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화를 좋아하는 대학원 언니의 손에 붙들려 <예스 맨 The Yes Men>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짐 캐리의 예스 맨이 아니어요) 그때 저는 한참 ‘인문학의 위기와 인간의 위기’를 같이 고민하던, 심하게 진지한 학생이었어요. 함께 대학원에 다니던 한 언니는 그런 저를 ‘꼴통’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불행한 세상을 어떻게 풀어갈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같은 주제를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삼았으니 제가 얼마나 인상을 쓰고 다녔을지 짐작이 되실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저는, ‘뜨거웠지만 힘이 너무 들어간’ 상태였지요.
아무튼 저는 우연한 기회에 <예스 맨>이라는 영화를 보게 됩니다. 적어도 이 편지를 받으시는 분들은, 짐 캐리의 <예스 맨> 이전에 또 다른 <예스 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실 것 같아요. 기억이 나시나요? 네, 저는 그 영화를 ‘인권영화제’에서 보았답니다.
언니는 저를 옛 허리우드 극장으로 데리고 들어갔어요. 저는 허리우드 극장의 이름이 서울 아트 시네마로 바뀌었다는 것도, 인권영화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어요. 인권영화제? 영화를 공짜로 보여준다니. 좋다.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내내 심각했던 저에게 청량음료 같은 통쾌함을 선사해 준 영화였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이토록 유쾌하게 응수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나까지 부조리한 인상을 쓰고 다닐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갑니다.
몇 년 후, 저는 인권영화제를 다시 찾게 되었어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이, 청계천은 거꾸로 흐르고, 어린 연인들은 데이트를 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피곤해 보이던 전경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그날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 풍경 사이로, 파란 플라스틱 의자들과 복잡해 보이는 온갖 장비들과 커다란 스크린이 보이네요. 바로 올해 열렸던 제13회 인권영화제입니다.
이 두 번의 인권영화제가 저를 인권운동 사랑방과 인연 맺게 한 주인공입니다. 첫 번째 인권영화제를 본 후에도 저는 여전히 강의실 안에서 인상을 쓰고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진 양 살았어요. 그러나 그 첫 번째 인권영화제 덕분에 저는 다시 인권영화제를 찾게 되었고, 이번에는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아, 그런데 저는 인권영화제 팀은 아니고요, 자유권 팀과 인권오름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융인입니다.
그러니까 6월에 중림동 언덕길을 처음 올랐던 것 같습니다. 거의 산이라고 해도 괜찮을 언덕 위에 인권운동 사랑방이 있었어요. 여름이 가까운 때라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해보니, 그 날은 참 뜨거웠네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사랑방 현관문을 처음 열었습니다. 낯선 이의 등장에도 누군가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맞아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왠지 좋은 사람들일 것 같아.’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아요. 인권운동, 노동운동, 뭔가 아무튼 ‘운동’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왠지 머리에 빨간 띠부터 둘러야 될 것 같은데, 생각과 달리 사랑방 사람들은 모두 즐겁고 유쾌한 분들이었어요. 마치 제가 처음 만난 인권영화제의 ‘예스 맨’이라는 영화처럼요. :)
저는 ‘인권’이라는 커다란 사명을 등에 지고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잔뜩 들어갔던 힘을 빼고, 그냥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자원활동을 시작한 것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제 다섯 달째네요. 아직도 사랑방에 가면 모르는 얼굴들이 더 많아요. 물론 모르는 사람과도 반갑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합니다. 앞으로 세상 곳곳의 모르는 분들께 안녕하시냐고 자꾸 말을 걸 겁니다. 그때까지 정말 안녕히 계셔야 해요. 또 인사 드릴게요-♩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