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라고 했었는데, 사는 곳을 찾았던 나는 이제 사는 것을 찾는다
정록
즐겁게 여행을 하고 난 뒤에 집에 도착하면 여행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집은 어쩔 수 없는 프라이버시 공간인가보다.
아해
우리 집에는 오솔길이 있어요~♬
집이 넓은 것도 아닌데, 그 작은 집 안에서도 쓰는 것만 쓰고 밟는 곳만 밟고 하다 보니, 쌓여있는 짐들 사이로 오솔길이 생겼다. 집에서 하는 잠자고 씻고 나가는 일이 워낙 단순하다보니 그렇게 되기는 했는데,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 이제는 나도 모를 지경.
이렇다보니, ‘집’에 대한 생각이 좀 애매하다. 나도 넓고 쾌적하고 깨끗한 집에 우아하게 살고 싶지만, “그럼 청소는 누가 해?” 혼자 큭큭 거린다. 게다가 집이 넓어도 결국 내가 쓰는 공간은 아주 한정된 부분일 거고, 나머지에는 먼지가 쌓여가겠지 싶어서 그냥 되는대로 살기로. 훗.
어쓰
자취를 시작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주로 분리형 원룸에 살아오면서 집에 소파나 TV를 둬본 적이 없다. 그 사실이 그렇게까지 아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사를 결정하고 준비하며 머릿속에 꿈꾼 집은 ‘TV와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거실’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가방을 소파에 내던지고, 샤워를 한 뒤 맥주 한 캔을 들고 TV를 켜는, (내 기준에서는) 마치 드라마에나 나오는 삶에 대한 욕망이랄까. 사실 혼자서는 술을 잘 마시지 않고 즐겨보는 TV 프로그램도 없지만 말이다. 이사를 마치고 집을 정돈하는 요즘, 꿈꾸던 집과 거실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에 살아가는 중이다.
가원
내 집에 와본 사람들은 집이 나를 닮았다고들 한다. 깔끔하진 않지만 나름의 색깔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공간에 색을 씌우는 작업에 꽤나 공을 들이는 편이다. 나를 설레게 하는 몇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집은 늘 지금 내가 사는 집이다.
몽
처음 서울에서 살게 된 20살, 6호선 대흥역 앞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철역과 걸어서 채 3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다세대주택이었는데, 지금은 그곳에 으리으리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가끔씩 회의하러 6호선에 있는 다른 단체 사무실에 갈 때면, 집에 가는 골목길에 작은 슈퍼가 있어서 간식거리를 사들고 들어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주
회사 사택이 원래 집보다 넓다. 그럼에도 주말에 ‘우리’ 집으로 가면 좋다. (둘 다 집이긴 하지만) 그냥 편하다. 물론 지금 사는 집은 집주인과의 악연이 생기는 바람에 안 좋은 기억이 남기도 했지만. 암튼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물난리’가 계속 나고 있는 고충을 안고 있다. 집주인과의 악연이 만들어진 이유다. 어쩌다보니 이런 집이 걸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야겠다. 계약 끝날 때까지….
디요
집은 내게 어떤 커다란 파도 같은 것이다. 무엇이든 집과 연관된 문제는 의지로 극복하기 힘들다. 가령 물건이 고장 나면 수리하거나 교체하면 되지만, 집이 고장이 나면 일상이 멈춘다. 사람 간에 갈등이 생기면 싸우기도 하고, 또 잘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에 집주인, 옆집 아저씨, 가족과 같이 ‘집’이란 말이 들어가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그러니 내 인생의 집이라고 부를 정도라면 정말 정말 정말 엄청난 파도를 몰고 오는 집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집은 만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