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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강


9월에는 ‘내 인생의 강’을 아그대다그대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똥물이지만 어렸을 때 금강은 멱 감을 정돈 되었어요.

강어귀에 영미라는 친구가 살았는데
그 친구랑 강 건너편까지 헤엄쳐 가 수박 서리 해왔던 일이 생각나네요.
스무 살 넘어 그런 추억(?)을 더듬으며 금강을 다시 찾았다가
동네 개들이 에워싸는 바람에 주기도문 수십 번 외우며 탈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길 을 열어준 개들에게 자비를. 지금은 고향도 금강도 다 사라질 판이라 씁쓸합니다.
녹우

1) 어렸을 때 동네 개천에서 물놀이도 하고 그랬었는데,
어느 날 하천부지 공사를 하더니 가운데 쫄쫄 흐르는 도랑이 되어버린,
뭔가 이상했던 기억.

2) 그보다는 조금 컸을 때,
한강물에서 놀다가 며칠 동안 몸에서 초록빛 광택이 났던 '향긋한' 기억.
한강 한가운데 물에 들어갔을 때 내 발 밑에‘정말로' 아무 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몸이 얼어붙고 그대로 물에 빠져 허우적댔던 공포스런 기억.
아해



4대강 사업에 대해 딴지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확 가지 않는 무언가 결계(?) 같은 게 있는 것 같아 고민했었던 적이 있어요.
근데 그게 강에 대한 내 기억이 이미 한강이라는 정비된,
인위적인 강에 한정되어 있는 것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어린 시절 한강으로 소풍가면
정리되지 않은 수풀 사이로 돗자리를 깔고 부르스타를 켜고 고기를 구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런 곳은 이제 아예 없죠. 오랜만에 갔던 한강은
한강르네상스니 어쩌고 해서 그나마 있던 자연스러운 공간들이 다 밀리고
화려한 조명 속에 정비된 도로로 바뀌어있더군요.
뭔가 씁쓸한 게 스물스물 올라왔지만
저에겐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 뭔가 숭숭하고 민망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강은 어쩌죠?


어렸을 때 살던 마을 가까운 곳에 강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강'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크기인데..ㅎㅎ
그래도 모래밭도 넓었고 여름이면 친구들과 물놀이며 물고기 잡기며 하면서 뛰어 놀았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흔하게 잡던 붕어, 꾸구리, 빠가사리 등이 요즘 보니 몇몇 놈들은 놀랍게도 희귀어종이 되었더군요.
세상이 변하긴 변했나봅니다.
그리고 국민학교 6년 내내 소풍 때마다 강가 모래밭에 가서 이런저런 놀이도 하고 그랬어요.
간혹 강가 큰 나뭇 가지엔 마을 주민들이 매어 놓은 높은 그네도 있었고,
할배 할매 아저씨 아줌마들이 모여 마을 잔치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라에서 '영주댐'을 만든다 어쩐다,
주민들은 반대한다 어쩐다 하더라고요.
시골의 작은 하천도 어김없이 정부의 4대강 공사를 피해갈 순 없었나봅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마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빼앗긴 기분이랄까요...
그 강이 한강처럼 말쑥하게 변한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네요.
돌진

서울내기라 그런지 '강'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강'하면 떠오르는 것은 한강과 놀러갔을 때 보았던 섬진강 정도에요.
20대에 아침 일찍 버스가 한강다리를 지날 때면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앞을 알 수 없는, 그래서 도무지 안정이 되지 않았던 20대의 내 마음과 한데 뒤엉켰던 기억이 나네요.
안개의 아득함은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고 한편으로는 우울한 낭만을 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섬진강이에요.
맑고 고요하게 흐르는 강을 보면서 '아~강이 저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바닥에 동글동글하게 자리 잡은 돌들과 빛에 반짝이는 모래를 보며
'이런 곳에 살면 사람들 마음이 참 맑겠구나'라는 생각에 그
동네 사람들을 부러워했지요.
바람소리

아, 강이 없는 섬에서 자란 나에게 내 인생의 강이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으앙, 내일 쓰면 안 될까? ㅜ,ㅜ)
여기까지 써두고 4대강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다녀왔어요.
최근 <나는 반대한다>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던 김정욱 교수의 강연이었어요.
소문에 강연이 포복절도라더군요. 역시나 그랬습니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었어요.
강연을 들으면서 '강'에 대한 얼마 안 되는 기억들이 제 안에서 꿈틀대더라고요.

