여건을 봉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사실상 안전과 치안의 공포를 경찰력 강화로 막아 내겠다는 주장이다.

강력범죄 대응에 대한 정부 및 정치권의 주장 또한 경찰의 발표와 그 궤적을 달리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에서는 경찰인력을 두 배 더 확대하여 치안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부에서는 강력처벌 방침을 발표했다. 성범죄자에 대한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대폭 확대, ‘물리적 거세’ 법안 발의, 음란물 유포 및 소지 처벌, 성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성범죄자 형량 강화를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종합 대책은 강력범죄 ․ 성폭력의 발생 원인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 채, 몇 명의 개인을 처벌하고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경찰이 이러한 사회적 논란 속에서 우선적으로 경찰의 권한 확대가 가능한 법안개정을 요구하고 공권력 강화를 이야기하면서 공포정치를 의도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지난 9월 7일 다산인권센터, 수원여성의전화, 아주대글로벌인권센터가 공동주최한 <강력범죄, 대책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강력범죄의 원인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출처: 다산인권센터]

▲ [출처: 다산인권센터]


형벌정책 강화만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

토론회의 첫 발제자로 나선 박진 활동가(다산인권센터)는 발제에 앞서 인권침해 논쟁에 대해 '가해자 인권 vs 피해자 인권'으로 이분화 시키는 것의 위험성을 말했다. 박진 활동가는 “인권은 단 한 번도 가해자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를 두둔하지 않았다. 인권은 가해한 행위자가 아니라 가해한 행위 이후에 그가 속한 ‘피의’라는 다른 영역의 인권의 이야기이다. ‘피의자’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피해자’ 아니라 ‘국가’다. 누군가 어떠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범죄의 처벌에 대해 책임 있는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 현재 국가가 대다수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여 강력한 처벌만을 말하고 정작 인권보호의 주체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문제제기했다.

이어 박진 활동가는 “촛불 든 국민들을 겁박하기 위해 총동원되었던 그 가공할만한 경찰력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보안’경찰에 쏟는 정성에 비해 ‘치안’경찰에 쏟는 정부의 노력 은 어떤 것이 있었는가?” 라며 정부를 질타했다.

정부는 경찰력을 보안 및 정보수집과 같은 시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할 공권력이 거꾸로 시민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바뀐 것이다. 반면 범죄자가 복역기간 동안 피해자 위치서기를 통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성찰하도록 지원해야 할 교정시설을 정부가 나서 민간에 이양하려고 했고, 교정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는 계속 외면해왔다. 결국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은 채 사회적 약자를 억누르고 배제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박진 활동가는 “강력범죄 예방, 피해자 보호라는 근본대책과는 멀어져 가면서 정부는 처벌 강화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강력범죄대책이라며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마련해온 법률적・인권적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다. 치안 논리로 무장한 공포정치는 불안한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의 낙인과 배제, 빈곤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형벌정책만을 강화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사회적 역할은 줄이면서 국가의 필요성만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범죄와 빈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역할은?

또 다른 발제자인 오동석 교수(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정부의 대책에 대해 “즉물적이고 단세포적이며, 무엇보다도 파시즘의 부활이라고 할 만큼 폭력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오 교수는 최근 사건의 피의자들이 사회경제적 곤궁에 처한 빈곤・소외층이라는 점을 주목하며 자살을 통해 사회적 공격성을 내면으로 돌렸던 빈곤층이 외부를 향해 그 증오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한두 개의 답으로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근본적으로 빈곤의 문제와 지역사회의 역할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지역은 구역별로 계급화가 이루어지며, 빈곤층이 거주하는 지역은 강력범죄와 성폭력 발생 빈도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 생존에 쫓겨 사는 사람들은 서로간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의 보살핌과 돌봄은 존재할 수 없다. 돌봄과 보호에서 배제된 이들은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훨씬 높다. 그런데 오히려 돌봄 정책 없이 경찰이 빈곤지역 전체주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고 통제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를 서로 신뢰할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 뿐이다.

오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취약계층 자녀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을 전사회적으로 지키고 보호하는 ‘돌봄 네트워크’”를 제시했다. 또한 취약계층에 대해 “안정된 소득 보장, 그리고 일자리와 함께 양육 및 보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가 고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이웃에 사는 사람끼리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내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가 감시하는 체제가 아니라 서로 얘기하는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빈곤과 범죄의 구조적 원인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권력의 구성과 행사를 지역공동체로부터 재구성해야 함을 강조했다.

경찰력 강화보다 근본적 인식전환이 더 중요해

마지막 발제자인 정유리 활동가(수원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여성폭력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것에 적절히 대처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라는 남성 위주의 이분법적 사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공권력을 통해 그러한 구분을 강화하고,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지배와 통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피해여성이 형사사법절차에서 겪는 2차 피해에 대해 지적하였다.

수원에서 발생한 일명 ‘오원춘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경찰은 여성폭력에 대해 ‘단순 성폭력’이나 ‘부부싸움’으로 치부하거나 ‘보호할만한 피해자’와 ‘당할만한 피해자’로 이분화하고 ‘정조에 관한 죄’로 간주하면서 남성의 시각으로 접근해왔다. 또한 성폭력을 성기 중심으로만 바라보면서 일상적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책도 논하지 않고 심지어 피해자를 경찰이 2차 가해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가 즉각적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이 경찰이기 때문에 “경찰은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 그 선의 밖에 있는 자들, 그래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자들, 진정 경찰이 필요한 자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경찰 역할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부터 시작해야

강력범죄・성폭력 대책에 대한 운동사회의 논의는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빈곤과 성폭력 범죄의 연관성, 빈곤의 심화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미치는 영향, 교정시설의 역할 전환, 경찰력 강화 속 발생되어지는 차별과 배제 등이 그것이다. 원인을 배제한 채 즉각적인 공포감에서 벗어나고자 형벌정책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결국,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아픔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살펴나가야 한다. 더디더라도 말이다.
덧붙임

훈창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