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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2006년 한국사회 인권 현실을 돌아보며

2006년이 저물고 있다. 출범 이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지속한 노무현 정부는 올해 벽두부터 한미동맹 강화만이 살길이라는 식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평택전쟁기지 확대를 카드로 꺼냈고 1년 내내 밀어붙였다. 돌아보면, 올해 한국사회 인권의 현주소는 그 어느 해보다 강화된 미국의 규정력을 제쳐두고 이야기할 수는 없게 되었다.

한미동맹에 짓밟힌 인권

1월 19일 한미정부는 워싱턴에서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주한미군의 활동범위와 역할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붙박이군’에서 동북아, 서남아시아까지 선제공격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확대됐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는 평택미군기지의 확장을 목표로 대추리·도두리 농민들을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아내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3월 6일과 15일, 4월 7일에 걸쳐 대추분교 인도와 농수로 차단을 명목으로 경찰을 앞세운 행정대집행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의도적으로 주민들이 아닌 사회단체 회원들만 골라 연행하면서 ‘외부 불순세력 개입론’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쳤다. 이어 5월 4일에는 대추분교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다. 곧바로 국방부는 미군기지 이전예정지 285만평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철조망을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농사를 지어오던 주민들은 자신의 농지에 출입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마을 진입로에 검문소를 설치해 이른바 ‘외부인’의 출입을 가로막았다. 정부는 협상은커녕 주민들에 대한 고사작전을 지속하고 있고, 김지태 대추리 이장은 실형 2년을 선고받고 차가운 감방 안에 있다.

지난 5월 5일 평택에 투입된 군병력<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지난 5월 5일 평택에 투입된 군병력<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평택전쟁기지 확장이 한미군사동맹의 강화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한미경제동맹의 강화를 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1월 19일 신년연설을 통해 뜬금없이 한미 FTA 체결 필요성을 언급했고 2월 3일 한미 양국은 협상 개시를 전격 선언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협상 과정을 볼 때 한미 FTA는 미국이 지금까지 맺은 FTA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 농업의 파괴, 교육·의료 등 공공서비스 개방을 통한 시장화 등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도 제외되지 않는’ 것이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제주특별자치도 등의 연장선 상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완성을 향해 치닫고 있다.

비정규직 확산, 노동조합 무력화의 제도화

비정규직은 정권 출범 초기인 2003년 784만 명에서 올해 845만 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고 전체 임금노동자의 55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2004년 정부가 비정규직이 받는 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내놓은 기간제법 제정안, 파견법 개정안 등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안이 2년여만인 11월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통과된 법안은 기간제 사용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기간제 사용을 일반화해 상시고용을 원칙으로 하는 노동법의 기본정신을 훼손했다. 또 법안은 2년을 초과하는 기간제 사용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으로 간주하지만 역으로 이는 2년 주기의 대량해고 사태를 만들 것이다. 중간착취를 합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현행 파견법은 폐지되기는커녕 파견대상 업무에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가 추가되어 노동부가 자의적으로 파견대상업무를 무한정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파견노동 2년 초과 시 ‘고용의제’하는 현행법이 위반 시 과태료 부담만 주는 ‘고용의무’로 개악되었다.

비정규직 노동법이 비정규직 확산을 통해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노사관계로드맵’이다. 출범초기 ‘노사관계제도선진화연구위원회’에서 이른바 ‘노사관계로드맵’을 구상한 정부는 올해 9월 민주노총은 배제한 채 한국노총·경총과의 ‘합의’를 통해 전격적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8일 국회 환경노동위 문턱을 넘어 본회의 통과가 임박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은 △부당해고 시 사용자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해 사용자의 ‘해고의 자유’가 대폭 확장됐고 △필수공익사업장의 직권중재는 폐지되지만 파업 시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되어 파업권의 무력화는 여전하며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또다시 3년 유예됐다.

