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맏이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간절한 소망 하나가 있었으니, ‘나에게도 언니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데 언니가 있는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둘째가 겪는 서러움을 얘기하면서 오히려 맏이인 나를 부러워했다. 어찌되었건, 인간들은 자신에게 결핍이라고 느끼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언니라는 존재는 조금은 내가 기댈 수 있고, 내가 쫌 잘못해도 너그럽게 나를 수용해줄 수 있으며, 실컷 누군가를 뒷담화 하거나 슬며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 맨 처음 찾는 사람인 것 같다. 이러한 관계에 위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차이가 때로는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은 인간관계에서 위계나 권력 등 고정화된 사회관계로부터 대안의 삶을 고민한다. 평등한 관계 속에서 활동가들 사이에 파트너십을 형성하면서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이다. 그렇다보니,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호칭을 사용할 때도 00 씨 하거나 이름, 별명을 부르기도 한다. 난 이러한 평등한 관계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최근 어떤 사건을 경험하면서, 나에게도 언니가 필요하고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나는 한 달에 한번 엄마 약을 타기 위해 00병원을 찾는다. 혈압 및 배변관리와 신경통증 관련해서 엄마는 약을 먹고 있다. 내가 병원에 간 날 하필이면 엄마 담당 재활의학과 의사는 긴급한 회의로 인해 자리에 없었다. 대신 전공의가 나를 맞이했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한 후에 한 달 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새로 약을 받아든 엄마는 “왜 이렇게 약이 많니?”라고 질문했고, 나는 약간 귀찮아서 “알아서 줬겠지.”라고 간단히 답했다. 문제는 3일 후부터 발생했다. 엄마는 이틀 동안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며 이상증세를 호소했다. 엄마가 먹었던 음식을 살피던 중 엄마 약에 배변을 촉진하는 약이 2개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병원과 실랑이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도 상했고 엄마의 호소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날 어리버리하게 거리를 해매고 있다가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나를 툭 쳤다. “여기서 뭐해?” 인권운동연구소 창에서 일하는 은숙(인권연구소가 독립하기 전에 인권운동사랑방에서 같이 일했다) 언니가 나를 정신 차리도록 자극했다. 언니는 해장을 하자며, 가까운 음식점에 들어가 동태찌개를 시켰다. 동태찌개를 마주하고 이집 젓갈이 맛있다며 호호~ 웃었다. 나는 정신줄 놓고 거리를 해맨 사연-병원과의 한바탕-을 얘기했고, 언니는 병원 전산 처리가 가끔 그런 사고를 발생시키기도 하고, 배변촉진 약이어서 그나마 다른 부작용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아! 그 순간, 묘하게도 “나에게는 언니가 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병원이라는 권력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든든함이 생겼다고나 할까! 한동안 정신 줄 놓았던 나의 신경은 동태찌개의 맛을 음미할 정도로 돌아왔다. “나에게도 언니가 있다.”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