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용철 농민의 빈소에 문학인들이 모였었지요. 집회 현장이면 사진기 메고 나타나 조용히 그 현장을 지키는 작가 조세희 선생이 그날은 마이크를 들고 시국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고 합니다. 11월 15일 농민집회에서 전용철 농민이 쓰러진 것을 불과 몇 미터 옆에서 보았다고 증언한 선생은 “우리 모두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오늘 새벽, 그날 농민집회에서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또 한 분의 농민이 돌아가셨습니다.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운 좋게 살아남는 것’이 실감나는 시대입니다. 후원인 ·자원활동가 여러분들도 가파르게 내려가는 기온만큼이나 꽁꽁 얼어붙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모두 안타까움과 분노를 삭이고 있을 거라 짐작됩니다.
인권활동가들은 이러한 경찰의 폭력이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며칠 전 이른바 ‘경찰인권센터’라고 오픈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점거했습니다. 비록 하루를 채우지도 못하고 경찰에게 끌려나왔지만 인권경찰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람을 때려죽이고 있는 경찰폭력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아쉬움도 많지만, 사랑방의 운동은 인권이 세속화된 시대, 참 인권운동을 위해 애쓰기도 했으며, 고통받고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우리의 운동을 낮은 곳으로 낮추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신자유주의와인권팀이 기획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가출청소년, 노숙인, 미혼모,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집없는 자들의 빈곤함을 ‘주거권’이라는 이름으로 밝혀내는 사업이었습니다. 물론 많이 부족하고 아쉬움도 남지만 우리 사회에 집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면면을 밝히는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인권이 세속화된 시대, 누구나 인권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이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마저도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올 한해 ‘북 인권 사업’은 바로 인권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맞서 싸운 것이 초점이 되었습니다. 북 정권을 편드는 거냐는 오해도 받기도 했지만 인권운동이 정치적 의도에 이용당하는 것은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루소식의 변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인권운동을 알리는 데 헌신해 온 인권하루소식은 내부적으로 활동가들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루소식의 존폐를 두고 갑론을박하다가 지금의 인터넷판으로 개편되었는데, ‘부담’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하지만 인권운동의 전문적인 매체로서 필요하다는 것 또한 여전한 사실입니다. 벌써 개편 1주년이 다가오는데다 3000호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여러분들도 하루소식을 많이 접하실 텐데, 변화된 하루소식에 격려와 애정어린 비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외에도 교육실에서 주도한 ‘실업계고 현장실습 실태조사’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일하는 청소년들의 열악한 인권실태를 보여주었고, 인권영화정기상영회 ‘반딧불’은 더욱 더 분주히 현장을 누비며 스크린에 불을 밝혔습니다. 자료실은 국가인권위 자료실태를 분석해서 인권위 내부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화자찬이 너무 길었나요. 후원인 ·자원활동가 여러분들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굳은 신뢰와 따뜻한 애정이 모두 사랑방 인권운동의 큰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조금 낯 뜨거운 사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서울 시내에 성탄 트리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합니다. 연말 분위기를 한껏 내느라 버스 정류장에도 울긋불긋합니다. 또 다른 불빛이 있습니다. 연말이면 연일 꺼지지 않는 집회현장의 촛불입니다. 며칠 전 집회에서는 촛불이 아니라 횃불까지 등장했습니다. 연말 계속되는 집회 현장에서 여러분들의 얼굴도 뵙기 바랍니다. 올 한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도 힘차게 당당하게 살아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