노무현과 민중 사이에는 경찰만 있다

정권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한미 FTA와 평택전쟁기지 확대는 필연적으로 민중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대화와 타협’,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올해는 대화도 타협도 상식도 없었다. 오직 경찰의 물리력으로 민중들의 저항을 봉쇄하는 것만이 정부의 유일한 대응이었다.

하중근 씨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하중근 씨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지난해 11월 여의도 농민대회에서 전용철·홍덕표 농민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고 경찰청장이 물러났지만 올해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경찰폭력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7월 13일 포항건설노조가 불법대체인력 투입을 항의하는 과정에서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을 시작하자 경찰은 2만5천명의 병력을 투입해 음식물 반입을 통제하고 단전·단수조치를 취한 데 이어 16일 열린 평화집회를 사전 경고 없이 침탈해 하중근 조합원을 사망하게 했다. 또 경찰은 2003년 개악된 집시법을 활용하여 집회신고를 자의적으로 금지했으며 8월 16일에는 서울에서 평화적으로 행진하던 상경투쟁단 1천여 명을 전원연행했다. 9월 22일 한미 FTA 4차협상이 제주도에서 시작되자 경찰은 현지 반FTA 집회에 대한 전면적인 금지통고를 단행했다.

이처럼 한미 FTA, 평택전쟁기지건설,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 등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이 경찰을 앞세운 정권의 탄압에 의해 각개격파될 위기에 처하자 운동진영은 11월 22일과 29일, 12월 6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공동으로 열어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진행했다. 이어 몇몇 지역의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사건이 일어나자 정부는 같은 달 24일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고 경찰은 같은 날 9개 사회단체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170여 명을 소환했다. 이어 경찰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예정된 2차 집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경찰차벽으로 광장을 에워싸고 전국 1252곳에 경찰 1만3555명을 배치해 상경차량을 차단해 원천봉쇄했다. 또 농민회 간부들을 경찰버스나 농민회 사무실에 감금해 집회 참여를 막기도 했다.

한편으로 정부는 올해 1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평화적 집회시위문화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 △평화시위 정착 캠페인 △평화시위를 위한 사회적 협약체결 △시위주동자 형벌 상향조정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민사상 배상청구 실시 등 회유와 협박을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책을 쏟아냈다. 이 위원회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외양을 띠었지만 그 운영은 경찰청이 주도했으며 발표 내용 또한 경찰의 오랜 숙원사업을 성취해 주는 것이었다. 경찰은 1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앞둔 11월 7일 ‘도심집회금지’를 공식선언하면서 “시민들의 불편과 교통체증 때문에 집회시위의 자유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쟁점화시키면서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했다. 이처럼 정부는 집회의 결과적 외양을 ‘평화시위’와 ‘폭력시위’로 나눔으로써 자신의 입맛에 맞거나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집회는 용인·장려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강력한 처벌을 통해 배제하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시키려 애쓰고 있다.

경찰의 원천봉쇄에 항의하며 11월 30일 한미FTA저지범국본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경찰의 원천봉쇄에 항의하며 11월 30일 한미FTA저지범국본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차별과 편견을 넘어 한걸음 내딛은 소수자들

한편, 올해 주목할 만한 또다른 인권상황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경남 함안의 한 중증장애인이 방 안에서 보일러가 터졌는데도 움직일 수 없어 얼어죽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촉발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요구는 서울·대구·인천·충북·울산·경기 등 전국으로 확대됐다. 장애인들은 노숙농성·단식농성·집단삭발과 함께 한강대교를 기어서 건너는 투쟁까지 벌인 끝에 결국 지자체로부터 활동보조인을 장애인의 권리로 인정받았고 조례를 통한 제도화와 예산지원을 약속받았다. 이어 대정부 투쟁을 통해 장애유형이나 연령,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당사자의 필요에 따른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법률을 제정하고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고, 현재 자부담폐지와 생활시간 보장을 위한 예산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제정된 지 30년이 지난 특수교육진흥법을 대체할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지난 5월 국회의원 229명 공동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장애인시설 등 사회복지법인의 이사회에 공익이사제를 도입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도 발의되었지만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회복지시설장들의 강력한 반대와 맞설 참이다.

