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했었던가요. 고 1 겨울. 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관심 없는 한국지리 시간에, 별로 관심 없는 한국지리 선생님이 갑자기 한 영상을 틀어주셨습니다. 무슨 영상이라는 소개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재미없는 수업 안하고 한 시간 쉽게 때우겠구나 싶었습니다. 흑백에, 영화도 아니고 내레이션도 없는 영상이었습니다. 초반에는 흥미가 없었는데 점점 저도 모르게 몰입을 했고, 한 시간 가량의 영상이 끝나자 펑펑 울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가 왜 인권활동을 시작했는가. 나는 왜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저의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보면, 그 끝에 이 영상이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는 사람들이 군홧발에 짓밟히고, 개머리판에 머리를 얻어맞고,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국가의 폭력에 비참하게 유린당하는 민중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날 본 것은 5·18 민주항쟁 기록 영상이었습니다. 얕은 현대사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5·18 당시의 모습은 저에게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당시 영상을 보고 난 후. 기억해보면, 저는 단지 감사해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수많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신 분들의 희생 덕분에, 17살의 저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안정화는 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국가의 무식한 폭력 따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서 마주하리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금에야 2000년 그 무렵에도 어떤 인권 침해 사례들이 있었는지 알지만, 그 당시 저는 그저 ‘순진’한 시골 아이였습니다.
이제 저는 스물 아홉이고, 그 때로부터 열 두해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매일 야만적인 국가의 폭력을 때로는 전해 듣고, 때로는 목도하며 삽니다. 제가 영상을 통해 본 42년 전 그 폭력은 아직도 이 땅 곳곳에 살아있죠. 어제 국회 앞에서 문정현 신부님이 삭발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주해군기지 예산 전액 삭감을 촉구하는 삭발과 단식 농성에 들어가셨습니다. 평생을 민중을 위해 앞장서 투쟁하신 분이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힘들게 싸우셔야하나 착잡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얼마 전 내년 인권영화제 준비를 위해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영화제 활동을 한다고 소개하면 간혹 어떤 분들은 ‘영화를 많이 봐서 좋겠네요’ 하시는데, 아시다시피 인권영화가 대부분 즐겁지 않은 영화들입니다. 대부분 전 세계 사람들의 처참한 삶을 보여주는 영화들이죠. 저는 착한 심성을 가졌거나, 감성적인 사람은 아닌데, 그런 영상을 보고 있자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마음이 아니라 진짜 심장을 누군가 꽉 움켜지고 쥐어짜는 듯이 아픕니다. 답답하고 무기력해질 때도 있습니다. 세상이 내가 죽을 때까지도 변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를 보다가 지쳐 같이 간 활동가와 토닥토닥 서로를 위로해주다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활동이 세상에 미약할지는 모르지만, 지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저는 나약하고, 비겁한 면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이 ‘현실’에 눈을 감지도, 귀를 닫지도 말자고 스스로 용기를 내봅니다. 다시, 시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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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