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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월 13일 인권단체연석회의 촉진모임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세월호 참사와 이후 대응 과정 등에서 나타난 인권 문제를 폭넓게 고민할 존엄과 안전 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제안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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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참담한 슬픔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리로 조금씩 밀려나오고 있는 추모와 항의의 흐름이 낮은 곳으로부터 힘을 키워나가며 애도와 규탄의 힘으로 모아지기를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을 듯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절규가 정치적 책임을 묻기 위한 구체적 힘으로 만들어지기를, 구조적 문제 앞에서 무력감과 추상적 분노 사이를 오가는 마음들이 대안을 만들어가는 집합적 의지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책임이 법적 책임으로 증발되기 전에, 집합적 의지가 저마다의 말들로 흩어지기 전에, 대중적 실천을 만들며 정치적 힘을 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듯합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와 같이 참혹한 사건 앞에서 어찌할 줄 몰랐던 한 사회가 생명과 존엄을 서로 지켜줄 줄 아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회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결속과 연대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정권이 치안을 위해 휘두르던 무기인 '안전'이 어느새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한국사회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안전'이 무엇인지도 충분히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안보와 치안의 논리 아래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혼자 힘으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강요당해왔습니다. 그래서 안전은 권리이기보다는 의무였고 억압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안전의 다른 이름은 존엄일 것입니다. 누구도 사회로부터 더욱 큰 위험을 강요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누구도 구조와 부축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수 있도록, 안전을 위한 권리와 책임의 구조를 밝혀가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민중이 권력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안전일 수 있음을 차근차근 밝히며 힘을 모아가야 합니다.
말하고 모이고 행동할 권리를 내주지 않겠다
이미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 등에 대한 침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대중적 힘의 흐름이 확장되는 만큼 국가권력 역시 노골적이고 교묘한 탄압을 가할 것입니다. 경찰력이나 정보기관 등을 통해 활용되는 탄압의 수단에 대해 일정한 경험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이 인권운동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된 사안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입장 표명과 대응 등을 모색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자유를 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욱 근본적으로 참사와 맞물려있기도 합니다. 서로 궁금한 것을 묻고 다양한 정보를 교류하고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더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토론할 수 있을 때 사건의 진상은 규명될 수 있습니다. 각종 정보를 통제하며 유지되는 이대로의 사회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늑장 구조와 부실 수사, 은폐와 왜곡 의혹 등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 참사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국가의 물리력이 어디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특히나 '안전'이라는 과제는 '공권력'의 구성과 작동에서의 쟁점을 우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애도를 받거나 애도를 할 권리를 모두에게
모두가 슬퍼하는 참사의 와중에도 누군가는 장례비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는 모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세월호에 몸을 실었던 수많은 삶들이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각각의 이름을 얻을 수 있을 때 충분한 애도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선언이 어떤 내용이어야 할지도 분명해집니다. 지금의 슬픔과 미안함, 안타까움과 분노들 역시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각각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이 저마다 느끼는 모호한 책임의 실체가 투명한 정치적 책임으로 전환될 수 있을 때 우리가 정말 바꿔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질 것입니다.
조금 더 평등해지기 위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더 귀기울여 듣고 더 많이 전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연루된 사람들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많을 것입니다. 수많은 연결의 고리를 타고 참사를 겪는 어디에선가 아직 다 모르는 고통과 절망을 홀로 감내하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금이 간 마음들이 어떤 애도와 책임의 말을 얻어야 할지 모른 채 무너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들을 헤아리고 함께 흔들리며 그 말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한 힘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권리와 책임의 구조를 만들자
누군가 권력을 독점하는 만큼 책임이 전가된다는 진실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너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이윤을 향한 힘이 강할수록 생명을 지키는 힘은 약해진다는 것도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존엄과 안전이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서로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 야만의 구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광범위한 모색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과보호로, 누군가의 초과노동으로, 누군가의 과잉권력으로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때 안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로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안전할 자유를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짚어나가야 합니다. 안전을 훼손하는 현실을 폭로하고 제도적 대안 마련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한 존엄과 안전을 해치는 방향으로 이 세계에 힘을 미치는 자본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용인되었던 면책구조로부터 책임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문가들의 토론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저마다 서로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고민을 나누고 구체적 행동을 시작할 때에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획과 제안을 차분하게 벌여나가야 할 듯합니다.
존엄과 안전을 위한 생명선언
이 모든 과제와 함께,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 존엄과 안전을 위한 생명선언 운동을 벌여가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방향과 과제들을 모두 한꺼번에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마리를 잡고 조금씩 활동을 벌여나가는 만큼 더욱 많은 활동 과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제가 더욱 많은 사람들의 행동 과제가 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정치적 힘의 반영으로 생명선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를 함께 겪는 시간이 무언가를 구성하는 시간이기도 하기를 바라며 선언운동의 상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