학교는 체벌, 두발규제 등 각종 용의복장규정에 따른 일상적 검열과 단속, 소지품검사와 야간강제학습 등 교육이라는 이름의 강압과 폭력이 여전하다. 올해 초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은 정기 인권실태조사, 인권교육 실시 등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교육당국의 책임을 명시했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학생들은 두발자유, 학생인권법 통과를 요구하며 5월 청소년인권행동의날, 6월 거리행진, 8월 전국행진을 진행하며 청소년 당사자의 힘을 결집했다.

한편, 올해는 그동안 감시와 통제의 대상일 뿐이었던 HIV/AIDS 감염인들이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한해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감염인들과 인권단체들이 연대한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은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을 통해 △피검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검사 금지 △익명검사가 가능함을 사전고지 △역학조사를 통한 실명파악 △신고보고 체계를 요구했다. 이들은 증언대회·거리캠페인을 통해 감염인을 죽이는 것은 에이즈가 아니라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차별임을 강조했다.

성소수자들, 특히 성전환자들의 성별변경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됐다. 대법원은 6월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린 데 이어 9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마련했지만 △성전환수술을 받은 경우 △만20세 이상인 경우 △혼인한 사실이 없는 경우 △자녀가 없는 경우 등으로 제한해 성전환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4월 발족한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는 특별법을 통해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성전환자의 생애에서 차별과 빈곤, 사회적 배제의 실태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보고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경제논리에 가로막힌 차별금지법

일부 소수자운동의 약진과 제도개선안 마련에도 불구하고 차별 현실을 총체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차별금지법은 재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악의적 차별에 대한 특별배상금 △증명책임 전환제도 등을 골자로 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재계가 특수고용·파견·사내하청 등 직접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노동자도 ‘근로자’의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 기업부담을 가중시키고 경영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라며 반대한 이래 법제정 흐름 자체가 없다. 마찬가지로 장애인 운동진영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재계와 보수언론의 반발에 직면했다. 최근 당정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나 열린우리당의 분열과 정계개편 움직임, 내년 대선까지의 정치일정으로 볼 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악법과 함께 정쟁으로 잠자는 국회

여야의 정쟁으로 국회가 연이어 파행을 맞는 가운데 반인권·반민주악법은 건재한 반면 인권옹호 입법 실적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2005년 국회 법사위에 상정된 국가보안법은 개폐 논의조차 중단되었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면서 최근 이른바 ‘일심회 사건’ 등과 같은 공안흐름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사형은 1997년 이후 집행되지 않았지만 사형제도는 폐지되지 않았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살인, 고문과 이를 은폐·방해하는 행위 등 반인권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입법도 국회 안에서 잠자고 있다. 시민의 재판참여를 보장하는 국민참여 배심제와 조서재판을 지양하는 공판중심제 등 사법의 민주적 통제에 한손을 보탤 이른바 ‘사법개혁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월 유엔자유권위원회가 한국정부 보고서를 심의한 후 채택한 최종견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규약위반이라고 밝혔음에도 병역거부자는 여전히 형사처벌 되고 있고 병역법 개정안도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대로라면 개혁국회를 자임한 17대 국회는 사회보호법 폐지 이후 별다른 악법 개폐나 인권옹호 입법 없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올해 우리 사회 인권의 시계 바늘은 거꾸로 가고 있다. 2003년 대통령이 된 ‘인권변호사’에게 집권 말기인 2006년은 ‘반인권 대통령’이라는 자신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자본의 이권을 보장하기 위해 인권 대신 자유무역협정을 선택한 대통령은 저항하는 민중들을 위협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자유권 부문의 일부 진전까지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돌아보면 그 동안의 일부 진전도 군사독재와 자신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적 제스쳐였을 뿐이었다. 남루해진 인권현실을 안고 2007년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이 싸움을 다시 준비한다. 민중들은 싸움을 통해서만 자신의 인권을 쟁취해낼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