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느 때보다 참 길게 느껴지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습니다. 작년에도 이명박 정부의 인권 후퇴 조치가 있었지만 그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힘, 아우성, 외침이 그만큼 컸기에 그래도 견딜만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더 잔인한 폭력이 용산에서, 평택 쌍용차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덜 들리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모든 싸움이 다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운동을 한지 만 20년이 다 된 저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몸으로는 여전히 바뀌는 게 쉽지 않다는 그 사실에 아파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참 많이 놀랐습니다. 사회의 모든 억압과 차별과 편견의 잘못된 관행이 한꺼번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요.
아직도 저는 쌍용차 진압 사진을 보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답니다. 맞고 있는 그의 가족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맞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죽고 싶겠지, 억울하겠지, 비참하겠지, 그가 살아온 역사에서 어떤 상처로 남을까 등등이 마음에 새겨져 견딜 수가 없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경찰이라지만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왜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저 몽둥이가, 한사람의 시위자에 수명의 경찰이 달려드는 게 보이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이 함께 떠오릅니다. 사람의 심성을 바꾸는 권력과 구조에 대해 더 답답해진답니다.
며칠 전 인천에서 인권영화제가 열려 갔습니다. 서로의 마음도 전할 겸, 인권영화도 볼 겸 해서 말입니다. 올해 5월 청계광장에서는 선보이지 않은 영화가 있어 몇 편을 보았습니다. 그중 한 편은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을 담은 영화 <검은 명찰>이었습니다. 검은 명찰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기 위한 명찰(정규직은 하얀 명찰이랍니다.)이었고 그러한 구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존감을 잃기 바라는 회사측의 계략이 담겨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GM 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권위 진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어떻겠냐고 해서 인사를 했지요. 그런데 마음 속에서는 '인권영화를 보러 왔는데, 여기서도 또 일을 해야 되나? 나는 GM 비정규직 싸움을 함께 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얘기를 하지'라는 생각이 고개 들어 대충 인사하고 이야기를 마쳤지요.
그리고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에서 그려진 그들의 처절한 투쟁, 차별적인 조치들을 보며 왜 그들이 저 꼭대기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아직도 인천 대우 부평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느낄 수 있었지요.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왔습니다. "기륭도 그렇고 비정규직 싸움은 최소 2년 이상은 걸린다"고. 싸우고 있는 그들도 압니다.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승산이 있든, 없든 이 억울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조건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싸운다고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반성했습니다. 내가 GM 대우 상황을 잘 모른다고, 그동안 함께 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나는 단정하였구나라는 반성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싸움이 힘들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싸움이 많지만 싸움을 끝낼 이유가 될 수 없구나, 나마저, 우리마저 지친다면 안 되겠구나하는 깨달음도 함께 주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우리 사회의 아픔을 모르고 '외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르는 사안은 모른다는 이유로 어쩌면 '외면'을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많은 인권침해 현실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길 바랍니다. (사실 고통의 현장을 목격한다는 것, 직시한다는 것은 참 심리적으로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특히 저처럼 눈물 많은 사람은 더욱 그렇겠지요.) 그래야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고 하게 됩니다. 저도 그 후 바로 GM 대우 비정규직 후원에 가입하였답니다. 한 달에 만원이라는 작은 돈이지만 그게 그이들을 힘내게 하고, 그이들이 힘내서 싸우는 모습을 응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에 GM 대우 비정규직 집회에 한번 참석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 4시 인천 부평공장 앞에서 열린다고 하니 시간되시는 분은 함께 가요^^)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