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피해액이 1조 6000억 원대에 달한다는 금융 사기사건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이 쓴 이른바 ‘옥중 서신’이 공개됐다. 국회의원, 검찰총장, 청와대 수석, 기업 회장, 검찰 출신 변호사, 검사까지 우리 사회 권력층을 이룬다 할 만한 명함들이 거론되며 사회의 이목은 정관계 로비로 집중되고 있다. 최근 드러난 ‘옵티머스 사태’까지 더해지며 금융 사기사건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 역시 점점 높아진다. 이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내 투자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금융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불안해서 투자하는 사회
과거에는 주식이나 부동산을 통한 수익 창출이 불로소득 혹은 ‘투기’처럼 여겨져 왔다면, 이제 더 이상 금융 투자는 떳떳하지 못하거나 부적절한 행위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주식은 소위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자산을 불리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의 경제적 안정을 영위하기 위한 고정적 벌이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SK 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등 인지도 있는 기업들의 공모펀드 모집 공모에 개인 투자자들이 줄을 서는 모습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회경제면에 이런 금융 경제 소식이 들릴라치면 주식시장 바깥에 있는 사람은 혹시 나만 어리석게도 투자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조바심을 피할 길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먹고 사는 일이 팍팍하고, 딱히 미래를 대비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임금과 부동산 가격을 대비한 경제 지표만 봐도 그렇다. 2016년부터 올해 7월까지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0.7%~5.3%에 그친 반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매년 최대 22.9%까지 올랐다. 집을 가진 사람들의 자산 규모는 가파르게 늘어날 때,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노동 소득만으로 경제적 안정을 영위하기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폭을 보며 느끼는 박탈감과 분노가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영끌’, 빚을 내서 투자한다는 ‘빚투’ 등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서울 거주자와 40세 미만 청년층에서 가계 빚이 8년 만에 최고치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더 이상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을 모아 집을 사거나, 퇴직금으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노후를 지향하기 어렵다는 게 지금 체감할 수밖에 없는 민생 경제 현실이다.
주식시장은 공정하다는 환상
모두가 어떻게든 자금을 만들어서 투자에 뛰어들거나, 뛰어들지 않는다면 불안해지는 상황이 역설하는 바는 사회경제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졌다는 점이다. 공적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미래가 암울하기 짝이 없을 때, 투자는 불안을 이기는 방법이자 스스로 안정을 구하려는 노력에 가깝다. 그나마 투자시장은 누구나 종잣돈만 있으면 진입가능하고, 모두가 예측할 수 없는 위험부담을 진다는 면에서 언뜻 공정하게 보이기도 한다. 돈이 많던 적던 자기가 기업에 대해 공부한 만큼 투자하면 웬만해선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는 모종의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은 어렵게 모은 돈을 투자한다.
그러나 아무리 모두가 위험부담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초기 투자 자본, 금융지식, 투자와 관련한 조언을 주고받을 관계나 네트워크 등에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며 위험은 결코 공평하게 분산되지 않는다. 금융시장은 각자 다른 사회적 자원과 조건 속에서 개인의 자율에 모든 것이 맡겨진 곳이며, 따라서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금융시장의 절대적인 지배 질서는 공정이 아니라 각자도생이다.
투자의 눈으로 세상을 읽을 때
지난 9월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BTS가 소속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상장이 초읽기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BTS 군 면제 뉴스가 쏟아졌다. 상장 이후 주가는 수직 상승했지만, 이내 가격이 가라앉고 연일 하락세를 보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빅히트의 공모 가격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밝혀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SNS는 '빚히트(빚+빅히트)'라며 자조하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기업분석이나 거시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하면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각자도생의 금융시장, ‘투자 실패’와 ‘그로 인한 타격’을 피하기 위해서 투자자 개개인은 각종 노력을 기울인다. 언론 매체에서는 투자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세상을 읽고 돈의 흐름을 쫓을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사회 이슈는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준다. 최근 정부의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 입법예고안이 발표되자 사후피임약 관련 기업의 주가가 ‘낙태 테마주’라는 이름으로 급등하고,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삼성의 경영 공백사태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주들의 불안과 우려로 연결된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약속이나 가치를 무화시키는 재벌 총수라도 감옥에 가는 편보다는 법위에 군림하며 경영권을 쥐고 있는 것이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게 된다.
투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정치사회경제 모든 사회 원리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되더라도, 그 안에 서로가 서로를 살피고 돕는 상호부조나 연대의 개념이 낄 자리는 없다. 이런 관점 아래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에 함께 맞서 싸우자”거나 “세상을 더 평등하게 만들자”는 식의 구호는 오히려 낯설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투자의 눈으로 세상을 읽을 때, 세상을 바꿀 길은 더욱 요원해진다.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으로의 진입만이 지금의 내 팍팍한 삶을 낫게 해줄 비상구, 나의 미래를 담보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 과연 나에게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면, 의외로 문제는 선명해진다. 과연 오르지 않는 임금과 불안한 일자리, 한 몸 뉘어 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끝에 노년의 삶이 경제적으로 비참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일이 그저 내가 투자를 통해 자산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인가.
서울 전 지역이 투기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부동산 가격은 매년 오르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더라도 서울에 집 한 채 장만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온데간데없고, 비정규직은 점점 늘어가며, 어떤 영역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구분마저도 의미 없을 만큼 낮은 임금을 받고, 법정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정해진 지금도 누군가는 과로로 사망하는 사회다. 코로나 19라는 재난까지 더해 일자리는 더 불안정해지고 해고는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노동자의 처지를 불안하게 만드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강화하는 정부 정책이 사람들을 ‘각자도생’의 금융시장, 부동산 투자로 내몰고 있다.
각자 삶의 불안함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이 더 열심히 주식을 공부하고 투자에 힘쓰는 길 뿐일 때, 우리 모두 불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불안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지만, 투자한 끝에 다시 불안해지는 사회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제 현실은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불평등한 경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가 작동해야 세상은 바뀐다. 누가 이 불안한 사회를 만드는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혹은 져야 하는지를 물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