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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연대’가 아름답고 쓸쓸하게 그려진 「자기 앞의 생」을 읽고 - 최은아(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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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두고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논산에 살고 있는 후배를 만나러 고속터미널에 갔다가 표가 없어서 되돌아 왔다. 집으로 가기는 싫어서 집 근처 도서관(실은 마을문고에 가깝다)에 갔다가 한 책을 만났다. 아밀 아자르가 쓴 「자기 앞의 생」. 남산이 보이는 창이 넓은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다가 책을 읽다가를 반복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여유를 느꼈다.(2시간 후 나는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의 집시법 개정 땜시 사무실로 갔다. 정말 휴일 앞두고 일 벌리는 사람들이 싫다.) 설 연휴 동안 나는 자기 앞의 생을 끼고 살았던 것 같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를 묻는 주인공 모모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그 질문이 내게서 떠나지 않은 채로 난 모모와 로자 아줌마가 맺는 관계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부모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모모는 버려진 아이이다. 로자 아줌마는 모모처럼 버려진 아이를 임시로 돌보는 사람이다. 이 둘은 이른바 천류에 의해 맺어진 부모자식 관계는 아니다. 돈을 매개로 이루어진 관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로 돌봄을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연대’가 아름답고 쓸쓸하게 그려진다. 사실, 소설이라 아름답고 쓸쓸한 것이지 그런 관계가 현실에서 벌어진다고 할 때 인간의 애착과 집착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끔찍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글로 만들어준 아밀 아자르에게 고맙다. 덕분에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위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모가 갓난장이 아이였을 때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돌본다. 로자 아줌마가 치매에 걸린 후로 모모는 어린 소년이지만 로자 아줌마를 돌본다. 만약 주변에 로자 아줌마의 병명이 드러나면 100% 시설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영리한 모모는 알고 있으므로, 철저히 비밀로 한 채 아줌마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모는 그녀를 돌본다. 집에서 내 일상 중 하나는 엄마를 돌보는 일이다. 엄마는 5년 전 뇌출혈로 2급 뇌병변 장애인이 되었다.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혹은 공휴일 아빠랑 같이 엄마를 돌보면서 엄마를 돌보는 일이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사무실에서 자정을 훨씬 넘어 퇴근해도 해야 되는 가사 노동은 내게 그저 해야 할 일이고, 휴일 놀러가고 싶어도 엄마가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집으로 향해야 한다. 그래서 하기 싫은 적이 훨씬 많았다. 스스로 짜증도 많이 냈다. 이렇듯 나의 비루한 일상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떤 소설가는 아름다운 인간의 연대로 그려낼 수 있다니..... 아! 소설의 힘은 위대하다. 새해 들어, 나는 스스로 약속 한 것이 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와 함께 보내는 일상을 밀도 있게 보내고 싶다는 약속. 그리하여, 주말에 엄마와 함께 책읽기를 하고 있다. 첫 번째 선택한 책은 신경숙 씨가 쓴 「엄마를 부탁해」이다. 함께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엄마도 행복감을 느꼈다. 「자기 앞의 생」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흔히 배제되고 소외된 밑바닥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맺는 관계는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나름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아밀 아자르가 이런 인간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에서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배경이 소설의 밑천이 되지 않았나 싶다. 소설 끝자락에 모모는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 사랑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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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