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힘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둘은 달라요. 체조하는 사람들이 힘으로 무게중심을 잡겠어요?"
저는 요즘 무게중심 잡기를 몸으로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 1월부터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사랑방 사무실이 명륜동에 있을 때는 가까운 구민생활관에서 수영을 배웠는데 그때 구민생활관 입구에 유도 강좌를 시작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은 적 있어요.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
그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저녁 시간에만 해서 신청할 수는 없었는데 뭔가 긴 여운을 남겼더랬죠. 그 말이 내 안에 머물러 있다가 올해 집 가까운 곳의 유도관을 알게 되어 저질렀답니다. 으... 쫌 무서워...
음하하, 제가 잘한다고 칭찬(격려? ^^;)도 많이 듣지만 아직까지 유도를 배우는 게 무섭기는 해요. 처음에는 연습할 때마다 여기저기 멍들고, 아, 봄에는 왼쪽 허벅지 뒤가 시퍼렇게 멍들어서 오래 고생한 적도 있지요. 수영과는 확실히 다르죠. 몸의 근육을 바짝 긴장시키고 연습을 하고나면 ‘땅겨서’ 걷기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매력을 느끼게 된답니다. 플래카드에 붙어있듯이, 유도의 철학은 ‘유능제강’이예요. 아직 잘 모르겠기는 하지만 유능제강의 철학은 유도의 기술들로 이어져요. 상대를 기울여서 무게중심을 흔들고 순간적으로 내 몸을 지렛대 삼아서 메치는 거죠. 이때 자기 몸의 무게중심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해요. 내가 흔들리거나 불안정하면 메치기는커녕 오히려 당할 수 있거든요.
무술 혹은 무도 같은 것들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세상과 싸우는 거니까 ‘싸울’ 줄 알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힘으로 우격다짐하는 것과는 달라야겠죠? 우리의 운동은, 파괴를 위한 힘을 키우기보다는 이 구조의 불안정함을 노려 우리의 무게중심으로 세상을 세우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불안정함은 우연한 계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기회를 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무게중심을 잡는 법을 익히고 기술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그 ‘기술’은 현재의 구조를 무너뜨릴 지점을 흔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할 테고 ‘무게중심’은 스스로 대안적인 구조를 예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어설픈 유도로 그려보는 운동의 상입니다.
얼마 전 자유 연습(실제로 시합하는 것처럼 겨루는 것)을 하는데 사범님이 시작하기 전에 몸 다치지 않게 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이렇게 말해요. “상대가 기술을 잘 걸어오면 낙법을 잘 해서 떨어지세요.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야말로 미련한 유도죠.” 문득 내가 그동안 참 미련한 유도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익히기를 할 때의 느낌은 모두 사라진 채 안 떨어져보려고 몸에 힘만 주고 있었죠. 부드러움으로 능히 강함을 제압한다더니, 이거 결국 힘 싸움 아냐? 이런 생각만 했더랬죠. 사범님 얘기를 듣고 보니 익히기도 부족했겠지만 그나마도 기억하지 못하는 몸으로 어설프게 기울이고, 끝까지 넘기는 끈기도 없이 알아서 물러나곤 했더라는 거죠.
떨어지는 건 무서운 일이예요. 낙법을 열심히 익혀도 두려움이 남겠죠? 왜냐하면 떨어지는 건 싫은 일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떨어지는 것, 그걸 익힐 수 있다면,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아마 유도를 배운 게 정말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아요. 부드럽게, 몸에 힘을 빼고, 그래서 강하게.
그러면 무게중심도 잘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을 살며시 열어보면서, 나와 세상을 더욱 투명하게 바라보면서 무게중심을 잡아볼래요. 힘이 아니라 인권으로!
헤헤, 유도소녀 미류라고 불러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