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2박 3일을 지냈습니다. 죽어서라도 송전탑 공사를 막겠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외침이 있는 그곳은 이미 경찰 병력에 의해 곳곳에 사람들이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반드시 새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새로운 고압 송전탑도 필요 하다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너무나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핵발전소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원전 마피아들과 건설 자본이 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그들의 편에 서 있는 경찰이 있고요.
한반도 산천 어디한곳 송전탑이 없는 산을 찾기가 매우 힘듭니다. 밀양의 공사 현장 정상에 올라서면 전선으로 연결되지 않은 아름다운 산 능선들이 겹겹이 드러납니다. 새벽 안개 속 동화전 마을 96번 현장에서 아름다운 능선과 산이 품고 있는 작은 마을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지요.
아마 밀양의 어르신들은 송전탑 문제만 아니었다면 핵발전소가 뭔지도 모른 채 대추농사 지으시며 살아가셨을 겁니다. 아마 텔레비전에 나오는 반핵 활동가들은 빨갱이, 국책사업 반대 세력으로만 알고 돌아가셨을지도 모르지요. 송전탑 건설로 인해 평생 고향이었던 마을의 산이 파헤쳐지고 아들, 손자뻘 되는 한전 직원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 할머니들이 지키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평생을 일궈온 자신들의 인생일 것 입니다. 대추리의 농민들이 그랬고 강정의 농민들이 그랬듯 땅과 산과 바다는 농부들에게 그들의 삶 전부 이니까요.
인생을 훔쳐가려는 도둑놈들에게 할매들은 소리치고 애원하고 빌어 가면서 버텨 왔습니다. 경찰이라면 교통순경이 전부 인줄 알았을 할매들이 공권력을 향해 소리칩니다. "헬기를 막아 주십시오" "공사를 막아 주십시오"
때로는 악에 바쳐 욕을 하다가도
"저들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 하십니다.
우리들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외 없이 성폭력범들을 증오하고 살인자들을 저주 합니다. 그런데 국가권력이나 자본이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에는 왜 이리 예외 조항이 많은 것일까요?
국책사업이니 희생되어 마땅하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해고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파괴되는 사람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지나요? 보상을 한다고요? 아무리 돈이 최고인 세상에 산다 해도 결국 우리는 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돈을 벌고 있지는 않나요? 과연 당신의 인생은 얼마의 돈과 바꿀 수 있는 것인가요?
단장면 바드리 경찰과의 대치 현장에서 한 할머니가 숲에서 잣을 들고 나오십니다. 그 와중에도 자연의 수확물을 찾아내는 그 보배 같은 눈썰미가 좋습니다. 경찰들이 산속으로 진입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비탈에 앉아 있으면서도 "도토리가 익어가네" 하시며 언제 주우러 올까 말하는 그 말소리가 참 다정합니다. 할머니들은 언제, 어느 산 능선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알고 계시겠지요. 도시에서 사는 우리들은 결코 알아 챌 수 없는 보석 같은 지혜입니다.
이 할머니들의 인생을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는 강정주민들의 외침처럼 공간은 다르지만 밀양에서도 외치고 있습니다. "고마 요대로 살고 싶다"
그들이 자연그대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은 지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이 큰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들의 피눈물 속에서 송전탑이 결국 건설된다 하여도 그 전기는 결국 피를 타고 흐르게 될 것입니다.
농성을 하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전기"였습니다. 대부분의 농성장에 전기가 없어 휴대폰 충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배터리가 한 칸 한 칸 없어지면 불안했습니다. 소식을 밖으로 알리지 못한다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휴대폰 꺼짐, 전기 없음 그 자체가 불안 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삶은 전기에 많이 의존되어 있구나 싶었습니다. 전기 없어도 아무렇지 않는 할매들과는 참 대조적이지요.
서울은 에너지 자급률이 3%밖에 되지 않는다 합니다. 그러면 그 전기가 다 어디서 오기에 그리 화려한 도시가 만들어 질까요? 우리의 화려한 삶이 결국은 다른 사람의 피눈물 속에 만들어진 허상이라면 우리는 이 불합리한 세상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한 사람이도 예외 없이 평화적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의 이익, 자본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삶이 희생되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야 나의 삶도 온전한 것이 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