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했던 2001년, 제가 살던 지역에서는 한 과목만 잘 하면 대학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해찬씨의 교육개혁 1세대를 실패라 규정하던 아젠다가 활개 했었죠. 결국 야간자율학습(야자)이 부활했어요. 제도교육 안에서의 무한경쟁의 재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죠. 하필 제가 입학하자 다시 입시열풍이 불기 시작하는 것에 못마땅하던 저는 야자를 거부했다가 묵직한 매질을 당해야 했지요. 이전에도 체벌에는 익숙했지만 그날 한 교사의 체벌은 저를 결코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기름칠, 아무런 감정이 없는 폭력이었죠. 신체는 때로 정신을 지배한다 하던가요? 그날의 신체적 고통을 체득한 후 인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야자거부의 승리를 쟁취하고 저는 방과 후에 YFC라는 기독교 청소년 단체에서 체벌금지운동과 가출청소년 쉼터를 운영했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을 알게 된 것도 정확하진 않지만 인권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 시기쯤으로 기억합니다. 마음속으로 꽤 호의를 가지고 가끔 그들의 활동에 주목하는 정도였지만요. 일종의 양가감정일까요? 온 국민이 월드컵에 빠진 2002년도에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축구열기를 자본파시즘으로 규정한 성명서에는 못마땅해 하기도 했었죠. 그런 제가 인권운동을 소명으로 삼고, 인권운동사랑방에서의 자원 활동으로 그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더 없이 좋은 인연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꿈을 꾸면서요. 자원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민주노총에서 한진중공업 노사협상타결 무효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을 참관한 후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한 모금 물고자 기자회견장 옆의 휴게실에 들렀죠. 그 곳에서 노조원으로 보이는 한 분이 저에게 조심스럽게 묻더군요. “사랑이 뭔지 아세요?”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지만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 담배만 물고 있었지요. 괜히 붉어지는 눈시울에 가슴이 더욱 답답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착각하는 속물 자본가들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도대체 당신은 사랑이 뭔지 아시나요?” 인간은 사회를 만들었지만 체제화된 사회는 되려 그 사회에 합당한 인간상을 요구하고 있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구조 속에서 개인은 사회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고 되도록 빠르게 적응해야 하죠. 자본주의는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주었지만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재의미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의문을 함께 던져주었다고 생각해요. 시스템 안의 개인은 기계의 부속품화 되었으나 진짜 기계와 다른 것은 굳이 그 부속품이 없더라도 시스템은 유지된다는 것이겠지요. 한진 해고자를 대하는 회사 측의 인식은 쓸모없는 부속품은 퇴출된다는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지요.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정신, 자본 권력자에게 상생의 정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네요. 우리는 어쩌면 물질의 풍요 속에 해고라는 이름의 불안과 공포로 연명하는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의 자유가 자본의 자유를 넘어설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체제에 위협적인 사람들을 육체적, 정치적 속박을 통해 그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했다면 자본은 보다 근원적인, 자본욕망으로 정신적 속박을 자행하니까요.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입시키는 방식이죠. 즉, 자본정신이 개인욕망을 부추기는 과정에서 개인정신은 자본정신으로 전환되죠. 자본정신을 개인정신으로 보이게 하는 이러한 착시효과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제도 교육을 통해 극대화된 경쟁을 이미 체득한 사람들에게 거부될 수 없는 움직임이기도 하죠. 점차 원자화되고 개별화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에 저항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공동체적 의식을,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이 그 잔존 동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곳에서의 자원활동이 행복합니다. 강자에게는 거칠게 투쟁하고, 약자에게는 누구보다 부드럽게 감싸주는 사람들, 돈의 노예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들과 함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저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