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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익숙한 것과의 결별

홈에버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 이랜드 계열의 유통매장이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비정규직 철폐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외치며 십수일을 점거하여 파업을 벌이던 투쟁현장이다. 점거파업이 시작되고 며칠되지 않아 경찰은 버스 수십여대로 출입구를 봉쇄하여 파업중인 노동자들을 고립시켰고, 7월 20일 오전, 매장주변에서 밤을 꼬박 샌 연대 대오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집과 일터로 떠난 후, 병력 71개 중대 7000여명을 동원하여 그 비대칭적인 물리력으로 점거 파업장을 침탈, 168명의 노동자를 연행하였다.

그렇다. 우리에겐 익숙한 일이다. 익숙한 일이기에 미리 점쳐졌고, 익숙한 일이기에 단지 ‘언제냐’의 문제였다. 한편, 이랜드 그룹 회장인 박성수를 국가가 부당노동행위로, 노동권 침해자로 연행할 것이라고 예상하기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너무 낯선 것이었다.

건강을 내주면서 고된 노동을 견디며 월 80만원의 임금을 받고 일하던 노동자들을 계약해지하는 회사에 맞서 인간답게 살기위해 맨바닥에서 십수일을 지내며 힘든 시간들과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있는 매장 주변을 에워싸 봉쇄하던 경찰 버스에 적혀있는 “국민이 힘들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는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을 연출하며 작렬하는 땡볕아래 빨래줄에 걸린 색깔옷 마냥 선명하게 “여기 적힌 국민은 너희가 아니야! 몰랐어?”라고 외치며 펄럭인다.


국가에게 있어서 힘들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친구가 되고 싶은 국민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 같은 이들. 우리는 이들을 자본가라고 부른다. 노동자들이 생존을 걸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자본가 박성수 또한 곤혹스러운 7월을 보내고 있었다. 유통매장 중 최대매출을 자랑하는 홈에버 상암점은 십수일째 영업이 완전 중단된 상태고, 여론은 노동자에게 호의적이었다. 이대로 점거파업이 계속 되다가는 극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을 지경이었다. 노동자도 힘들고 자본가도 힘들 때, 그리고 이 힘든 상황이 서로의 충돌에 기인하는 것일 때 국가는 어느 편에 서는가? 자본과 노동자가 대립할 때 국가는 폭력을 동원하여 노동자를 짓밟는 일관된 입장을 취해왔고, 이는 세계 자본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그 잔혹한 예들을 모두 열거하기 위해서는 지금 들고 있는 [사람사랑] 소식지가 100킬로그램 쯤은 되야 할 것이다.

월드컵 때 축구를 보며 “대~한민국”을 외치며 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그래, 우리 대한민국은 하나야”라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축구가 끝난 뒤에도 국민은 여전히 하나인가? 귀가길, 타워팰리스의 엘리베이트에 몸을 싣는 그와 반지하 방 계단을 내려가는 그는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운명을 같이하는가? 다음날 출근하여 80만원 월급봉투를 쥐는 노동자와 130억을 교회에 헌납하는 자본가는 단일한 국민인가? 각종 경제지표의 고공행진 속에 모든 국민의 삶도 하늘을 날고 있는가? 국가가 “힘들때 내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가 되어줄께”라고 하는 이와 “힘들때 더욱 더 밟아줄께”라고 하는 이는 국민이라는 단일한 범주로 묶일 수 있는가?

일상의 삶에서, 일터에서 운명을 같이하고 정책의 변화에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와 같이 빼앗기는 자가 누구이며, 나와 내 이웃들로부터 빼앗고, 우리가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자본과 국가의 끊임없는 작업으로 인해 분절되고 흐려져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계급이라고 부른다.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

익숙하고도 지긋지긋한 자본과 국가의 계급적 폭력과 결별을 준비할 때이다. 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계급적 연대와 실천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지금 이랜드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은폐되어 있던 자본과 국가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기억하자. 계급적 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