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처음 들었을 땐 참 힘들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마땅치 않은 내가 수술을 해야 하다니...”
“하반기부턴 인권하루소식 편집장도 해야 하는데…” “들어둔 보험은 암보험 뿐이라서 아무 소용도 없고… 가족들은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가 수술까지 하다니 하고) 얼마나 걱정할까” 어깨가 축 처지는 2주 정도를 지내고 난 이후 수술을 결심했다. 돈도, 시간도, 돌봐줄 사람도 뭐 어떻게 되겠지, 암은 아니라고 하잖아 하는 심정으로. 자궁 속에 있는 크고 작은 혹을 떼어내는 나의 수술은 잘 끝났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너무 추웠다는 걸 빼곤, 현대의학의 무통 치료는 가히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일을 두고 침대에 누워 있는 마음은 자꾸 불안해지기만 했다. 나는 퇴원하고 1주일 정도 어머니에게서 요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1주일 정도 쉰 후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쉴 동안 최대한 많은 책을 볼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빈혈로 인해 식욕이 떨어지고, 30분 동안의 가벼운 운동으로도 쉽게 피곤해져 2시간이 넘게 잠을 자야 하는 나의 상태는 그렇게 쉽게 정상생활로 복귀하기 힘들다는 걸 알려 주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하루소식은 어쩌지?” “알바도 찾아야 하는데…” 답은 별로 없었다. 내 몸이지만 내 능력 밖에 있었고, 내 몸이 원하는 걸 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낙천주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림도 없이, 특히 분노 없이 사는 건 정말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찾던 평화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낙천주의가 정점이었을 땐 심지어 로또를 사기도 했다. 이번 주에 내가 당첨되는 줄 알고! 물론 꽝이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조용히 있을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이 기본권에 속한다는 것을 이번에 실감했다. 우린 모두 혼자 조용히 휴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권리를 누리고 사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혼자 있을 권리'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주어져도 누리지 못한다. 우리 활동가들이 특히 그렇다. 항상 산적해 있는 인권 현안들이 밤낮으로 우리를 내몰아치는 환경이 그렇다. 거기다 우리가 배우고 습득한 문화가 항상 ‘빡빡한 일정’을 당연하게 여긴다. 게다가 인권운동은 얼마나 분노를 동반한 업무인가! ‘반인권’에 대한 분노는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 조직력으로 치환되는 것을 우리는 무수히 경험해 왔다.
나와 절친한 후배도 지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나보다 훨씬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그녀는 지역 주민회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다. 그의 오빠도 부안에서 농민운동에 주력해 왔던 나와는 지인이다. 그녀의 수술을 하루 앞둔 저녁, 병실에서 우연히 만난 이 부안 농민은 나의 안부를 물으면서 요즘 활동가들을 보면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평생을 쏟아야 할 에너지를 한 10년 만에 다 쏟아 붓는 것” 같다고. “정아 씨, 운동 평생 할 건데 건강해야 되요” 그는 결코 나의 건강만을 걱정하는 게 아닐 것이다. 내일 아침 수술을 앞둔 그의 동생에 대한 염려는 물론 현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있는 모든 활동가들에 대한 간절한 희망일 것이다.
병가 기간 동안 나의 업무를 대신해 주고 염려를 아끼지 않았던 동료 활동가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 건강을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모두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