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거의 대부분 운동단위들의 강의나 토론회가 멈춰있는 요즘, 지난 2월에 난민 혐오와 인종주의, ‘여성’ 범주와 젠더, 탈코르셋이라는 주제로 열린 <차별금지법과 페미니즘> 강좌의 진지하고 뜨거웠던 열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담론 중 하나는 단연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혹은 페미니즘 대중화라는 흐름 아래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 젠더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폭발적으로 가시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반차별 운동의 지형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페미니스트인가를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질문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난민과 외국인,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집단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여성들의 안전할 권리 혹은 인권의 조건으로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여성 내부의 ‘차이’는 진정한 피해자 혹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리트머스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명 터프(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즘,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의 흐름을 비판하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국면에서 ‘무엇에 반대해야 하는가’를 주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가고 싶은가’를 이야기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차별금지법과 페미니즘>은 바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혐오와 타자화가 이루어지는 상황과 조건을 어떻게, 누구와 함께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풀어보는 자리였다. 서로의 운동기반을 제공하면서 또 서로를 성장시켰던 페미니즘과 반차별 운동, 이 운동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왔고 만들어가고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차별’을 들여다보게 하는 페미니즘
매 강의가 진행된 3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들이 쏟아졌지만, 공통적으로는 여성대중의 불안과 우려에 기반해 ‘여성의 안전할 권리’로 수렴되는 일부 급진 페미니즘 담론의 문제점과 함께 우리는 어떻게 다른 페미니즘을 상상하고 모색할 수 있는지로 이어졌다.
1강 <난민 혐오와 ‘인종주의’ 페미니즘을 벗어나>에서 강의를 맡은 김보명은 2018년 이른바 제주도 예멘 난민 ‘사건’을 통해 난민에 대한 ‘배제’가 여성이라는 다른 소수자 집단의 ‘인권’으로 왜곡되어온 문제를 짚었다. 난민을 격리함으로써 여성의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는 믿음은 ‘강간하는 무슬림 남성과 강한당하는 국내 여성’의 구도를 통해 젠더폭력에 대한 공포와 함께 인종주의적 편견을 확대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포와 혐오가 대중적인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2018년 당시에는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난민을 혐오하지 맙시다’라는 당위적인 선언이 급박하고 강력하게 필요하고 또 유요한 맥락이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김보명은 우리가 ‘권리’를 소유와 분배의 대상, 그래서 ‘국민이 먼저’라고 요구하면서 국가로부터 얻을 수 있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더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고해보자고 제안한다. 권리는 공동체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넓히는 과정에서 서로의 권리를 선언하고 상호간에 인정하는 실천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멘 여성난민이면서 활동가이기도 한 야스민이 토론에서 말한 난민 여성과 한국 여성의 상호이해와 연대는 그러한 구체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 난민 남성을 반대하기 위한 근거로 난민 여성을 ‘침묵하는 피해자’로 호명하기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의 조건에서 투쟁해온 존재로 인식하고 바로 그 난민 여성들의 ‘권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2강 <‘여성’ 범주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에서 차별을 질문하기>은 트랜스젠더인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 사건과 트랜스젠더 학생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사건이 언론과 사람들 사이에 쉴 새 없이 오르내리리던 시기였다. 특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지칭하는 집단 내에서도 트랜스젠더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면서 혐오가 집중되었다.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인 ‘젠더’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범주를 흐리는 해로운 것이자 성역할(sex role)로 왜곡되면서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적인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강의를 맡은 나영은 이러한 이해를 일축하며 우리가 젠더 개념을 통해 시민권이 성별화, 인종화되어온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와 함께 이성애중심주의에 기반한 섹슈얼리티 통제가 핵심이라는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젠더를 손에 쥐고 차별에 대항한다는 것은 ‘여성’을 규범화하고 특정한 위치에 고정시키는 그 구조를 문제 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숙대에 입학하려고 했던 학생이 롤모델로 언급하며 함께 화제가 되었던 토론자 박한희가 지적한 것처럼 바로 그 구조를 비판하고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는 프레임이 차별금지법의 ‘차별금지사유’이다. 성별정체성이라는 차별금지사유는 트랜스젠더라는 개인 혹은 집단 정체성을 지칭해서 차별하면 안 된다는 지침이라기보다, 사람이 남성과 여성으로 나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의 규범을 문제 삼으면서 그 생물학 기준 밖의 성별정체성을 배제하거나 병리화하는 기준을 차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힘을 준다.
3강 <코르셋으로부터의 해방은 어디로 연결될 수 있을까>는 이른바 ‘탈코 인증’을 통한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구성하려는 특정한 시도가 여성들의 더 다양한 서사를 통해 새롭게 쓰여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기회가 되었다. 탈코르셋은 화장, 다이어트 등의 꾸밈 노동을 중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종류의 수행을 중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MTF와 같은 트랜스젠더는 여성의 해방을 방해하거나 억합하는 존재로 재현되기 쉽다. 강의를 맡은 송유진은 ‘진정한 여성’,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구성하는 방식이 젠더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기반으로 이렇게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연관된다는 점을 짚는다. 여성들이 요구하는 ‘안전함’이 곧바로 ‘균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르셋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거나 여성성을 박살내야 한다는 운동의 당위가 아니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협상과 타협의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생물학적) 여성들이 모여서 만든 안전한 여성 공동체는 앞뒤가 막힌 상상이지만, 다양한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개인들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간극과 균열은 우리를 더 다양한 주체들이 놓인 조건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소수자 정치학으로서의 페미니즘
<차별금지법과 페미니즘>을 기획할 당시에는 젠더를 둘러싼 젠더 이분법과 이성애 질서, 인종주의 규범이 발생시키는 차별과 혐오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는지, 그 싸움의 지형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될 거라는 기대가 컸다. 그 사람들이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동료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매 강의마다 80~9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그만큼 토론 시간에 나눈 이야기들 속에는 참여한 사람들의 고민뿐만 아니라 좌절과 상처 역시 적지 않았다. 같은 여성, 같은 페미니스트와 싸워야 한다는 혼란과 갈등, 소수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할 때의 분노, 왜 우리가 함께 평등해질 수 있는지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좌절의 경험들이 조심스럽게 쏟아져 나왔다. 내 경험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 좌절의 경험이 우리에게 다른 반차별-페미니즘의 정치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어떤’ 페미니즘인지를 다시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에게 더 강력한 정치적 개입으로서 필요하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여전히 ‘여성’이 인간임을 외치는 급진적 기획임과 동시에 다른 사회적 타자들과 함께 놓인 차별의 구조를 살피고 이에 저항하는 운동, 반차별과 평등, 사회정의를 향해 내딛는 운동이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옳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위협에 도전하고 대항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이 더 이상 필요하거나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을 ‘인간’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탈정치화에 맞서면서, 모두가 다 다르니 각자의 차이나 정체성을 존중하자는 윤리의 완성으로 내달리지 않으면서, 여성들의 공포와 불안을 파고든 페미니즘 담론 내 차별과 혐오를 직면하면서,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혐오가 아닌 다른 페미니즘의 언어가 있다는 가능성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반차별-페미니즘의 정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코로나19로 미루어졌지만, 남은 4강 <페미니즘 이슈로서 차별금지법>으로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