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지지리도 추웠고 해는 그 날따라 유난히 빨리 지는 것 같았다. 6시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늘에는 벌써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잔뜩 웅크리고 앉아 시청 앞 잔디광장을 마음껏 모독하며 집회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뒤에서부터 술렁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멀리서 무언가 불빛이 허공을 가르는 것이 보였다. 불빛만이 아니었다. 긴 장대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앞에서는 아직 집회가 채 끝나지 않아 전농 문경식 의장이 투쟁결의문을 낭독하고 있었지만 뒤에서는 농민들이 이미 투쟁을 ‘실천’하고 있었다. 집회는 곧 정리가 되었고, 농민들이 싸움에서 사용하던 대나무 깃대가 갈래갈래 갈라졌을 때에는 이미 농민들과 전경들이 밀거니 당기거니를 몇 차례 하고 난 후였다. 끝이 갈라진 대나무 깃대는 이제 더 이상 ‘무기’가 아니라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전경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방패를 휘두르며 농민 대오를 침탈했고 손에 피를 묻혔다. 그것도 모자라 물대포를 집회 참가자들에게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 날 뉴스 일기예보에서는 체감온도가 0도까지 떨어졌다고 했다던가? 전경들의 서슬퍼런 방패와 물대포 앞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들은 피흘리며 쓰러졌다.
안타까웠던 점은, 대나무 깃대를 든 농민들 편에 서있었으면서도 그들이 몇 겹의 버스로 쳐놓은 바리케이트를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대나무 깃대를 들었다고는 하지만 완전무장을 한 전경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농민들과 전경들의 전선이 가끔씩 밀거니 당기거니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마저도 전경들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참다 못한 몇몇 농민들이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 역시 무모하게 보인 것이 사실이다. 투석을 시위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기 보다, 오히려 전경이 던진 돌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한 사진기자만이 투석의 가장 큰 희생자인 듯 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게 이런 것일까?
전체 대오가 모두 그 싸움으로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싸우는 사람들마저 그다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 듯한 상황에서 누군가 안타까운 마음에 “농민들만 피흘리게 되는 싸움의 목적”을 물어왔다. 전경들이 설치한 몇 겹의 바리케이트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보일 때, 무모하게 그것을 넘고자 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까, 끈질기게 ‘삽질’을 해서 결국 산을 옮기고 말았다는 ‘우공이산의 지혜’를 떠올려야 할까. 그러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어느새 ‘집회의 본질’에 다다르고 있었다.
집회의 목적은 뭘까? 우리는 왜 집회를 하고, 때때로 집회에서 피까지 흘릴까? 화제는 또다시 ‘비폭력’으로 옮아갔다. ‘비폭력’에 대한 개념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었다. 각각의 사람들이 각각의 ‘비폭력’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폭력’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점 중의 하나는 ‘비폭력’이 ‘반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비폭력’은 대항폭력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한 ‘비폭력’은 무자비한 국가의 물리적 폭력에 대항하는 ‘물리적 수단’의 의미로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 대화’, ‘비폭력 관계’ 등의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과연 비폭력이 정당한 것일까? 어디까지의 ‘비폭력’이 우리에게 의미있을 수 있을까? 비폭력적 관계는 비폭력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일까? 등등…
집회 등의 행사에서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집회나 폭력시위의 현장에서 인권운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할까? 인권운동사랑방은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 등등…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미처 답을 내릴 새도 없이 우리는 ‘전태일 정신 계승 2004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리는 동국대로 가기 위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