서울 올라온 이후 동강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어요.
절벽을 휘어감으며 물이 흐르고 잔잔하게 깔린 강가 모래밭을 따라 걷고 또 걸었지요.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려 하늘로 뻗어가는 나무들이 물 안에 풍덩 담겨있었지요.
맑고 고운 물이 곡선의 부드러움이 겨울 시린 공기를 녹여내는 것 같았어요.

몇 년 전에는 섬진강을 따라 걸었어요. 길을 잘못 들어 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도,
다시 돌아가기도 곤란한 상황이 됐지요. 바지를 걷어 버렸어요.
물살이 빠르지 않을 것 같은, 갑자기 깊어지지 않을 것 같은 곳을 고르고 또 골라서 건넜어요.
아무리 그래도 허벅지까지 물이 차오를 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투명한 목소리로 쫑알쫑알대는 물이 왠지 나를 토닥여주는 것 같았어요.
넌 건널 수 있어.
부대끼는 마음을 들고 찾았던 강이 그렇게 얘기해줬던 거죠.
넌 할 수 있어. 큰 위로를 받고 돌아왔던 기억입니다.

이렇게 기억을 건져 올리는 동안에도 매일같이 보는 한'강'의 기억은 따라오지를 않아요.
그게 4대강사업을 막아야 하는 이유일까요?
그게, 강이 직선으로 흐르든 양 옆을 막은 콘크리트 제방에서 꾸역꾸역 흐르든 상관없이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이유일까요?
저한테 강은 여행이나 휴식과 같이,
뭔가 일상과는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이더라고요.
혹시 그래서 오히려 내가 쉽게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강을 일상에 끼고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는 것도 아닌데.
저는, 아직까지는, 아무리 자기 먹고 사는 게 우선이고
그래서 모든 욕심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눈 앞에 분명히 보이는 생태의 파괴에 찬성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 믿거든요.
북한산에 불을 질러 나무를 싸그리 없애고 공원으로 만들자고 하면 다들 미쳤다 하겠죠.
그런데 4대강에서 파괴되는 생명을 느끼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본다'고 말하기 어렵고요.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그 강이 어떻게 될지를.
십 년을 내다보기도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종이 백 년을 거쳐 가며 모조리 망가져갈 생태계를 볼 수 있을까요?
고작 눈 앞에 펼쳐지는 만큼만 볼 수 있는 우리가 구비구비 흘러가지 못하는 강의 신음을 들을 수 있을까요?
매일같이 한강을 보고 다니면서도 그 신음소리를 못 들어왔는데.
강이 흐르는 모습을 한 눈에 담으려면 결국 사진이 될 뿐이고,
그 안에서 풍경일 뿐인 강은 전시물이 되고. ... 어렵더라고요. ...
어떻게 강이 흐르게 할 수 있을까요?

돌아와 책을 펼치니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왜 강을 파괴하면 안 되는 건가?' 여기에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말 또한
'안 되니까 안 된다'이다."
우리가 4대강 사업을 알수록 할 수 있는 말은,
안되니까 안 된다, 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강연은 아주 좋았고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권하고 싶어요.
책의 앞부분에는 빈 페이지에 이 한 문장이 적혀있어요.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전 그 사람이 자기 삶을 걸고 말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팔당으로 전체엠티를 갔다가 농사짓는 두 농민 분의 얘기를 들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게,
내 인생의 강이겠지요.
미류

지금이야 차가 다니는 도로가 주요 운송수단이지만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강 길이라고 하네.
계절마다 강수량의 많은 차이가 나는 이 나라에서 뱃 길이라니.. 신기해. 또 화강암지대라 물이 맑아서 어디서 물을 먹을 수 있었다지.
그런데 근대화와 함께 전염병이 발생하고
이에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상수도 시설을 요구하게 되는데
조선인 또한 이 광경을 보고 주민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는 이야기가 떠오르네.
요즘에는 한강변 주거지역이 아주 좋은 조망권을 가진 곳이라 값이 치솟았지만,
예전에는 만날 물난리에 빈자들만 우글거렸데 특히 한강 하류 쪽은 똥이 떠내려 올 정도로 별로였데.
이때 땅을 좀 사놓는 건데...ㅋ

앞으로 강을 끼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찌 변할지 궁금해.
나는 4대강 사업을 왜 반대해야하는지 온전히 알지 못해. 어렵더라구...
그런데 강의 수위가 높아져 양평의 두물머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하니 슬프네...
계속 왜 요강이 떠오른댜~
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